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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退溪 ; 이황,1501~1570)선생-3

    3. 침상을 맞대어 놓고 밤새도록 자세한 이야기 나누자.

    농운정사 스켓취-뒤에 보이는 집이 하고직사(下庫直舍), 그 오른 편이 도산서당

    도산기 농운정사 칠언절구 시

    도산기 지숙료 칠언절구 시

    도산서당 서쪽으로 기숙사가 있고 그 북쪽에 주사(廚舍)인 하고직사(下庫直舍)가 있는데 도산기에는 하고직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시설이 제자들의 식사를 제공하는 주요 시설인데 도산서당 영역 내의 것이라면 화초까지도 5언 잡영절구의 시를 써서 표현하면서 이 시설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걸 보면 퇴계선생이 하고직사(下庫直舍)는 주제 이외의 건축물로 보아 제외시킨 것으로 알고 존재감은 있어야 하기에 일단 스켓취에만 포함을 한다.

    제자들이 기거하며 자습하고 쉬는 기숙사를 농운정사(隴雲精舍)라 하였다. 도홍경의 글에서 따왔다는 농운정사에 대하여 퇴계 선생은 도산기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常愛陶公隴上雲, 상애도공농상운,

    唯堪自悅未輸君. 유감자열미수군.

    晩來結屋中間臥, 만래결옥중간와,

    一半閑情野鹿分. 일반한정야록분.

    항상 사랑하노니, 도연명의 언덕 위의 구름을.

    오직 혼자서 기뻐할 뿐 임금께는 줄 수가 없네.

    늘그막에 집을 짓고 그 안에 누웠으니,

    한가로운 정취 절반을 들 사슴과 나누네.

    (필자와 AI 협의 번역)

    퇴계 선생은 도연명의 글 속에 있는 언덕 위의 구름을 가져다 기숙사의 이름에 사용한 것이다. 왜 언덕 위의 구름일까? 언덕과 같은 자연 속의 구름은 모습도 형태도 구속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겼났다 사라지는 것 또한 세상에 얽매여 있지 않으니 그야말로 자유 그 자체라 볼 수 있다. 이는 형식에 얽매인 관료의 생활이 아닌 자연과 함께 동화되어 생활할 수 있는 전원 속의 삶 그 속에서 일어나는 자유분방한 생각, 구속되지 않는 여유로운 사고의 틀을 의미하며 이러한 생활의 틀이 그가 추구하는 삶이며 사고의 세계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 자연 속에서 깨끗하고 청순한 젊은이들과 마음을 터놓고 펼치는 진리탐구의 세계가 그가 추구하였던 세계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편액을 보면 글씨 또한 단순히 형태만 따온 게 아니라 글씨를 바꿔 써서 시의 의미를 부여 하였다. 퇴계 선생은 언덕 위의 구름을 혼자서 기뻐할 뿐 임금과는 나눠가질 수 없다 했지만 편액에서 雲자의 云받침을 두 개 넣어 구름을 사슴과 나눠 가진다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왜 일까. 임금과 자유로운 생각을 나누고픈게 퇴계 선생의 마음인데, 안타깝게도 복잡한 속세 속의 임금과는 마음을 나눌 수 없는 게 현실이고 보니 온화하고 평화로운 모습의 사슴, 선비의 순수하고 고고한 품격과 탈속의 정신세계로 상징되는 사슴, 그 사슴 같은 임금이라면 그 자유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아타까움의 표현이 아닐까.

    편액에서 또한 사(舍)자의 干 자를 工 자로 바꿔 써 넣어 농운정사가 공부를 위한 채 임을 강조하였고 직설 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평면 형식을 工 자로 하였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유추한다면 工자의 양쪽 윙에 각각 기숙사의 방을 배치하여 선후배들이 나누어 쓰도록 하고 가운데 연결부분에 자습 공간을 배치했을 법도 한데 퇴계 선생의 공간 사용법은 달랐다.

    남측에는 양쪽 윙 모두 청을 두고 오른편 윙은 자습을 위한 시습재(時習齋), 왼편 윙은 휴식을 위한 관란헌(觀瀾軒)이라 하여 공간을 세분화 하였고 이 공간을 외부와는 시선적 차단과 개방을 선택적으로 꾀할 수 있도록 하면서 서로 마주 보게 하여 대화형식의 폐쇄적 공간 형태를 취하였다. 제자들의 각자의 독자적 생활은 물론 중심성을 높인 대화와 토론 문화를 강도 높게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활동에 대처한 공간형성을 생각한 선생의 치밀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양쪽 윙을 잇는 숙박을 위한 지숙료(止宿寮)를 하나의 긴 방으로 만든 것은 제자 선후배들이 함께 같은 방에서 기숙생활을 하며 서로 삼강오륜을 익히는 실습장이 되도록 하였음을 감지한다. 지숙료의 전면 벽과 문의 재치 있는 면 분할 그리고 두터운 문틀의 사용은 변화의 재미와 함께 시각적인 디자인의 재미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좌우 평면에 동조된 박공지붕의 정연한 대칭성에서 기숙사 생활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요구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열과 성을 다한 퇴계 선생의 설계 노력이 건축물 외부로 나타난 결과라 보인다.

    퇴계 선생은 도산기에서 위에 소개한 농운정사 7언절구 시와 함께 시습재, 관란헌, 지숙료 세개 파트에 대하여도 각각의 시를 통해 설명을 하였는데 여기서는 숙소 부분인 지숙료에 대한 시를 소개한다. 순수하면서 다소 익살스러움이 느껴지는 퇴계 선생의 농섞인 설득이 재미를 더한다.

    止宿寮

    愧無雞黍謾留君 괴무계서만유군

    我亦初非鳥獸群 아역초비조수군

    願把從師浮海志 원파종사부해지

    聯床終夜細云云 연상종야세운운

    지숙료

    닭고기와 기장밥도 없이 그대를 머물게 하니 부끄러우나

    나도 또한 애초부터 조수(鳥獸)와 무리를 이루자던 것이 아니다.

    바라건대 스승을 따라 바다에 뗏목을 띄울 뜻을 가졌던 것이니

    침상을 맞대어놓고 밤새도록 자세한 이야기 나누자.(역자 김태환)

    방철린씀.

    이야기는 계속됨.

    글 : 방철린/칸종합건축사사무소(주)/20251124/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退溪 ; 이황,1501~1570)선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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