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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의 해석과 현상

    방 철 린/공간/8907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본 글은 공간지 연재특집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환경문화9}의 ‘권위주의와 환경문화’ 부문에 실린 건축가들의 글 중 방철린의 글 [권위주의의 해석과 현상]입니다.

    “권위는 타율적 강제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 강제성이 어떤 방식으로 내면화될 수 있을까? 20세기 초 유럽은 근대주의(Modernism) 건축의 태동, 전면적인 확산과 더불어 권위주의 건축이 성행하였다. 권위주의 건축은 민족적 우월성 표방이라는 외면적 의미 외에도 독재자 자신의 권위를 세워 피지배 계급에게 카리스마적 견인력을 발휘케 하려는 뜻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70년대 이후 다양한 종류의 문화시설을 건립하였다. 이 중에 많은 수의 시설들이 과거 유럽의 독재자들의 건축적 인식세계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이 그 효시로 이런 건축은 대중과의 정신적 괴리감을 심화시킬 뿐이다. 『권위만을 위한 권위』는 단연코 배제되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과 지역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합의에서 부여된 내면적 방법에 의해 호감성 높은 권위를 만들어야 한다.”

    권위주의란?

    권위란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제도, 인격(人格), 지위 등이 다른 것에 비하여 가치적으로 우월해 있음이 사회적으로 승인되고 그것으로 복종을 획득할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되어 있다. 「복종을 획득할 수 있는……」이라는 내용에는 권위 속에 타율적 강제성이 내포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적 복종의 기능이 있는 물리적인 힘, 즉 무력이나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우월적 가치가 부여됨으로써 권위가 생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이 우월적 가치가 내면 화 하면 할수록 이에 대한 저항이나 반역이 어려워지게 되며 동조 신념의 기대치는 점점 증가하게 된다.

    권위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단지 오랜 세월을 존속해 왔다는 이유로 우월적 가치가 부여되는 전통적 권위를 들 수 있으며,

    둘째로 한 인간의 개인적 특성이 다른 사람들 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간주되는 인격적 권위,

    셋째는 자유, 정의, 평등 따위의 추상적 상징이 지니는 추상적 권위를 들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건축에 있어서의 권위주의는 보통 이와 같은 여러 경우의 권위를 배가시키기 위한 발상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의 권위주의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건축에 있어서 근대주의(Modernism)라는 새로운 건축 운동이 일어나고 또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 이탈리아, 독일에서의 독재자에 의한 권위주의 건축이 성행하였다. 이들 유럽의 독재자들은 자기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민족주의적 명예를 내세우기 위한 안간힘을 다한 것이다.

    1.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양식

    무솔리니(Mussolini, Benito 1883~1945)는 1919년 파시스트당인 이탈리아 전투자동맹을 결성하였고 1921년 국회의원, 1922년 수상직에 오르고 1925년 독재권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1926년부터 이탈리아의 건축에 본격 개입하기 시작하여 도시의 환경을 개조해 나가기 시작한다. 당시 유럽에서 활발히 전개되어 갔던 합리주의의 모듈러 조정에 의한 세련된 기하학적 형태나 단순 명료한 기계 미학의 아름다움은 그가 요구하는 양식적 웅대함을 충족시키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이탈리아의 역사적 위대함을 떠올릴 수 있는 민족적 건축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평면의 구성에 있어서 다분히 전통적인 형식주의에 해당하는 것이며 무솔리니는 이러한 신고전주의로서의 형식주의 건축 양식을 빌어 파시스트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의 이같은 파시스트적 신고전주의 형식은 대칭(symmetry), 중량감, 거대함, 화려함 등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찬양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기념비성을 내포하고 있다.

    2. 히틀러의 나치스 양식

    히틀러(Hitler, Adolf 1889~1945)는 1919년 9월 독일 노동당(나치스의 전신)에 입당, 1921년에 당의 독재자로 출발하여 감옥 생활까지 하다가 1933년 1월 수상으로 취임, 통치권을 확립한다. 1934년 수상 겸 대통령(총통)으로 유례없는 독재정치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팽창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침략정책이 추진되었다. 히틀러의 이 같은 팽창주의는 예술적으로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거대주의(Giantism)에 사로잡히게 된다.

    Altes Museum(F.Schinkel)

    그는 고전주의를 좋아하였으며 특히 기념비적인 건축을 완성하기에 열을 올리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열기 위한 주경기장, 드레스덴의 Picture Gallery, 베를린의 Altes Museum, Great Hall 등 민족적 자존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건축물을 완성하도록 건축가를 종용하였다.

    독일의 제3제국 건축물 스켓취(O.Lancaster)

    권위주의자의 특성

    동서세계를 통하여 이러한 제국주의적 건축을 고집하는 독재자들의 저변에 깔린 심적 배경을 보면 민족적 우월성 표방에도 뜻이 있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독재라는 것 자체가 개인 집단이 국가 권력을 빼앗아 독점하고 법규제를 받지 않고 지배하는 정치 체제인지라 독재자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기적적인 사실을 통하여 피지배계급에게 카리스마적 자질을 보여줌으로써 그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독재자에 귀의하도록 유도하는 카리스마적 지배를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재자들에 있어서 건축은 기적적 사실의 표출이라든가 제국주의적 표현에 사용됨으로써 독재적 권력에 대한 권위를 지니게 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 독재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요구나 건축의 기호성향을 보면:

    첫째, 자기민족의 우월성을 전통과 결부시키고 건축에 있어서의 전통 계승, 민족성의 표현 등을 유도하고 있으며,

    둘째, 기념비적인 건축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남김으로서 자신의 권위와 능력을 현세와 후세에 길이길이 남기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며,

    셋째, 그 시대 건축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함에 있어서 명료성과 동일성을 확실하게 획득하기 위하여 고전주의적 표현수법을 도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71년에 리노베이션 된 국립중앙박물관(종합건축)

    우리 문화시설의 권위주의적 처리

    군정하에서 우리는 국민의 정신과 마음을 살찌울 것을 목적의 하나로 하는—그것이 자의건 타의건—다수의 문화시설들이 계획되고 건축가의 손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또 건축물이 완성되었다. 특히 70년대 이후로 국민 생활이 점점 윤택해지기 시작하고 국가나 국민 모두가 정신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갈망이 솟구치기 시작하면서 그 숫자는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종류의 문화시설들이 생긴 것이다.

    예를 들면 부여박물관(1971, 김수근), 국립중앙박물관(1971), 국립극장(1973, 이희태), 경주박물관(1975, 이희태), 광주 박물관(1975, 이희태), 온양 민속 박물관(1976, 김석철), 제주민속 자연사 박물관(1977, 김홍식), 광주 박물관(1977, 박춘명), 세종문화회관(1978, 엄덕문), 호암미술관(1978, 장기인), 청주박물관(1979, 김수근), 강원도 어린이회관(1981, 김수근), 국립중앙박물관 개축(1986, 이승우), 국립 현대미술관(1986, 김태수), 국립 국악당(1987, 김원), 예술의 전당 음악당(1988, 김석철), 독립기념관(1988, 김기웅) 등이 있다.

    이러한 문화 시설군들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의 시설들이 과거의 나치스나 파시스트 독재자들의 건축에 대한 인식세계와 일맥상통하는 경향들이 엿보이고 있다. 통치자들이 국민의 지지획득을 목적으로 하건, 국민여망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건,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국민의 정신적인 품속에 마음껏 안겨 줄 수 있는 계획과 설계에 의해 국민들이 내것이라는 소유감 속에 긍지를 가지고 늘 가까이 접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도심지 속에서의 부지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가지 않으면 접근하기가 어려운 장소가 선택되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국립 현대 미술관같이 자가용족들 마저도 보물섬을 찾듯 간신히 찾아가야 하는 입지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부지는 공익 시설로서 국민들과 공감대를 같이하는 국민의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지였다 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큰마음을 먹고 한번 그곳을 갔다 오고 나니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가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 않는다면 분명 문화 시설로서 장소의 선택이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이들 부지는 무엇보다도 버스·전철등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한 일반 대중들의 방문이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국립극장 1973. 이희태

    시설에의 접근도 역시 문제를 안고 있다. 간선 도로나 진입로에서의 진입이 그러하다. 진정한 국민들에게 속한 문화시설이라면 찾는 방문객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시설의 중심부 깊숙이 들어갈 수 있고 또 문화와 만날 수 있어야 진정 내 집 같은 소속감을 갖는 국민의 문화 시설임을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특수 계급 층만 가야 될 것 같은 장소에 특수 계급 층만 출입할 것 같이 보여지는 접근로, 특히 보행자보다 차량 진입이 우선적으로 처리되는 진입로의 유도방식과 포장 도로(pavement)는 이용자에게 자기와는 동 떨어져 있는 다른 세계와 같은 인식을 갖게 하며 심적 부담감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다.

    시설의 공간 구성을 함에 있어서도 귀빈 동선이나 귀빈 관람석의 위치를 정하는 과정에서 보안을 강조한 나머지 시각과 청각사정이 양호한 층 전체가 귀빈 관람 층이 되고, 일반 관람객은 배제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좌석의 배치는 보안적인 측면에서는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귀빈의 일반 관람객으로 부터 완전히 분리가 귀빈에 대한 심적 괴리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좌석 배치 방법의 손쉬운 분리가 아닌 함께하는 분위기로서의 동질성 확보 속에서의 보안 방법을 심사숙고 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한다.

    세종문화회관 1978. 엄덕문

    세종문화회관 설계설명서의 계획의 전제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첫째, 복합적 다용도 기능을 갖는 시민의 전당으로서 충실한 공익성 표현.

    둘째, 기념적 건축물로서 한국 고유의 전통에 부응하는 조형.

    셋째, 대규모 옥내집회 공간이 갖는 웅장한 규모로서의 충실한 표현.

    이러한 계획 전제가 세종문화회관의 공간적 형태적 특성을 갖게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 이후 각 도시의 문화회관 현상설계에서는 세종문화회관이 원형(Proto-type)이 되어 이것과 비슷한 형태를 한 조형들이 계속해서 선택 되어지곤 하였다. 형태에 있어서 전통적·지역적 특성을 요구하고 표현하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건축세계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역사를 통하여 많은 군주국가와 독재정권에서 특히 앞에서 언급한 파시즘, 나치즘에서도 전통성을 강조하였다. 이들 문화시설의 전통표현에 있어 우리의 고건축에서 얻어지는 형태적 이미지의 현대적 표현이라는 형식주의(Formalism)적 접근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 형태가 시민에게 주는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웅대하거나 장엄함 보다 좀더 친근해 보이고 격식을 절제시킨 형태속에서 대중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조형속에 우리는 진짜 문화를 사랑하는 창조적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국립극장의 기단조성과 계단, 건물외주부에 쓰인 수많은 열주는 이 건물이 설계되고 세워졌던 시대의 권위의 대명사같이 사용될 정도로 강력한 국수주의적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가 주는 이미지는 친근감보다는 대중과의 정신적 괴리감마저 느끼게 한다. 독립기념관 배치나 기념관의 형상은 우리 전통을 마치 한마디로 요약한 듯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으나 권위적 표현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전혀 전통에 대한 내재적 질서 저변의 이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사찰건축이나 서원건축에서 볼 수 있는 외부공간의 질서나 진입체계의 시퀀스, 또한 이들 지붕선에서 얻어지는 곡선의 중복감, 자연과의 호흡, 스케일감 있는 공간 크기 설정 이 모든 것들이 사실상 엄연한 규칙과 질서 속에서 해석되어지고 표현되었던 것이다.

    독립기념관과 상징탑 1988. 김기웅

    독립기념관은 외부공간의 질서나 체계가 진입의 흐름이 우리의 것과는 사뭇 다른 황량한 벌판위의 오벨리스크를 연상시키듯 마무리되고 말았다. 기념관 지붕이 맞배지붕이라는 고전적(古典的) 형태만 빌었을 뿐 기형학적인 기와지붕의 크기는 동양사상에서의 자연에 대한 호흡의 합일성, 그리고 대화의 자세가 아니라 당돌하게도 자연과 일대일의 입장이 되어 보려는 듯한 서구적인 발상에 기인하는 것 같다. 더구나 헤테로토피아적이라 할 한국고건축의 지붕의 중첩미는 아무데서도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상징탑과 기념관의 형상은 남근(男根)의 권위와 위용을 보는 듯하다.

    권위가 갖는 원래의 뜻이 시사하는 권위주의는 그 근성이 나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권위만을 위하여 권위를 내세우려는 성급한 마음에 입지에서부터 접근방식 공간의 구성, 형태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본질적인 이해없이 겉핥기식의 형태론이나 공간 구성을 논하고 표현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이든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환경적 질서의 파악과 우리 전통과 지역성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이루어진 바탕위에 권위에 대한 외형적 가치부여보다는 내면적 방법을 통하여 호감성 높은 권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림건축 이사〉

    방철린/칸종합건축사사무소(주)/권위주의 해석과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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