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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退溪 ; 이황,1501~1570)선생-2

    2. 늘그막에 돌아와 숨어 살면서 산수나 즐긴다.

    도산서당의 자리를 잡고 난 후 선생은 설계에 정성을 다하였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돌이켜 보건데 건축설계가 부실할 때 나타나는 결과가 많은 불만과 불편함을 제공한다는 것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선생나이 60세가 되었을 때 도산서당과 농운정사(隴雲精舍) 두동의 건축물이 1년 간격으로 차례로 지어졌는데 조종의 부름으로 반 년 넘게 한양에 있을 때도 설계도를 수시로 그려 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도산서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구상하고 퇴계선생이 직접 기거하며 책을 읽고 학문연구와 개인적인 수양을 위한 방(房)과 휴식을 취하며 자연을 즐기고 손님을 맞이할 청(廳)을 계획하였다. 이 방과 청은 주자(朱子)의 글이나 시에서 따와 각각 완락재(玩樂齋:즐겨 완상함), 암서헌(巖栖軒: 바위에 깃듬)이라 하였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퇴계선생이 선택한 집의 크기는 단순한 3칸이지만 실제로 써야 하는 공간은 다양하고 나름 크기를 요구하는지라 각 칸의 공간을 서로 내어주고 더하는 수법으로 필요한 공간을 알뜰하게 챙기고 확보하였다. 이로 인해 기둥을 이용한 단순한 칸의 모듈라 시스템 속에서 공간의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입면의 변화도 동시에 충족하였다.

    ​하지만 도산서당의 매력은 사실 암서헌 동쪽에 연결되어 있는 살 마루에 있다. 젊었을 적 도산서당에 처음 갔을 때 이 살 마루를 보고 짜릿함을 느꼈었다. 청 바로 옆 살 마루가 성근 마루 틈으로 맞는 바람으로 자연과의 친화성을 높힌 매우 매력적인 공간이면서 건축의 격을 달리 해 주는 요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살 마루에 관한 이야기는 선생의 친필로 쓴 도산기(陶山記)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자료를 찾던 중 안 사실이지만 이 살 마루는 처음에 없었던 요소인데 서당의 제자들이 늘어나자 증축을 고려하던 중 제자인 이덕홍(李德弘)의 조부 이현우의 집에서 배워온 것이라 한다. 이현우의 집 처마 밑에 방을 달아매서 사용하였는데 선생이 이것을 보고 ‘모름지기 선비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한국국학진흥원의 ‘한국의 편액1’)

    ​선생은 이 아이디어를 살려 암서헌 동쪽에 살평상 두개를 맞댄 연결과 부섭지붕(익첨:翼簷) 설치로 공간 확장 작업을 간단히 끝낸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변화는 선비로서의 퇴계선생의 검박한 생활태도와 사상이 겉으로 나타난 모습이지만 검박이 멋으로 둔갑하면서 단조로웠을 공간과 맞배지붕의 형태 변화에도 독특한 향기와 변화를 제공하였다고 본다.

    ​또한 완락재 서편에 주방시설이 없는 아궁이 공간과 골방이 있는데 이 골방도 후에 증축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의 증축을 살마루 증축 시 같이 했을까 했지만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언제 증축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서원을 지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방당(方塘)이다. 천원방지(天圓方地: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개념으로서의 방지(方池)와 다른 의미를 갖는 방당은 학문탐구와 내면 수양의 공간인 서당에서 수양하는 ‘마음’을 비유하며 깨달음과 수양의 중요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도산서당 남쪽을 가로지르는 담장의 일부를 두 군데 끊어내고 서당 앞쪽엔 출입을 위한 싸리나무 사립문을 두어 유정문(幽貞門)이라 하고 그 동쪽 끊은 곳에는 방당을 설치하고 연을 심어 정우당(淨友塘)-‘마음이 깨끗한 친구’이라 하였으며 그 동쪽 곁에 있는 계곡에는 몽천(蒙泉) 이라 한 샘을 두었다.

    ​퇴계선생은 도산기에서 도산서당에 배치 시킨 건축요소 18가지에 대하여 칠언18절(七言十八絶)을 지었고 주변 자연환경과 차경(借景)에 대하여 5언잡영26절(五言雜詠二十六絶)을 그리고 남(他)의 경치에 대하여 별록4절(別錄四絶)을 지었다. 그 중에 다음은 칠언18절 중 도산서당에 대한 시이다.

    ​大舜親陶樂且安 대순친도락차안

    淵明躬稼亦歡顔 연명궁가역환안

    聖賢心事吾何得 성현심사오하득

    白首歸來試考槃 백수귀래시고반

    ​순 임금은 몸소 질그릇을 구웠지만 즐겁고 편안하였고

    도연명은 농사를 지었지만 또한 기쁜 낯이었다.

    성현의 마음을 내 어찌 알리오

    늘그막에 돌아와 숨어 살면서 산수나 즐긴다.

    (역자:김태환)

    ​(주; 考槃은 은둔하여 자신만의 즐거움에 잠긴다는 뜻을 가짐.

    試考槃은 고반의 경지를 헤아린다는 뜻을 가짐.)

    ​태평성대를 이룬 요순 상고시대의 성군이었으나 우에게 선양을 하고 여생을 질그릇 구우며 살던 순 임금이나 동진 말기 굽힘과 아첨 불가 성격으로 관직을 떠나 농사를 지으며 무릉도원을 추구했던 도연명이 여생을 즐기는 방법과는 다르게 도산서당과 자연에 묻혀 오로지 학문과 후학양성의 즐거움으로 살겠다는 퇴계의 의지와 각오가 우러나는 시이다.

    ​이야기는 계속됨.

    ​글 : 방철린/칸종합건축사사무소(주)/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退溪 ; 이황,1501~1570)선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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