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서 아빠는 원칙을 세운다. 태어나는 아이에게 공부 때문에 절대 스트레스 주지 말자는 것. 또한 영어ㆍ수학은 아내가, 공자ㆍ맹자는 아빠가 맡는다는 계획 하에 아이를 키웠다. 그런데 잘 될까? 초등학교 4학년이던 외동딸(이화영)에게 아빠가 묻는다.
“딸아, 요새 성적이 어떤가요?” “35등 했어, 아빠.”
뭐라? 36명 중 35등이라고? 이때부터 아빠의 본격적인 인문학교육이 시작된다. 아빠의 생각은 이렇다. “왜 책상에 앉아서 입시를 위한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가?” 건축답사를 통해 딸아이의 생각과 지식의 폭을 넓히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 아빠는 서둘러 딸과의 답사를 감행한다. 딸에게 건축물을 보여주면서 이에 관련된 역사, 정치, 사회, 예술, 문화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정성을 쏟는다. 답사 과정 중 티격태격 부녀간 대화가 오가고 딸의 돌출 질문이 아빠를 긴장시킨다. “아빠, 섭정이 뭐지요?” “자유센터와 이승만이 무슨 상관이에요?” “쿠데타가 뭡니까?” “프로테스탄트가 뭐예요?” 등등. 서울에서 제주까지 딸의 손잡고 종횡무진 건축답사가 이어진다. 절두산순교성지, 서울외국인교회, 자유센터, 국회의사당, 국립현대미술관, 워커힐 힐탑바, 이화신세계관, 대한성공회 성가수녀원, 암사동선사주거지,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 아주미술관, 해남 공룡화석지 보호각, 기당미술관 등을 순례하며 딸은 어느덧 갑신정변, 4ㆍ19혁명, 5ㆍ16쿠데타, 4ㆍ3사건 등 암울했던 근현대사를 몸에 새긴다.
이 책의 장점은, 건축답사는 무료하고 딱딱하리란 예상을 뒤엎는 요소가 가득한 점이다. 환기미술관, 미당고택, 박수근미술관, 명성황후생가, 김옥길기념관, 이상고택, 의재미술관 등을 답사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에 대해 탐구하면서, 건축답사지에 걸맞는 고답적 시(월산대군, 김남주, 김수영, 유치환, 황동규, 정호승, 김초혜 등)도 곁들여 건축여행길이 때로는 낭만과 서정으로 넘친다.
이 책의 장점은 또 있다. 건축가 없이 건축물이 존재할 수 없듯, 한국건축 1세대를 대표하는 김수근, 김중업, 이희태 등을 비롯해 2세대 김원, 김홍식, 우규승, 김인철, 방철린, 조성룡 3세대 승효상, 김개천, 이종호, 김억중, 이필훈 등의 작품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나아가 렘 콜하스,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노이슈타트 등 외국 작가들이 설계한 국내 건축물을 돌아보면서 건축예술의 고갱이를 편안한 어조로 풀어낸다. 더불어 건축가들과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얻어들은 야사, 설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도 내용을 더욱 풍성케 한다.
무엇보다 재미없고 따분할 수 있는 건축이야기를 하면서 딸을 결코 소외시키지 않는 점도 이 책의 강점이다. ‘H형강’이나 ‘코르텐강’ ‘필로티’ 같은 건축용어들을 딸의 수준에 맞게 풀어주며 실생활에서 쓰이는 ‘사자성어’도 친절히 설명해주어 인생의 참교육을 주고 있다.
건축답사를 시작한 지도 올해로 7년째 접어들고 있는 요즘, “아빠, 이 건물 누가 설계한 작품인지 알아요?” 하면서 딸이 아빠에게 장 누벨의 <루브르 아부다비> 작품을 들이대며 아빠를 가르치려 한다.
이 책은 하나의 시도이다. 건축을 건축학도에게만 이해시키려는 단순 논리에서 벗어나, 일반 독자를 참여케 하는 역설적 건축이야기다. 건축물이란 매개를 통해 그 안에 담겨 있는 건축가의 의도, 역사와 예술, 인물의 삶을 다각도로 들여다보는 방법과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건축책과 차별화된다. 또한 가족간의 대화 단절, 가족 해체 등의 위기에 놓여 있는 현시점에서《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은 건축답사를 통해 가족간의 화목을 유도하는 소통의 서書가 될 수 있다.
■장(章) 제목으로 짚어보는 주요내용
●제1장 건축, 근현대사를 몸에 새기다
먼저 ‘제1장 건축, 근현대사를 몸에 새기다’에서는 개화기와 구한말, 식민지 시대 그리고 60~70년 독재시대와 태생을 같이하는 건축물을 돌아본다. 개화기 시대 입국한 푸른 눈의 이방인들이 한국에 와서 정착하고, 서양식 병원을 짓고, 의술과 문화를 전파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또한 독재시대의 산물인 <자유센터> <워커힐 힐탑바> <국회의사당> 등의 건축물을 통해 김수근 이희태 등 당대 스타건축가들과 정치인들과의 관계를 추적하며, 건축의 존재의의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딸과 아빠는 가까운 서울 근교에 자리한 <절두산순교성지> 답사에서 출발한다. 천주교도를 박해한 흥선대원군의 만행을 고발하며 당시 쇄국정책을 폈던 대원군과 그 반대파 간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알기 쉽게 풀어간다. 또한 <절두산순교성지>의 건축학적 의미를 짚고, 설계자인 이희태의 인간적 낭만성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건축답사를 바탕으로 인문학적 교양과 인간적 감수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건축이 주된 이야기이지만, 이에 매이지 않고 문학과 미술에 대한 얘기도 곁들이는 재미를 주고 있다. 가령 ‘절두산성지’를 돌아보던 중 이용재는 딸에게 김남주 시인의 <절두산>을 나직이 읊어주며 개화기 흥선대원군에게 박해받은 천주교도의 한과 넋을 가슴으로 전한다. 또한 <자유센터><워커힐 힐탑바> 등을 통해 박정희, 김종필, 전두환 등 당대 정치인과 건축가가 어떻게 연루되어 건물이 완성되어 가는지 에피소드 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서울외국인교회> 답사에서는 한국 개화기에 활약한 푸른 눈의 이방인들을 조명한다. 연세대 설립자인 언더우드, 갑신정변 중 부상당한 민영익을 지극 정성으로 치료한 앨런, 배재학당을 설립하고 성경 국역사업에 뛰어든 아펜젤러 등의 자취를 더듬는다. 동시에 그들이 어떻게 한국 근대문명의 한 축을 담당했는지 조명한다. 또한 프로테스탄트(개신교)를 전파하고 병원(광혜원)과 대학(배재학당, 연희전문)을 지어 서양의술, 선교, 교육을 꽃피우다 숨을 거둔 외국인들을 부각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이방인들이 양화진 <외국인공원묘지>에 묻히는 과정과 한국기독교역사의 산실인 <서울외국인교회>가 설립되기까지의 역사를 따라간다. 더불어 <서울외국인교회>를 설계한 김광옥의 건축미학을 얘기하면서, 마주보고 있는 <절두산순교성지>가 한국적이고 여성적이라면 <서울외국인교회>는 직선적이고 남성적이라는 비평을 곁들인다.
이밖에도 5ㆍ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만든 <워커힐 힐탑바>(현 피자 힐)를 답사, 당시 한국과 미국 간의 상하관계에 대해 딸에게 알기 쉽게 이야기한다. <워커힐 힐탑바>는 당대 건축스타인 김수근 작품이지만, 미국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서 <워커힐 힐탑바>로 명명되었음에 쓴웃음 짓는다.
한편 <국회의사당>은 김중업이 참여한 작품이지만, 건축가들의 합작合作으로 오히려 개성이 묻힌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애초에 <국회의사당> 현상공모에서 김수근이 1등으로 당선되었지만, 5ㆍ16쿠데타 중 폐기되고 유명 건축가들의 합작으로 건물이 지어지는 폐단에 대해 밝히고 있다. 또한 식민지 시대 국회로 쓰인 부민관(극장 겸 집회장)에서 국회의사당까지의 역사, 그 시기 활동한 고종과 이준 열사 등을 연결고리로 다루고 있다. 반공단체와 박정희 대통령의 연정을 상징하는 <자유센터>(현 자유센터 웨딩홀)에 관한 일화, 그 설계자인 김수근이 반공연맹단체에 연루된 사연 등을 이야기한다. 그밖에도 신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탄생한 수녀원 성당인 <대한성공회 성가수녀원 성당>을 답사하며, 외국 열강들이 공사관 자리로 눈독들인 정동 일대에 대한성공회가 들어서는 과정을 따라간다. 영국 성공회 소속 건축가인 아서 딕슨이 설계하다 그만둔 대한성공회 대성당 증축에 뛰어든 김원의 건축미학도 짚어본다. 한편 대한제국 시절,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한 <구벨기에영사관>이 식민지 시대 일본 생명보험사를 거쳐 일본 해군성, 다시 대한민국 해군 헌병대 청사를 거쳐 상업은행 사료관, 마침내 이명박 前서울시장의 제안으로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흥미롭게 더듬는다.
●제2장 시대인물, 건축으로 남다
‘제2장, 시대인물, 건축으로 남다’에서는 시인 이상과 서정주, 화가 김환기와 박수근 그리고 허백련, 교육자 김옥길, 조선의 비운의 국모인 명성황후 관련 건축물을 돌아본다. 각기 관련 인물들의 생애와 예술, 인간적 면모, 갈등 등을 딸과 공유하면서 풀어나간다. 미당 서정주의 고택을 이야기할 때는 ‘친일파 문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솔직히 드러내며 독자들 또한 미당고택을 지키려는 노력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먼저 한국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을 기린 <의재미술관>. 의재 허백련은 생전에 열성적으로 문하생을 가르치고 농업기술학교를 설립해 농업인재를 양성했으며 사군자와 서예 등 문인정신에 바탕을 둔 많은 작품을 남겼다. 본문에서는 의재 허백련이 무등산 자락에 ‘춘설헌’을 짓고 게오르규, 함석헌, 최남선, 서정주 등 당대 수많은 명사들과 교류했음을 언급하며, 허백련의 손자이자 화가인 허달재에 의해 1994년 <의재미술관> 건립이 추진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히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건축가 조성룡이 <의재미술관> 설계를 맡게 되는 과정도 흥미롭게 그린다. 젊은날 영화감독이 꿈이었고, 금속학을 전공한 뒤 다시 건축으로 방향을 돌린 조성룡이 무등산 자락의 등산로를 살림으로써 친환경건축물 <의재미술관>을 탄생시킨다. 등산로에 면한 전면 창에 무등산의 풍경이 오롯이 담김으로써 의재는 화선지에 산수화를, 조성룡은 창에 산수화를 그린다는 의미 있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는다.
한편 <환기미술관>은 한국추상화의 거목인 김환기를 기린 미술관이다. 그의 부인이자 화가인 김향안이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설미술관이란 점에서 환기미술관을 주목한다. 부암동 북악산 골짜기에 세워진 이 미술관은 김환기가 뉴욕에 머무르던 시기 친분을 나눈 우규승이 설계를 맡아서 의미 깊다. 이 우규승은 ‘88올림픽선수촌현상공모’에 당선되면서 국내에 화려하게 데뷔한 재원이란 점 등도 곁들여 건축가의 이력을 흥미롭게 유추하는 정보도 주고 있다. 전면 도로와 8미터 높이의 경사를 극복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건축물로 자리한 <환기미술관>을 극찬하고 <환기미술관>의 하이라이트인 옥상정원도 함께 소개한다. “이 사각형 옥상정원에서 3층 미술관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산으로 계속 올라갈 수도 있고 다시 정문 쪽으로 돌아 내려갈 수도 있다. 각자 마음이다. 그야말로 산책로다. 자연과 경쟁하지 않고 자연과 어울리는 유희의 공간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외국의 유명한 환경건축가인 믹 피어스를 데리고 온다. 딸에게 개미집의 과학성을 설명하면서, 믹 피어스가 이 개미집의 내부 온도 조절법을 차용하여 아프리카에 거대 쇼핑몰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잊지 않고 들려준다.
군소도시의 반란 <박수근미술관>은 서민의 화가인 박수근을 기리는 미술관이다. 1997년 강원도 양구군의 후원으로 설립된다. 작은 지방도시의 건축물을 섣불리 설계할 작가가 없는 마당에 사비를 들여 건축설계에 나선 이종호를 독려한다. 작은 것을 아트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종호)이라며 인간적 평을 내린다.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화강암 덩어리로 벽을 쌓고 산자락을 껴안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관 중앙으로 흐르는 실개천도 막지 않고 대지에 건물을 새겨나간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좋은 평을 내리고 있다. <박수근미술관>이 건축상인 아천상을 수상했다는 점도 잊지 않고 언급한다. <박수근미술관> 옆으로 조성된 <박수근마을>도 중점적으로 다룬다. 화장기가 없는 수수한 <박수근마을>을 이야기하면서 더불어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소재의 박수근 생가가 국밥집으로 방치되고 있음을 한탄한다. 동시에 문화재청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한다.
<이상고택>과 <미당고택>은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이상과 미당의 회한이 숨쉬는 곳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이 한때 조선총독부 건축기사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이 이상의 부인이기도 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예산부족으로 이상고택이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이에 이상고택 살리기에 적극 발벗고 나선 건축가 김원의 뒷얘기도 재밌게 소개되고 있다. 한편 박정희 정권 때 조성된 ‘예술인마을’에 들어가 살았던 미당 서정주의 고택도 답사한다.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 연극인 이해랑, 연출가 김정옥 등 많은 예술인들의 주거지였던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마을’의 탄생 배경을 더듬으며, 이젠 다세대주택지로 변한 ‘예술인마을’에서 유일하게 남은 미당고택을 천천히 돌아본다.
역사체험과 화해의 장인 <명성황후 생가>를 돌면서 명성황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기사환국, 갑술환국 등 역사를 더듬어본다. 권력의 암투 속에서 일본 자객의 칼에 비참하게 숨지는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굵직굵직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2005년 그 일본인자객의 후손 두 명이 사죄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인간의 용기와 반성과 상식을 보여주는 행동”으로 개인적 평가를 내리고 있어 인상적이다.
<김옥길기념관>은 단순한 직사각형 매스(덩어리)로 무한한 공간을 연출하는, 도심 속의 쉼터로 소개된다. <김옥길기념관>은 이름과는 달리 카페라는 점에서 기념관이되 기념관이 아니라는 점이 특징이다.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학계와 기독교계서는 널리 알려진 김옥길에 관한 ‘칼국수’ 일화도 곁들인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고 기독교계에서 활발히 활동한 김옥길은 연세대 교수,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동길의 누이이기도 하다. 김동길이 누이와 살던 자택 마당에 <김옥길기념관>을 세우는 과정, 설계자인 김인철에 대한 정보 등도 재밌게 소개되고 있다.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건축비평학적 해석도 잊지 않는다. <김옥길기념관>은 장식 없는 노출콘크리트로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1층과 2층은 카페, 지하는 채플이라는 점에서 기념관이 지닌 권위를 버리고 대중과 호흡하는 소통의 장이란 점에서 타 기념관과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제3장 건축, 아트와 실용주의의 유쾌한 만남
‘제3장 건축, 아트와 실용주의의 유쾌한 만남’에서는 종교건축에서부터 특색 있는 미술관, 대학 내 교육관, 기업 연수원에 이르기까지 실용과 아트의 절묘한 결합을 이야기한다. 가령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 김중업의 <주한프랑스대사관>에 주목하자. 혁명과 암흑의 시대에 태어난 학춤, 그 이상의 군무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는 설계를 맡은 김중업의 문학소년 시절, 세계적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와의 인연, 가난한 화가 이중섭과의 교류 등에 대해 흥미롭게 다룬다. 특히 <주한프랑스대사관>을 짓는 중 4ㆍ19혁명과 5ㆍ16쿠데타가 터져,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공사비 송금이 늦어지는 바람에 김중업이 (백지에 자기 이름을 휘갈겨 쓰며) 개인어음을 발행, 위기를 넘긴 일화 등은 무척 흥미롭다. “건축은 변명이 통하지 않아요. 예산부족으로 허술하게 지었다, 의뢰인이 비상식적인 요구를 했다, 등의 핑계는 댈 수 없어요. 서 있는 그대로가 증거야요.”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김중업의 건축미학도 함께 다룬다.
그런가 하면 세계건축의 거장이라 불리는 렘 콜하스, 장 누벨, 마리오 보타의 합작품인 <삼성미술관 리움>의 탄생 배경, 관악산 등산객들의 민원을 잘 수습한 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서울대학교미술관>, 건축설계법의 까다로운 법조항을 수렴하고 아트를 만드는 데 성공한 ‘길이 아닌 길’인 인사동 <쌈지길> 등 많은 건축물을 소개한다.
신과 인간이 만나고,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만인의 집 <경동교회>에서는 한국 개신교의 최고 지성인 강원용 목사가 세운 경동교회 역사를 짚어보고, 김수근의 3대종교건축물 중 하나인 <경동교회>의 건축미학을 조명한다. “특히 정면에 기도하는 모습을 구현한 타워를 중심으로 1층은 인간과 인간, 2층은 인간과 하나님, 3층은 인간과 자연의 만남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한 것에는 김수근의 사려 깊은 예술정신이 스며 있었다.” 이는 설계자 뜻을 존중한 강원용 목사의 술회다.
한편 네덜란드 태생의 스타 건축가인 렘 콜하스의 설계작인 <서울대학교미술관>도 답사한다. 학생과 더불어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공중의 거대한 조각’인 <서울대학교미술관>은 국내 최초의 대학 미술관이다. 본문에는, 관악산 자락에 비스듬히 서 있으며 삼성문화재단이 후원, IMF 외환위기 때 중단되었다가 재개된 사연, 관악구청으로 밀려든 등산객들의 민원 등의 난관을 헤치고 미술관이 설립되는 과정 등을 다룬다. 시나리오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렘 콜하스의 건축이 감성보다는 이성(데이터)에 기반한 건축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저자의 비평도 재밌다.
부녀는 사찰 답사에도 관심을 보인다. 상식을 깨고 보편으로 나아가는 역설의 법당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 답사에서는 설계자 김개천의 이름에 얽힌 일화, 김개천이 대학 포기하고 절에 들어가 도를 닦던 일 등을 친근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사찰과의 인연이 훗날, 설계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설계자가 스님과 함께 <물의 교회>로 유명한 일본의 스타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전시회를 관람하고 영감을 얻은 뒤,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을 설계했다는 저자의 평은 귀 기울일 만하다. 기와지붕도 불탑도 없는, 그저 그런 네모반듯한 사찰이 종교성을 뛰어넘어 만민을 포용하는 건축으로 나아갔다는 점을 비평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그러다 잠시 딸과 사찰을 보는 방법이며 아미타불 등 부처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점도 흥미롭다.
안양예술공원의 원색적인 둥근 권총의 숲속의 자연영화관 <리볼버>에서는 1969년 이래 안양유원지로 명성을 날리다 2005년 새롭게 태어난 안양예술공원 내의 프로젝트 건축예술에 대해 다룬다. 독일의 세계적인 설치작가 노이슈타트의 <리볼버>를 조명, 안양유원지 내의 울창한 언덕 숲과의 조화와 합일을 이야기한다. 특히 노이슈타트가 안양시장 몰래 두 그루의 나무를 베어낸 일화, 헤어드라이기를 폐기하고 리볼버로 돌아선 이유, 산세가 높아 인부들이 일일이 철골자재를 날랐다는 사연 등을 재미나게 풀어낸다.
거장들의 3인3색, 하나의 자궁 안에서 톡톡 튀는 복합문화공간 <삼성미술관 리움>은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가 한 대지 내에서 각기 다른 동을 설계해 하나의 미술관을 만든 케이스. 캐나다 출신의 거장 프랭크 게리의 설계안이 폐기되고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 등이 합작으로 다시 설계한 내막 등이 소개된다. IMF 외환 위기를 이겨내고 8년 만에 테라코타 벽돌의 뮤지엄1(마리오 보타 설계), 부식 스테인리스의 뮤지엄2(장 누벨 설계), 블랙 콘크리트의 아동교육문화센터(렘 콜하스 설계)가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을 따라간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이들 세 건축가들의 건축미학을 비평하고, 저자가 세 사람의 작품에 평점을 매긴 점도 재밌다.
성서의 오병이어(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형상화한 원형 아트 <초당성당>. 본문에서는 조선 중기의 문신 허엽이 호를 초당으로 한 데서 강원도 초당마을이 생기게 되었음을 밝히며, 허엽이 마당 우물물로 빚은 두부가 ‘초당두부’로 유명해지게 되었다는 일화를 함께 소개한다. 허엽의 자제인 허균과 허난설헌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 한 많은 일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초당성당>의 설계를 맡은 김영섭의 투잡(음악평론과 건축설계)을 스치듯 말하기도 하고, 원형의 성당 본당과 앞마당은 두 마리의 물고기를, 부속실인 사제실, 유아실, 회합실 등은 다섯 개의 빵을 상징한다는 건축적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미완성에서 출발, 살아가는 사람의 희망대로 완성되어 가는 <미제루>. 이 건축물에서는 설계자 방철린이 대학시절 우연히 연을 맺은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제루>를 짓게 되었음을 소개한다. 또한 미제루가 있는 강원도의 역사를 한번 훑어본다. 조선시대 학자 유성룡을 기리는 병산서원 내 만대루에서 영감을 얻은 미제루는 사방으로 뚫린 벽을 통해 자연과 사람과 소통하는 길을 암시한다.
인사동의 복합문화 산책로, 길은 길이되 길이 아닌 건축물 <쌈지길>에서는 프로스트의 시 <두 갈래의 길>로 시작한다. 문화의 거리 인사동의 유구한 역사, 즉 실개천 흐르던 골동품 거리에서 시민의 문화거리로 탄생한 변천사 등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1999년 종로구청이 실시한 ‘인사동 거리 살리기’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김진애의 설계안을 잠깐 다루기도 한다. 또한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의 운동 등의 의의도 수렴, 인사동 내 특별설계구역을 위한 특별법 규정을 존중하되 이를 뛰어넘은 <쌈지길> 건축 과정도 설명한다. 문화지구 특별법을 존중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나선형 길의 미학 <쌈지길>은 네오름길이 있으며 각 길에 따라 갤러리, 디자인상품상점, 전통공예공방, 전통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상업과 예술의 절묘한 만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쌈지길>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최대의 사설미술관, 지역을 넘어 아시아로! <아주미술관>. 신학도 시절부터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키우며 미술관 건립을 꿈꾼 이재흥이 자비를 털어 만든 국내 최대의 사설미술관이다. 목회와 미술관 관장이라는 즐거운 이중생활을 하며 지역사회의 문화전도사로 활동하는 모습이 함께 담겨 있다. <아주미술관> 내의 명물인 150년 된 한옥(항여조)에 관한 일화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대전의 토박이 건축가 김억중이 이재흥과 함께 외국의 많은 미술관을 답사한 후 설계한 아주미술관의 건축미학을 재조명하고 있다. 노출콘크리트의 웅장한 아름다움과 한옥의 따뜻함이 만나 현대와 전통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재창출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한편 미래 여성경영인의 산실을 꿈꾸는 날개 달린 경영관과 기숙사 <이화신세계관&이화글로벌타워>에서는 <이화신세계관>과 <이화글로벌타워>의 탄생배경을 흥미롭게 짚어본다. 또한 소음 심한 도로변의 난점을 극복한 건축적 성과 등을 따진다. 설계 도중 이화여대 출신의 기독교도들과의 마찰, 이화여대 교수들로 구성된 ‘김원감시단’ 발족과 해체 등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관리와 예술 간 자존심 싸움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대표적인 합리적인 건축가인 이필훈이 설계한 <동덕여자대학교학생관>도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기존 학생관을 부수지 않고 지하주차장 공사비 15억을 절약한 이필훈의 합리적 리노베이션에 대해 아낌없는 칭찬을 보낸다. 특히 여대생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앙케이트 조사를 거쳐 여성심리를 파악했던 것이 주요했다. 각 층마다 화장하는 화장실을 따로 만든 것인데 대인기이다. 또한 기존 학생관 외벽에 구멍 뚫린 타공판을 붙여 30여 년 과거 추억을 미래로 연결하고 있다. 천창에서 햇빛이 쏟아지고 너른 복도에서 음악회를 열 수 있는 훌륭한 학생관이 탄생한 것이다. 건축비 10억 이상을 절감해주면서 학생들에게 환영받는 공간을 만들어준 이필훈의 합리적 건축에 저자는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파주출판도시 안의 꿈동산, 아이들의 상상력을 북돋우는 <탄탄스토리하우스>. 경기도 파주시가 파주출판문화정보단지로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 건축가 승효상과 민현식이 건축코디네이터를 맡아 출판문화정보단지 내 수많은 예술건축의 밑그림을 그린 일 등을 흥미롭게 다룬다. 파주출판도시 안 6섹터에 속한 탄탄스토리하우스. 건물의 외관보다는 내부 공간의 흐름을 중시하는 방철린의 건축미학이 잘 살아난 <탄탄스토리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낸 부녀의 하루도 잔잔하게 그린다.
특정한 유행에 경도되지 않고 자연의 경관을 따르는 겸손한 건축가 조남호가 설계한 <교원그룹 도고연수원과 비전센터>에서는 교원그룹 설립자의 고향인 충청도에 도고연수원이 들어서는 과정, 설계자 조남호와 교원그룹의 인연을 다룬다. 뒤에는 삼성산, 앞으로는 연못이 잔잔히 흐르는 도고연수원의 입지 등을 배산임수 개념으로 설명한다. 따뜻한 목구조의 게스트하우스의 건축미학도 조명하며, 청평호수 뒤쪽에 지은 비전센터도 함께 이야기한다. 조선의 인문학적 건축이 해보다 풍광을 예우하듯 비전센터도 풍광을 존중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저자의 은사인 건축학 교수 김경수의 사택 <다물마루>에서는 스승과의 개인적 친분 관계가 정감 있게 그려진다. 딸과 함께 <다물마루>를 방문, 은사와 담론을 즐기며, 때론 은사 내외의 불타는 향학열을 부러워하는 심정도 솔직히 담는다. 또한 산 아래 독특한 퓨전 한옥을 틈틈이 완공해가는 재미가 <다물마루>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다물은 고구려의 정치이념인 ‘옛 고토를 회복한다’란 설명도 잊지 않는다. 돈이 모자라 1층은 콘크리트로, 2층은 한옥으로 지은 <다물마루>에서 저자는 은사와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잔잔한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닥터박갤러리>에서는 25년간 꿈꾸던 사설미술관을 드디어 짓게 된 내과의사 박호길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빈자의 미학’으로 유명한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를 맡아 눈길을 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닥터박갤러리는 떠 있는 배’다. 1973년 만들어진 팔당댐의 댐문을 열면 갤러리는 가만 있어도 팔당댐 관리소장의 명령에 따라 갤러리가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한다는 것. 이렇게 자연과 하나되는 건축을 설계한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에 대해서 저자가 아내와 담론을 즐기는 모습도 등장한다. 또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자택 <수졸당>으로 건축문화대상을 받은 승효상의 이력을 언급하면서 수졸당(守拙堂, 보잘것없는 집)과 《노자도덕경》을 연결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제4장 건축 공간, 교양과 휴식의 장이 되다
본 장에서는 교양과 휴식의 장이 되는 건축공간을 답사한다. <강하미술관&거제도 30평집>을 우선적으로 소개하면서 거제도에서 상주감리를 맡으며 겪었던 애기를 재밌게 담고 있다. 강하미술관의 경우 1997년부터 양평군 강하면에 짓기 시작한 미술관이지만, 아직 완공이 안 된 상태이다. 현재 건축이 계속 진행중인데, 내년 2008년 미술관 오픈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디자인을 바꿔라” 건축주의 주문은 계속되고, 설계를 맡은 김개천의 인내와 근성도 대단하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20년 동안 건축이 진행중이며, 완공되려면 앞으로 100년 후쯤이라는데, 10년 정도는 끄떡없다는 식이다. “그림 안 걸어도 건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품”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강하미술관의 완공을 기대해본다.
연이어서 소개된 ‘거제도 30평집’에서는 이 글의 저자 이용재가 건축현실을 떠난 지 3년 만에 상주감리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거제도 30평집은 “조선의 인문학적인 건축”이다. 배치도도 없고 이 점이 기둥이고 저 점이 건축인 전면 3칸 측면 두 칸, 이것으로 설계 끝이라 일축한다. 바다 쪽으로 백년 됨직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소나무가 디자인의 출발점이자 전부라는 30평집은 바다와 소나무, 하늘, 별을 담아내는 무소유 건축이라 할 법하다. 집인지, 배인지 거제도 앞바다를 유유자적 떠다니는 선박 건축의 미학을 보여주는 김개천의 작품에 상주감리 맡았던 저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억겁의 중생대를 불러오는 땅끝 마을 공룡 체험장 <해남 공룡화석지 보호각>에서는 해남 우항리에서 발견된 공룡과 익룡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물갈퀴새 발자국 등이 발견된 고생물화석지로 유명한 이곳에 석유시추선이 들락거리다가 석유 대신 깊숙이 숨겨진 알로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보호각이 설치된 내막 등을 이야기한다. 또한 쥐라기시대의 왕자인 알로사우루스와 백악기시대의 왕자 티라노사우루스의 특성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짚고 넘어간다. <해남공룡화석지 보호각> 외에도 2007년 4월 완공된 <공룡마을>을 돌아본다.
1925년 대홍수가 토해낸 한강변 <암사동선사유적지>를 답사, 신석기인의 터전과 생활상 등을 돌아본다. 또한 캐나다에서 온 목구조 건축 기술자문팀도 시샘한 김홍식의 목구조 양식 ‘전시관’의 건축미학을 조명한다. 재현된 신석기인의 움집에서 딸에게 은근슬쩍 밥벌이의 고단함을 토로한 저자의 내면도 함께 볼 수 있다.
외국군 주둔지로의 오명 벗고 시민문화사를 새로 쓰는 용산의 꽃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몽골군 침입이 있었던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때에는 임진왜란, 임오군란 등을 거치며 일본군 침입지였고, 6ㆍ25전쟁 때는 미군 등 외국군 주둔지로 쓰이는 등 슬픈 역사를 지닌 용산을 돌아본다. 김영삼 정부 시절 치적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던 조선총독부 관사를 철거한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미군기지 이전 논의가 본격화된 1988년 전후의 시대상 등도 함께 돌아본다. 또한 용산미군기지 이전문제를 놓고 미군의 새 주둔지로 결정된 평택과 오산 주민의 디아스포라(현대판 이주)를 딸과 함께 이야기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설계자는 박승홍이다. 그는 세계의 유력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국립중앙박물관 현상설계에서 당당히 뽑힌다. 조선 건축인 병산서원의 만대루와 부석사의 안양루에서 영감을 얻어 <국립중앙박물관>을 설계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안양루와 만대루 몸체 중앙이 비어 있듯, 국립중앙박물관 몸체 중앙을 과감히 뚫어놓고, 건물 외벽은 남한산성 외벽이 지닌 다이내믹함을 그대로 도입하였다는 이야기를 펼친다.
200년 동안 묻혀 있다 이화여대박물관 팀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조선백자의 산실 <분원백자관>에서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금봉산 기슭에 아담히 자리한 분원백자관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시대 왕궁에서 쓸 도자기를 만들어왔던 ‘분원’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온종일 도자기 만들며 민간인과 격리된 노역에 임했던 도공들의 힘겨운 삶도 조망한다. 2000년 이화여대박물관 팀이 폐교된 분원초등학교 앞마당에서 가마터 3개를 발견하면서 조선백자의 역사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본문에서는 이 과정을 살피면서 2003년 세계도자기비엔날레 개최가 결정되면서 분원백자관 건립이 추진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설계를 맡은 이종호가 도자기 파편으로 건물 외벽을 장식하라는 심의위원들을 설득해 녹슨 철판, 즉 코르텐강으로 마감한 사연 등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에서 찬란한 불교문화를 되살리는 <정림사지박물관>. 가장 먼저 한강 유역에 나라를 세운 백제는 384년 인도의 승려인 마라난타가 백제 땅에 들어온 이래 불교를 국교로 삼는다. 538년 부여에 도읍을 정한 백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정림사를 창건한다. 그리고 660년 신라군과 함께 백제를 침범한 소정방은 정림사 사찰을 불지르지만 오층석탑 1개만 남는다. 그리고 2002년 부여 군수는 정림사지박물관의 건립을 추진한다. 현상설계가 시행되고 당선작은 김홍식의 설계안. “한옥 양식에 관한 한 그의 경쟁자는 한국에 없다”고 저자는 평한다. 저자는 거대한 법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형상(전대법륜)을 하고 있는 정림사지박물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73년 만에 舊대법원에서 시립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서울시립미술관>을 소개한다. 죄를 짓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니 더 넓은 평수로 대법원을 이전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해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딸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하는 마그리트 전람회를 거쳐, 2층으로 이어진 전시장에서 천경자 그림을 감상하고, 3층 커피숍에 앉아 전면 창밖을 통해 고종이 승하하신 덕수궁을 바라본다. 과거 역사가 건물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저자로 하여금 말을 걸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끝으로 제주도 선현의 지혜를 담은 토속 미술관인 <기당미술관>을 답사한다. <기당미술관>에서는 목구조 건축의 대들보인 김홍식이 설계를 맡는다. 부친인 김한섭의 뒤를 이어 4대째 건축가의 길을 걷고 있는 장인정신을 짚어본다. 서예계의 대부인 기당 강구범의 호를 따서 만든 <기당미술관>은 그 아들인 실업가 강의범이 자수성가해 번 돈을 고향 제주도에 환원한 것이었고, 그런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제주도의 자연석인 현무암이 외장재와 지붕재로 쓰이고, 제주도의 초가집 분위기를 살려 지붕을 만든 토속적 미술관이란 점을 부각한다.
1960년 서울생. 문학도를 꿈꾸지만 군인아버님의 반대로 공돌이가 됨. 건축과 대학원에서 건축평론을 전공. 다시 글쟁이를 꿈꾸지만 지독한 배고픔에 회의를 느끼다. 1989년 박봉의 잡지사를 탈출 건축전문출판사 설립. 그러나 내는 책마다 적자. 1990년 빚더미 속에 아버님의 강권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결혼, 1991년 12월 외동딸 출산. 1993년 건축출판계를 떠나 노가다 현장으로 감. “나도 돈 좀 벌어보자.” 당연히 펜 꺾음. “다시는 글 쓰나 봐라 돈도 안 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1997년 IMF 때 전 재산 날리고 감옥도 다녀옴.
현실을 떠나 전업주부가 됨. 딸 밥해 먹이고 문화재 답사 다니는 일로 소일. 딸과 이곳 저곳 다니면서 재기를 모색, 2000년 건축잡지사 편집장으로 복귀한다. 역시 박봉에 편집인과의 갈등, 그리고 사직. 2001년 건축현장에 감리로 취직했으나 부실공사에 대한 온갖 유혹에 맞서다 잘림.
2002년 도사들의 추천도 있어 가족회의 끝에 택시기사 시작. “먹물들 싫어.” 주중에 택시운행 중 스케줄 짜 두었다가 일요일 가족답사를 가는 게 유일한 즐거움. 초등학교 4학년 딸의 본격적인 인문학적인 교육에 들어감. 이 험난한 세상, 착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 주변에서 자꾸 글 쓰라고 꼬드김. 11년 만에 인터넷에 청탁도 없는 건축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 딸과의 솔직한 대화를 위주로 한 쉬운 인생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다. 2003년 지난 1년간 인터넷에 연재한 글을 모아 《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출간, 대박. 역시 돈은 안 됨. 이름 석자만 유명해짐. 언론계의 주목받지만, 택시기사라서 그런 것 같음. 공중파 방송을 비롯해 조중동 등 80여 개 언론매체에 등장. 2005년 두 번째 저서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 거예요》 출간. 지금도 일요일이면 처자식과 함께 문화재 답사에 나선다. 저자는 말한다. “난 건축을, 마누라는 인테리어를, 딸은 전시품을 본다. 그래도 좋다. 인문학 교육은 아빠의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