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자유로가 신설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온 부산시민은 강북 강변도로로 달려 평양까지 갈 수 있다는 야그다. 폭 51미터의 자유로를 따라 47킬로 달리면 임진각이다. 가다보면 우측에 상암 월드컵 경기장도 있고 일산도 있다. 당시 열화당의 이기웅사장은 붘시티의 꿈을 안고 1989년 건설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 상태였다. 책의 도시라. 아 참 출판업 가난한 거 아시죠.
하지만 국가로서는 이들이 들고 일어나면 방법이 없다. 이들을 홀대하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니. 세종대왕시절 집현전이 돈 번적 없지만. 국가의 이념이 이들의 손에 달려 있으니. 아니 아무리 나라가 잘 살게 되도 가야할 길을 알아야 가든가 말든가 할 게 아닌가. 얘들아 가자. 아니 선생님 어디로 가자는 거에요. 삼성전자로 갈까. 한번 뿐인 인생을 월급 많이주는데서만 소비해서야 되겠나.
그래 이기웅은 아무도 못 건드린다. 문공부장관에게 대든다. 아니 왜 반도체만 국가산업단지로 지정해 각종 특혜를 주냐. 붘도 국가산업의 기반이다. 정말 반도체만 우대하면 우리 전부 이민 간다. 아예 대한민국을 삼성한테 팔고 삼성민국으로 국호를 바꿔라. 돈버는 이유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우리 전부 이민갈 테니까. 반도체 팔아 영어책 수입해 얘들 가르칠래. 아니면 붘시티를 국가산업단지로 지정해 줄래. 말 되네. 뚜껑 열린다.
자유로를 달려 일산 지나면 바로 우측차선으로 붙자. 우측에 자유로 휴게소가 보이면 우회전이다. 50만평의 붘시티가 펼쳐진다. 파주시. 면적 놀랍게도 서울특별시보다 크다. 인구는 달랑 20만 명이다. 남북으로 갈린 후 국방부가 점령한 관계로 떠 본 적이 없다. 인구수보다 탱크가 더 많은 동네라고 보면 된다. 자유로가 달리면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개발은 언제나 그 이상의 휴유증을 남긴다.
이곳 파주시 교하면은 습지였다. 한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영양가 풍부한 갈대밭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습지를 자유로가 반으로 갈라놓는다. 일산 쪽의 습지에서 놀던 개구리들은 날벼락을 맞는다. 자유로를 넘어 물가로 나갈 수가 없게 된 거다. 대책회의가 열렸다. 개구리들은 자유로를 넘어 물가로 탈출을 감행한다. 뭐 먹을 게 있어야 버티지. 다 차에 깔려 죽는다. 이렇게 생태환경은 파괴되어간다. 개구리는 억울하다. 고소할 수도 없고. 이미 지율스님이 천성산을 살리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도룡이가 고소한 적 있지만 패소. 도룡이나 개구리는 고소인이 될 수 없다니. 굳이 남북간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유로를 고가로 처리하면 된다. 그래야 개구리들이 자유로이 왕래할게 아닌가. 생태브리지라도 만들어 주던가.
그래 50만평은 죽은 생태습지가 된다. 1997년 파주시 교하면 문발리 50만평은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다. 우리도 건축시티 하나 만들자. 평당 30만원에 분양한다. 30만원 곱하기 50만평이면 얼마지. 잘 모르겠다. 출판사 500개, 인쇄소 50개가 돈 걷어 50만평 구입한다. 아참 인프라 구축비 평당 50만원은 별도다. 이기웅과 김원은 80년대 후반부터 페이퍼 워크작업에 착수한다. 페이퍼워크 돈 안 되는 거 아시죠.
97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면서 50만평의 코디네이터로 승효상이 나선다. 국방부가 끼어든다. 파주시 시장보다 파주시 사단장이 힘센 거 아시죠. 군부대 관측소에서 한강변으로 간첩이 침투하는지 감시할 수 있게 모든 건축물의 최고높이는 15미터를 넘을 수 없데나 뭐래나. 웃긴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어떤 바보가 옷에 물 묻혀가면서 한강변으로 침투하겠나. 홍콩에서 비행기 타고 오면 되지. 그래 철조망 건너 자유로로 넘어 왔다고 치자. 그래봐야 차에 치어 죽을 걸. 다 밥그릇 싸움이다. 암살이 목적이 아니라면 인터넷 시대에 굳이 자유로를 넘어 목숨 걸 일이 있을까.
승효상의 쿼러티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예선 탈락이다. 1섹터 장으로 김원이 선정된다. 12섹터 장은 방철린이다. 1섹터는 12필지다. 12필지의 아키텍트는 섹터장이 선정한다. 건축주는 건축가 선정권이 없다. 디자인에도 주인은 관여할 수 없다. 이기웅 사장의 위대한 계약서에 의하면 설계비는 평당 15만원이다. 그리 비싸지는 않군. 공장은 9만원이다. 12섹터는 수년 동안 파리 날린다. 입주하는 업체가 없다. 6섹터에서 2004년 첫 일이 들어온다. 아동출판사 '탄탄스토리하우스다. 이름 그대로 아그들아 탄탄하게 자라거라. 이거다.
위치는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00평 땅이다. 글이 나오는 동네라 文發里다. 출판단지로서는 명당이다. 출판도시 가운데부분 동쪽으로 끄트머리 땅이다. 심학산과 마주한다. 행운이다. 배우고 찾고 깊게 하는 산이다. 이곳 출판도시의 건물은 무조건 전면 한강을 바라보고 남북으로 길게 앉치는게 헌법이다. 왜냐고 시선을 열리게 하려고. 15미터를 넘을 수 없으니 죄다 4층 이하다. 이런 억압아래 디자인을 승부를 걸어야 된다.
그래 대지와 반듯하게 1.2층 공연장 두고 동측 날개를 15도 몰래 튼다. 외관은 그저 그렇다. 원래 방철린은 얼굴에 별로 관심이 없다. 공간의 흐름을 중시한다. 이거 디게 중요하다. 간장을 담으려고 항아리 만드는거니까. 1,2 층 전면 외장마감인 후동석은 블랙이다. 반대편의 송판무늬 노출콘리트는 회색이다. 3,4층 틀어진 날개 마감은 블랙의 징크다. 아연판이다. 죄다 무채색이지만 곳곳에 천창과 포켓공간이 만들어지면서 형태가 들락날락한다. 하지만 무채색이라 크게 표는 안난다.
현관 들어가 우회전하면 아그들한테 구현동화 읽어주는 공연장이다. 여긴 아날로그가 목표다. 너무 대한민국은 디지탈 홍수다. 좌회전 하면 사무부분이다. 죄다 전면 유리창으로 심학산을 감상하면서 탄성을 지른다. 여기까지는 솔직히 나도 하겠다. 직진해 우측을 바라보는 순간 나 꼬랑지 내렸다. 어린이를 감안한 낮은 계단으로 수십미터에 걸쳐 3층까지 천국으로 가는 골목이 우릴 숙연하게 한다. 4면의 무채색 콘크리트벽과 벽, 색도 없고 향기도 없다. 그저 침묵만 있다. 계단은 좌측에 교묘하게 뚫린 기하학적인 창들로부터 최소한의 빛을 끌어들이면서 이곳은 그가 말하는 무위공간이 된다. 아무 의도도 뜻도 없다. 그저 어딘가로 갈 길이 있다.
자 어린이 여러분 이 복잡한 혼란의 도시에 이런 아즈넉한 순교의 공간도 있습니다. 나 이런 단어 잘 안 쓰지만 이 길에서 옷깃을 여미지 않는다면 그는 천재이거나 바보다.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너무 힘들다. 난 여기서 다시 욕심을 놨다. 이렇게 대한민국엔 센 사람이 많다. 만화책 전시공간 곳곳에서는 하늘에서 빛이 떨어지고 화장실조차 하늘에서 빛을 끌어 들인다. 옥상도 옥외공연장이 된다. 500평 규모지만 그의 세심한 배려로 공간의 힘은 1천평이 된다. 건축주는 돈 벌었다. 그래 작가를 잘 만나야 된다.
방선생한테 전화가 왔다. 낼 파주 가자. 그래 영업중 택시 몰고 동부 이촌동으로 갔다. 오늘 또 십만원 까지겄군. 30분을 논스톱으로 달리니 왁자찌걸한 파주 북시티다. 별로 기대 안했다. 안 가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오는 길에 십만원을 주신다. 입금해라. 그래 회사에 택시 갔다 버리고 점심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선상님 많이 느셨네요. 뭐라고나. 방선생은 나랑 쥐 띠 동갑이다. 한바퀴. 5학년 후반에 아트 만들기 힘든디. 정신력이 세다. 가봐라. 건축박물관 파주 북시티에. 언제든 개방돼 있다. 좀 직접 느껴라. 인터넷만 뒤지지 말고. 건축은 공간경험이 필요한 분야다. 만날 간장만 인터넷으로 본다고 맛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입금 채워주면 내가 직접 택시로 모시겠다. 이용재글
파주출판도시는 저마다 독특한 공간을 내세우는 건물들과 건축가의 은근한 자존심이 대립되는 실험 공간이다. 하지만 한쪽에서 이런 번잡함을 떠나 조용히 자리 잡고 속 깊이 세상을 지켜보는 공간도 있으니, 바로 탄탄스토리하우스다. 육중한 덩어리의 조합으로만 보이는 이곳이 속속들이 숨겨진 재미로 가득 들어차 있음을 안 것은 실내에 발을 들여 놓고부터였다. 글 / 최충욱(건축 전문 기고가)
이른 아침 시큰한 공기를 들이키며 파주출판도시에서 집을 찾는다는 것은, 인사동 거리에서 예쁜 마당을 안은 한옥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묘한 즐거움과 답답함을 동반하는 탐험과 같다. 저마다 조금은 비슷한 규모의 땅에 비슷한 노출콘크리트와 날카로운 각으로 공간이 구획된 수많은 출판사들 사이에서, 심학산 끝자락에 세로로 길게 편히 누운 탄탄스토리하우스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네모난 몇 개의 덩어리를 단순하게 쌓아 올린, 뭐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둔탁한 건물인데다, 파주출판단지 주 진입 도로에 좁은 입면부가 창도 없이 무채색의 얼굴을 들이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과 전시를 위한 곳이 무엇을 저리 숨겨 놓고 있는 것일까. 우선 오래된 기름 침목이 널찍하게 깔린 진입로를 따라 안쪽 모퉁이 현관까지, 이 건물의 길이만큼 주 출입구가 길게 이어진다. 건물의 실내 탐험이 건물의 뒤쪽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밝고 가벼운 느낌의 마룻바닥 로비에 들어서면 세 갈래 길을 만나게 된다. 첫 번째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가 준비될 공연장으로 가는 길이고, 두 번째는 로비 왼쪽으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2층 임원실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이곳은 주 사용자인 어린 고객들의 안전과 이동을 직접 지켜보고 싶어 한 건축주의 뜻을 건축가가 명쾌하게 해결한 부분이다. 세 번째로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은 현관 맞은편에 작은 창이 일렬로 뚫려 있는 벤치 부분. 간결하고 절제된 스케일의 이곳은 창을 통해 투과된 빛이 로비의 마룻바닥에 8개의 반사광을 만들면서 이용자가 호기심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음으로 이동하게 될 이 건축물의 메인 계단실 첫 부분을 슬쩍 내밀어 공간이 지속적으로 이어짐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곳은 벤치에 앉아 길고 높게 이어진 계단실을 지켜보며 호흡을 가다듬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 건축가 방철린의 축적된 감성과 사용자의 기대 심리를 노련하게 이끄는 계산이 바로 여기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다.
20여 개의 네모난 창을 통해 다양한 각도로 빛을 쏟아내는 길고 먼 통로를 걸어 본 적이 있는가. 제법 긴 이 복도형 계단실은 탄탄스토리하우스가 중심을 잡고 각종 공간을 연결하는 허리 역할을 한다. 어린이의 스케일에 맞춘 계단의 보폭과 높이, 핸드레일 위치, 어른 세 명이 동시에 통과해도 무리 없을 만큼 넉넉한 폭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틈틈이 멈춰 서서 창에 턱을 괴고 밖을 내다볼 아이들과 전시물을 놓을 수 있도록 충분한 너비를 둔 창틀 등은 이곳이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님을 말해 준다. 특별한 장식도 없는 계단실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고 다이내믹한 이곳을 오르다 보면, 각종 동화를 담은 1백여 점의 일러스트가 걸린 3층 전시실을 만나고, 다시 오른쪽으로 꺾인 계단실을 통과하면 수천 권의 동화책이 마련된 4층 전시실과 북 카페에 도달하게 된다. 이 과정은 어린이들이 어떤 환경이 펼쳐질 줄 모르는 상황에서 갖가지 공간을 헤쳐 만족을 얻고, 또 내부와 외부를 곁눈질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설정이다. 불확실한 공간에 다가설 줄 알고, 관통하는 시선을 통해 경관을 즐기는 경험은 ‘느리고 길게 걷는 발견’이라는 건축가의 생각이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음 탄탄스토리하우스를 만났을 때 보았던 네모난 박스가 중첩되고 비틀어진 모습은, 실내 공간을 충분히 거닐고서야 그 구조의 묘미를 발견하게 된다. 우선 건물 외벽을 감싸고 있는 네 가지 재료는 검정 아연도금강판, 진회색 화강석, 노출 콘크리트, 송판 노출 콘크리트인데, 이는 각각 독립된 공간들이 서로 얽혀 있음을 마감재로 구분하고 상징화한다. 또 이들의 비틀린 결합으로 생기는 틈은 전시 공간이나 계단실에 햇살을 끌어오는 역할을 하고, 작은 테라스 같은 외부 전망 공간으로도 요긴하게 이용된다. 실제로 3, 4층 전시실 서쪽 벽면과 4층 북 카페의 남쪽 벽면은 옥상층까지 뚫려 있어 자연 채광이 가능하고,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전시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또 틀어진 4층 동쪽 테라스 아래 위치한 화장실과, 옥상층 아래 위치한 동쪽 계단실도 우물 모양의 천장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 테라스 바닥과 옥상층 바닥에 실제 우물처럼 솟은 구조물은 자연광을 끌어들임과 동시에 시간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곡선형 실루엣이 실내에 떨어지게 함으로써 경직될 수 있는 박스형 건축물의 실내 채광을 재치 있게 해소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4층 전시실과 북 카페로 통과하고 만나는 옥외 하늘마당은 소규모 이벤트와 작은 전시를 겸할 수 있는 곳. 특히 좌우 유리벽의 역할을 겸하는 접이식 유리문은 매서운 계절에도 이용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가변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이 공간이 투명하게 뚫린 것은 건물이 옆으로 특별히 길기 때문에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이웃 주민의 시선을 고민한 건축가의 배려가 숨어 있다. 비슷한 높이의 인접한 건물 사무실 창이 이쪽을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건물의 구석구석을 돌아오는 동선의 마지막 종점은 바로 옥상층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린 나무 바닥과 어른들이 앉기에 앙증맞은 나무박스. 그리고 한 켠에 마련된 잔디마당. 파주출판단지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오고, 단지를 감싼 심학산이 지척에서 조망 가능한 옥상층이야말로 아이들이 도달하게 될 ‘가슴 트이는’ 공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옥상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재미나다. 하늘마당 벽에 반쯤 휘감겨, 계단 사이의 작은 틈으로 빨랫줄 같은 그림자들을 드리운 모습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탄탄스토리하우스는 1층에서부터 건물의 안쪽 측면을 돌아 옥상층까지 오르도록 만든 구조로 이곳을 이용할 어린이들을 위해 깊이 고심한 결과들이다. 빠르고 즉흥적인 인터넷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건축가가 해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이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천천히, 그리고 길게 걸어가는 것이 더 흥미롭다는 점을, 공간을 통해 이야기하려 한 건축주와 건축가의 속 깊은 배려였을 것이다. 탄탄스토리하우스의 이런 뜻이 퇴색하지 않길, 동토를 빠져나온 새싹의 처음 모습처럼 변하지 않고 어린이들 곁에 남아 있기를 기대해 본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 패러다임을 보다
Q ‘방철린표 건축’이 있다면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떤 아이덴터티로 얘기할 수 있을까? A 건축에 있어서의 무위(無爲)와 허(虛)에 대해 생각한다. 디지털시대에 푹 빠져 하루 종일 컴퓨터와 생활하는 21세기 현대인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는, 인간과 컴퓨터가 아닌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느끼고 살 수 있는 아날로그적 건축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의도적으로 아날로그화 된 건축 속에서 인간은 차가운 이진법의 디지털 세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Q 그러한 작업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공간구성의 표현들이 있는가? A 건축에 필요한 요소로는 공간에 있어서나 형태에 있어서나 공히 위트가 요구된다. 위트가 보이는 건축은 거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늘 즐거움을 준다. 다음으로는 생활의 창조력을 요구하는 건축이다. 쓰임새를 미리 정하고 그 쓰임새에 꼭 맞는 공간을 만들어 아무 불편함 없이 쓰게 하는 공간보다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더 값어치 있는 공간이고 인간의 맛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곧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적 공간이다. Q ‘훌륭한 건축’이란 어떤 건축이라고 생각하는가? A 훌륭한 건축이란 거대하게 위용을 갖추었다거나 외모나 인테리어가 예쁘게 잘 되었다든가 또는 공간의 편리성만을 추구하였다던가 하여 오히려 인간성이 결여된 그런 건축이 아니다. 조금 불편함이 있더라도 인간과 건축의 관계에서 인간적 냄새를 느끼게 하고, 건축을 통하여 인간과 신 또는 인간과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연결해 줄 수 있는 그런 건축이야말로 훌륭한 건축이라고 본다.
Q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지금 막 설계 작업을 하고 있는 것. 지난 작품들에서는 늘 ‘조금만 더 했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을 갖는다. 설계 작업에 임할 때에는 그런 아쉬움이 없도록 완벽을 기하리라는 결심으로 조심스럽게 작업에 임한다.
방철린 프로필 1948년 대전 생으로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공간연구소에서 공간연구소사옥 등의 작업을 통해 김수근으로부터 건축사상을 사사하였다. 정림건축에서 10여 년간 다양한 건축 경력을 쌓고, 인·토건축을 설립했으며 올 초부터 건축그룹 칸으로 상호를 변경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4.3그룹 동인으로 4.3그룹 건축전과 2회에 걸친 작품집출간을 했으며, 한양대학교 건축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대표작으로 대덕과학문화센터, 부산문화방송사옥, 신라대학교, 한동대기숙사, 스텝시리즈, 하늘마당시리즈, 원주제일교회수련원, 북이십일, 교육과학사, 중앙입시교육원 등 다수. 연남동스텝과 하늘마당Ⅱ로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을, 한국건축100년전의 총괄 기획으로 대통령 표창을, 미제루로 한국건축가협회 아천건축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아카시아 우수건축상 금상을, 산빛마당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한건축사협회장상을 받았으며, 2004년에는 연하당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받았다.
최충욱 프로필 1972년 부산 생으로 영남이공대 건축과와 관동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건축인테리어 전문잡지인 <월간 이상건축>, <월간 건축문화>, <월간 PLUS>를 거치면서 건축전문 기자로 활동 했다. 이후 인쇄매체 전문 컨설팅사인 (주)한국데이톤에서 매체 기획을 담당했으며, 이곳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의 매거진 <Mercedes>, 볼보 코리아의 <VOLVO MAGAZINE>, LG카드의 <bonne amie>의 수석 기자로 활동했다. 그 후 2006년까지 PR 및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전문회사인 (주)커뮤니케이션 신화에서 GS건설 자이 브랜드 현장 소식지 <자이 스토리> 제작팀장으로 기획과 취재, 촬영 등을 총 코디네이션 했다. 현재는 (주)아키투어에서 아키투어 프레스팀을 이끌며 전 세계의 도시·건축·인테리어·조경·답사 등의 기록들을 출판물로 기획·제작하고 있다. 이 밖에 <매거진 아키투어> 편집장을 겸하며 네이버 카페 <아키투어>와 네이버 블로그 <공간과 시선>을 운영 중이다.
다가구주택은 큰 조직의 사무소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경제적 타당성, 기간, 일의 진행속도 등...)로 인해 수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이므로 흔히 아틀리에 건축가들의 몫이 되고, 비록 작지만 작가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이 많다고 보여진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부 소외된 분야로 거론되었던 다가구주택을 통하여 자신의 분명한 건축세계를 드러내는 건축가 방철린이다. 그는 공간과 정림건축에서 주로 대형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후,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일련의 다가구주택 시리즈를 통하여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고, 또한 이것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것만 보아도 이 분야에서는 특출한 건축가임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상류층을 위한 고급빌라의 등장과 함께 중하류층의 서민들을 위한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다가구주택이라는 명칭으로 건축적 질보다는 단지 삶의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미명 아래 과거 소필지의 주택들이 헐리고 집장사들의 돈벌이에 크게 기여한 다가구주택이 언제부턴가 우후죽순으로 우리 주변을 채우게 되었다. 다가구주택은 이제 우리 주변에 매우 친숙하게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무심코 지나치는 도심 속의 평범한 건물로써 인지되고, 건축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집장사들의 그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물론 그들의 질적인 면에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양적인 면에서는 주택공급률을 증대시키는데 공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몇몇 건축가들의 도시형 다가구주택(주로 근생 + 주거 혹은 순수주거)에 대한 새로운 유형제시 이후 건축가 방철린은 1995년을 기점으로 최근까지 스텝과 하늘마당 시리즈를 통해 자기 나름대로의 건축철학을 가지고 우리 주택 유형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다가구주택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다른 글에서 그의 다가구주택의 주제를 "家小空大"라는 말로 대변한 바 있다. 작지만 넓은 공간을 가진 집이라고 보여지는 그의 작품을 통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두가지 이야기, 즉 공간 이야기와 형태와 물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보고자 한다.
첫번째 이야기 | 공간
건축가 방철린의 다가구 주택 작품들 속에서 보여지는 공간구성의 특징은 가장 전통적인 건축어휘인 마당, 골목길 등을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도시주거에서 부족한 공동체의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의 다가구주택에 대한 공간철학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힘의 원천은 사람과의 만남이며, 이러한 만남은 열악한 도시 콘텍스트를 감안할 때 각 주거로의 진입체계와 입체화된 계단, 선큰공간, 작은마당, 그리고 옥상부의 휴게공간을 통해서 만들어지며, 이러한 요소들은 이웃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의 장치로서 해석되고 있다. 다가구주택은 건축주의 요구조건에 맞는 주택평면을 제외하면 결국 공용부분에 해당하는 복도나 계단, 그리고 발코니 정도의 구성요소만이 건축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된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철린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평면구성은 획일적으로 처리하기보다 각 층의 조건과 특성에 맞게 변화시켜 세대간의 차별성을 부각시킴으로써 공간감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공용부분이 건축가의 창의적인 사고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며, 그가 주장하는 현대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잊고 있었던 공동체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방철린은 다가구주택에서 건축가가 고심해야할 필수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건축적으로 잘 해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1995년의 연남동 Step I을 시작으로 이문동 Step II, 그리고 역삼동 Step III(양추헌)를 통하여 도로 경계로부터 개개의 사적공간에 이르는 과정공간에 해당하는 계단과 복도를 단순한 통로의 의미만이 아닌, 과거 우리 삶의 중요한 장소였던 좁은 골목길의 대체공간(이러한 이유로 "Step"이라는 주제 도출)으로 인식하고, 여러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시선이 오갈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외부로 노출시킴으로써 좁은 의미의 건축적 산책로의 역할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서의 치환,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공간을 주요한 공간(Major Space)이라 칭하고, 스텝시리즈 이후 역삼동 다가구주택이나 하늘마당 I, II를 통해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즉, 외부지향적이었던 이러한 주요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이면서도 풍경의 조작 및 개방감을 확보하기 위한 차단장치나 경계요소로서 헛기둥, 발코니, 벽 등이 나타나게 된다. 가장 최근의 작품인 하늘마당 II에서는 반외부지향적으로 처리된 계단과 복도는 차단장치나 경계요소의 처리가 가장 돋보이는 작품으로, 좁은 땅에서 느낄 수 없는 외부공간의 맛을 더하고 있음은 물론 층별로 다양하게 계획되어 사는 이들에게 공간적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다른 주택들이 전면부를 할애해 주차장을 배치한 반면, 하늘마당 II는 동서측면에 주차장을 배치함으로써 측면으로의 시각적 개방감으로 인하여 공간의 여유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외부로 노출되었던 계단은 반내부화한 것은 P.O.E.(거주 후 평가)에 따른 것으로 보여지며, 그가 말하는 주요공간을 입주자가 선호하는 반외부지향적으로 처리하여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를 갖게하고자 하는 배려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마당은 법적인 제한, 특히 주차장으로 인해 광의의 개념에서의 마당 공간을 구성하기란 어려웠을 것이고, 협의의 개념에서 4가지의 마당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현관으로서의 1층의 작은 마당이며, 두번째는 다가구주택에서 고민거리의 하나인 지하층 거주자나 근린생활시설 이용자를 위한 환경적 처리로서 내부로의 빛의 유입과 함께 통풍,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처리된 지하 마당, 세번째는 작가가 명명한 "하늘마당"으로서, 사는 이들에게 4계절에 따른 자연과의 교감을 줄 수 있는 건물주인 세대를 위한 쌈지마당, 네번째는 휴게공간으로서 파고라(역삼동 주택)나 주인세대를 위해 배려되었지만 마루를 깔아 평상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옥상마당(하늘마당 II)이다. 이와 같은 방철린의 공간만들기 작업은 우리에게 다가구주택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규범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 | 형태와 물성
우리에게 다가구주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공간적으로나 형태적으로나 부정적인 사고로 접근하려는 생각이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다가구주택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이 그저 생활이 넉넉치 못한 서민들의 집이고, 또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건축가의 몫이 아닌 소위 집장사들의 영역으로 여겨져 좋지 못한 인상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단실의 세로로 긴 창, 적벽돌과 흰색 페인트마감, 볼 품 없는 외부계단, 빛의 절대부족, 부실한 시공, 삶의 방식을 외면한 공간구성 등으로 우리 주변의 다가구주택의 모습에서 방철린의 다가구주택에 대한 형태 구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불 수 있다. 그의 다가구주택들은 형태 구성과 화사드에서 중요한 몇가지 공통적인 특징과 함께 도심지의 그것에서 볼 수 없는 몇가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즉, 개별적인 주호를 연결하는 노출계단과 복도, 그리고 노출콘크리트와 외벽 단열재로서 파스텔조의 아이소코트의 이중 화사드처리, 그리고 튀지만 괜찮게 대비되는 색채구성, 그리고 매스의 단순성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다만 그의 작품 중에서 이문동 스텝 II는 이러한 그의 특징을 의심스럽게 하지만, 점, 선, 면이라고 하는 구성의 3가지 기본요소를 화사드에서 적절히 혼합하여 꽉 짜여진 입면구성을 하고 있다. 특히 그의 모든 주택에서 보여지는 노출콘크리트의 사용은, 물론 요즈음 몇 년 전부터 일부 건축가들에 의해 유행처럼 쓰여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의 시공상태가 좋든 나쁘든 건축을 겉치레적이고 가시적이기보다, 보다 순수하고 진실된 가장 강력한 형태의지의 표현 수단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콘크리트바닥에 콩자갈을 깔아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든지, 혹은 복도부분에 타일을 깔아 관리상의 용이함이라든지 다른 다가구주택과 분명히 차별성을 갖는 입구성을 강조하는 잘 디자인된 철재대문으로 인해 비록 세들어 살고 있지만 사는 이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 같은 구석구석에까지 그의 손길이 닿은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콘크리트, 철재, 유리, 그리고 외부 단열재로서 아크릴계 코팅재의 4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노출콘크리트와 늘 함께 따라 다니는 철재의 사용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보여지며, 시공의 용이함을 위해서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발코니나 난간에서 구조재를 장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이러한 그의 물성에 대한 이해를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그러나 시공상태가 비교적 저렴한 시공비로 지어진 다가구주택에 비하면 우수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그의 다가구주택에서 보여지는 매력 중 하나로도 여겨질 지도 모른다. 사실 다른 일반 다가구주택에서 보여지는 재료의 나약함과 시공강태의 불량 등을 고려한다면 이것 역시 좋게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상태가 비교적 뛰어난 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삼동 주택의 1층 진입공간 측면에서 보여지는 4개의 원형기둥을 같은 기간에 설계되었기 때문에 기인한다고 보여지지만, 하늘마당 II의 3층 테라스인 쌈지마당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작가 본인은 조형이나 재료의 쓰임새보다는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공간만들기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하지만, 결국 건물은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에 다분히 형태의 단조로움을 깨기 위한 적절한 장식적인 요소의 사용이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또한 경제적인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그의 건축형태 구성에서 바닥재 외에 부분적으로 목재의 사용이 그의 건축 조형의지를 더욱 분명하게 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형태구성은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면서 외부와의 대화를 유도하는 돌출되거나 보이드하게 처리된 발코니, 그리고 보이드와 솔리드한 면의 대비와 이중적인 화사드, 그리고 밝고 어두움의 대비적인 형태구성과 선적이면서도 대, 중, 소의 면적구성으로 데스틸적이고 꼬르뷔지에적인 표피의 구성으로 보여지며, 이러한 모습은 다가구주택의 질을 한층 더 높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거론된 이야기는 방철린의 다가구주택에서 보여지는 특징 위주의 글로써 전개시켜 보았다. 사실 본 글이 다가구주택에만 한정시켰기 때문에 굵직한 몇가지 이야기를 제외하고 나면 다가구주택에서 그리 많은 이야기를 전개시키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간적으로는 단위세대를 제외하고 나면 공용부분 이외에 별로 화두의 대상이 될 만한 주제가 없으며, 형태적으로는 비교적 절제되고 단순화된 매스를 통해 표현되고 있고, 어떻게 보면 굉장이 보편적인 건축언어로써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답사한 후 새삼 느끼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이 글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사는 이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된 건축가의 치밀한 사고가 엿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건축가 방철린의 건축에 대한 성실함은 앞으로 그의 건축의 행로가 순탄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특히 앞으로 계속적인 다가구주택의 작업을 통하여 이 분야에 있어서 새로운 규범을 우리에게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스무살짜리 대학1학년 처녀들이 등산을 갔다. 거기서 한양대 건축과 학생들 한 팀을 만났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집을 지으면 설계를 맡아주기로 장난스런 약속을 했다. 잊혀진 듯했던 그 약속은 30년 후 정확하게 지켜졌다. 강화도 민통선 안쪽 양오리에 있는 '미제루(未濟樓)'는 그렇게 오래 전부터 준비된 집이다.
미제루 안주인은 이제 열두가구 되는 이 마을 양오리 주민이 다 됐다. 어제는 동네 부인들 모두 모여 김장을 했는데 사랑양반들도 김칫소 먹으러 다들 따라오지 않았겠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부부는 등산을 즐기고 나무와 풀을 들여다보기 좋아하고 흙냄새에 이끌리는 사람들이었다. 아이 셋이 웬만큼 자라자 둘은 씨앗을 묻을 수 있는 땅있는 집을 그동안 간절히 원해왔다는 걸 알게 됐다. 합의는 단숨에 이뤄졌다. 시간만 나면 땅을 보러 다녔다. 경기도.강원도와 충청도를 종횡무진 누볐다. 돈은 넉넉지 않은데 이상은 컸다. 남향일 것, 비스듬한 언덕위에 있을 것, 기존 동네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독립적일 것, 전망이 멋질 것. 서울 출퇴근이 가능할 것, 그러면서 비싸지 않을 것. "그런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땅이 어디 쉽겠어요. 남향을 찾는 것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데… 그래도 그런 땅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지요."
그러다 우연히 여기 양오리까지 오게 됐다. 낙타 등처럼 휘어진 뒷산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터 앞에 십여그루 서있는 참나무도 좋았다. 까다롭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땅이었다. 민통선 안이라 가격이 다른 곳의 반값인 게 무엇보다 좋았다. 평당 10만원을 주고 산아래 임야 5백여평을 샀다(1999년 봄). 오래 꿔왔던 꿈이라 바로 집짓기에 들어갔다.
예전의 약속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그 날 같이 등산갔던 친구는 그 건축과 학생 하나와 커플을 이뤘거든요." 삶이란 때로 이렇게 단순해서 우리를 유쾌하게 만든다. 그래서 연이 닿은 인토건축(02-555-2605) 방철린 소장에게 집의 설계가 맡겨졌다. 미제루란 당호도 그가 붙였다. '미제(未濟)'는 주역 64괘 중 맨 마지막 괘의 명칭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집 바깥주인 김장복 교수( 홍익대 공대)는 미제루 홈페이지를 만들어 거기다 이렇게 써두었다. "미제는 made in USA가 아니라 세상만물은 늘 바뀌고 순환하는 속성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미제루의 두드러진 특징은 거실에서 바로 연결되는 누마루에 있다. 길이 3칸 폭 1칸의 누마루가 집 앞부분에 딸려있는 집이다. 그래서 당호도 헌(軒)이나 재(齋)가 아니라 '누(樓)'를 붙였다. 이 누는 거실의 연장이면서 마당의 연장이고 식구들이 모이는 사적 공간이면서 동네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열려있는 공적 공간이다. 실내도 아니고 실외도 아닌 이 공간은 서양건축에는 없던 개념이다. 당연히 우리 옛 정자나 대청마루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나는 여기서 바라보는 늙은 참나무들이 이 집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11월은 세상의 푸른 것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는 스산한 계절이다. 그런데도 참나무는 나름의 기막힌 풍경을 만들어 미제루 위에 드리운다. 지금은 허공을 정교하게 무늬지우는 빈 가지의 리듬이 볼만한데 잎이 돋을 때, 녹음이 무성할 때, 단풍이 물들 때, 도토리들이 별똥인 양 아침마다 이슬젖은 마당 가득 떨어질 때 두루 참나무의 덕은 이 집을 포근하게 덮을 것이다. 그 고목들을 실내가 아니라 바람을 맞는 누에서, 눈높이로 마주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다. 이 나무엔 때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색딱따구리가 날아온다. 줄기 위에 희귀한 사슴벌레가 점잖게 앉아 있을 적도 있다. 난생 처음 도토리 가루를 몇되나 추수해 묵을 쑤는 기쁨도 알게 해줬다.
미제루 안방의 위치는 독특하다. 누 마루와 직선으로 마주보는 곳에 유리가 많이 달린 방이 안방이다. 전혀 은밀하지 않다. "사방에서 다 들여다 보이는 집이니 마음대로 옷을 갈아입기도 어려워요. 화장실에 가서나 밖이 덜 보일까…" 그러나 안주인은 그걸 유쾌해하는 기색이다. 안방에서 보이는 누 마루와 그 너머 고목과 또 그 너머 앞산까지 일렬로 세워두면 자신이 우주의 중심 속에 들어 앉은 듯하다고 흡족해 한다. 집의 형태는 디귿자 꼴, 누 마루까지 합하면 미음자가 된다. 방은 별채처럼 서로 독립돼 있는데 양쪽에 창이 달린 복도로 서로 꿰이듯 연결된다. 유리 너머 건너편 공간이 겹겹이 보이는 실내, 외부로 환하게 열린 복도, 휘어진 공간의 그윽함이 이 집에 옛 한옥같은 유현한 깊이를 얹어준다.
집의 진입도 재미있다. 대웅전을 향해 올라가듯 철도 침목으로 놓은 계단을 일고 여덟개 올라가야 현관이 나온다. 머리 위엔 누 마루가 절의 만세루처럼 가로 걸려 있다. 계단을 다 오르면 단정한 안마당이다. 자갈을 깔아둔 고요한 이곳 역시 옛 한옥의 차용. 비워두었던 안마당 한켠에 지난해 야생 맥문동을 옮겨심었다. 겨우내 잎이 푸른데다 줄기를 솟구쳐 피워올리는 꽃이 곱고 뿌리를 달여먹을 수도 있는 식물이다.
이 집 주변은 온통 야생의 약초밭이다. 뒤 언덕에 둥글레 뿌리가 실하게 자라고 귀하다는 천마도 흔하게 발에 채이고 당귀도 절로 솟아오른다. 강화에 오면 부부는 자연 산으로 들로 나는 듯 쫓아다니게 된다. 뒷산에서 으름덩굴을 캐다 마당에 시렁을 만들었고 진입로엔 부부금실에 좋다는 자귀나무를 쌍으로 심었다. 처음 본 풀꽃들이 터도리에 지천이었다. 그 형태와 색감의 아름다움에 뒤늦게 몹시 반했다. 둘은 야생화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원래 공부 좋아하는 남편은 일단 책을 잔뜩 사들여 이론으로 무장하고 아내는 몸으로 뛰었다. 아내가 공들여 손톱만한 꽃을 피워놓으면 남편은 얼른 화판 위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분명 공대 교수라는데 이집 서재엔 온통 야생화 관련 책, 나무에 관한 책들로 즐비하다. 풍경사진 찍는 법, 야생화 촬영법 같은 제목도 보인다. 디지털 카메라로 야생화를 찍어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최근 몇년간 김장복 교수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각종 창포와 분꽃이 지고 아기범부채가 꽃대를 세운다. 긴 기다림에 비하면 꽃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지만 꽃바탕의 호랑무늬가 기다린 보람을 준다"라는 감상이 적힌 사진은 가위 전문가의 솜씨다. 그저 잡초라고 부르는 것과 이름을 알고 들여다보는 것은 사랑의 깊이가 달라지더라는 것도 강화에 와서 배웠다. 미제루 둘레에 심긴 야생화는 이제 줄잡아 2백종이 넘는다. 3년 만에 이룬 일이다. 이곳을 천리포 수목원 같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지금 이 부부의 꿈이다. 실내는 마흔여섯평, 건축비는 비교적 많이 먹혀 평당 4백만원 남짓 들었다.
"과연 미제루 둘레에 얼마나 많은 꽃을 피우게 될는지 알수가 없다.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전혀 알지 못하던 꽃이 나타나곤 하니 말이다. 새로운 꽃을 발견할 때마다 돌로미테(김교수 부부가 꽃구경을 위해 여행한 곳)의 에델바이스가 생각난다. 모래밭에서 모래 한알씩 들춰가며 뭔가 찾았다고 즐거워하지만 도대체 모르는 것이 이렇게 많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이 알지 못하는 게 뭐 대수로운 일인가. 하나라도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저 삶이란 것이 이러한 자잘한 행복의 점철로 이어질 수 있다면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말 속에 담긴 미제루 주인 부부의 인생관, 나 또한 거기 고개숙여 재청한다.
강화도 북서쪽 민통선 북방에 있는 양오리 마을은 몇 호 안되는 매우 한적한 곳이다. 그리 높지 않은 구릉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서 가장 풍광이 아름답고 수목이 우거진 곳에 미제루가 있다. 이러한 농촌의 문화경관 속에서 새로운 인자가 개입된다는 것은 자칫 그 지역의 문화적 자원들을 희생시키거나 마멸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게 된다. 현대주거의 탈 역사, 탈 장소성의 문제는 세삼스러운 논제는 아니나 전국 어디서나 나타나고 있는 똑같은 형식의 왜곡된 건축언어는 오랜 시간 누적된 지역의 초기 문화를 소멸시키게 된다. 문제는「어떻게 현대 주거를 통해 원천으로 돌아가느냐?」하는 역설적 논리, 바로 그것이다. 이 지역에 새로운 주거의 탄생은 결코 진정한 공동체의식에서 출발하지 않고 우연한 접촉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접촉이 어떠한 변화를 유발시킬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건축가의 개인적 논리와 지역의 보편적 문화의 사이에는 반대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특별함이 없는 양오리 마을에서 미제루가 특별함으로 인식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과 같은 낯설지 않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현상학적으로 보았을 때 미제루는 3개의 영역이 마당을 중심으로 엇물리면서 상호 침투하는「ㅁ」자 형식을 취하되 일정한 목적을 필요로 하는 방들은 개별적 공간으로 존재하면서 고리형식으로 상호 공간을 이어주고 있다. 지형이 지니고 있는 고저차를 이용하여 남북방향으로는 3개의 공간의 켜를 지니고 있는데 전면부는 판벽형식으로 된 필로티 상부에 누각이 있고 후면부에 열려진 마당이 있으며 그 뒷편에 안방을 배치하였고 뒷편으로는 원시자연과의 사이에 가벽을 설치하여 직접적 접촉을 피하고 있다. 평면적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분절은 지붕의 형식에서도 반복되어 4개의 독립된 경사지붕을 가지면서 전체적으로 집합성을 이루고 있다.
마치 전통가옥을 연상케 하는 이 집은 그 동안 건축가 방철린에게서 보아왔던 치밀함과 완벽함, 또는 도시적 분위기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봉정사 영선암과 같이 오히려 느슨하고 흐트러뜨려 놓은 것 같은, 그러면서도 긴장감이 감도는 그러한 느낌은 건축가가 지닌 욕망의 찌꺼기를 거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러한 작업의 변화가 이 지역만의 환경적 특성을 토대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와의 대화 중「점점 형태에 관심이 없어지고 있다」는 이 말은 건축가의 욕망이 집에 담겨지는 사람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가치관의 변화를 읽게 해주기도 하지만 형태화라는 것이 이미지가 어떤 단순한 관계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거나 제한한다는 사실을 오랜 체험을 통해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 면에서 이 집은 현대 건축가들이 주장하는 폐쇄되고 압축된 형식의 물리적 공간개념 보다는 전반적으로 열린 체계를 강조하면서 공간의 무한성에 대해 옹호하는 편이다. 공간의 무한성이란 사각화에 의해서 실현될 수 없는 성질을 포함하고, 다시 말해 눈을 통해 공간의 동질적 영역으로 끌어 들이려는 직접적 방법은 항상 임시 방편적이고 비가시적 영역 밖에 있는 그 무엇에 도달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 고착되고 완결됨을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유발시키는, 그럼으로써 이 집에 담기는 사람이 예기치 않은 사건에 직면하여 스스로 자연을 이해하고 동화되며 인간과 관계를 이루어 나아가게 하는, 흐르는 시간의 중간지점에서 삶의 흔적들이 누적되면서 느슨한 집으로 존재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치 합리주의 건축이 철저하게 인간 삶의 풍요와 자유를 유린시켰음에 반격하는 몸짓처럼 건축의 추상적 허상을 무덤 속에 매몰시겨 버리는 것이다. 공간적으로도 이 집은 시작과 끝을 부정하고 있다. 공간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다 보면 처음의 장소로 되돌아오고 내 외부공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모호해 진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개체들의 집합체계의 한 지점에 놓여있을 뿐 공간의 한정을 고집하지 않는다. 심지어 안방까지도 서재로 이어지는 과정의 공간으로 일상적 관습을 파괴시키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외부공간과 접할 수 있고 출입이 가능한 미제루는 불교사상에 나오는 無始無終, 즉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순환론적 인식체계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남측 전면에 동서 방향으로 길게 구성된 누각(1칸×3칸)이 이 집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서측 마당과 거실에서 연결된 이 공간은 사적인 영역과 사회적인 영역의 매체로 이웃 주민들도 쉽게 이용 할 것이다. 이 누각에서는 마을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농사짓는 모습은 물론 병풍처럼 둘러친 앞 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집 후면의 자연과도 시각적으로 연결되게 함으로써 이 지역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사고의 원천은 건축형성의 원리를 지역성 또는 역사적 변형에서 찾음에 있다. 즉 모더니즘의 실증론적 논리성과 진보에 대한 맹목적 신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의 건물유형에 복귀하려는 이중구조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미제루가 토착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토착적인 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계에 재구축하려는 역설이 존재한다. 그 속에는 단지 형태구축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행태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방철린의 태도가 한국인이니까 한국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관념으로부터 연유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이 땅에서 성장하며 형성된 순수한 감성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으로 순수자아와 타자성 사이의 분열을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미제루는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