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구주택은 큰 조직의 사무소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경제적 타당성, 기간, 일의 진행속도 등...)로 인해 수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이므로 흔히 아틀리에 건축가들의 몫이 되고, 비록 작지만 작가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이 많다고 보여진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부 소외된 분야로 거론되었던 다가구주택을 통하여 자신의 분명한 건축세계를 드러내는 건축가 방철린이다. 그는 공간과 정림건축에서 주로 대형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후,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일련의 다가구주택 시리즈를 통하여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고, 또한 이것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것만 보아도 이 분야에서는 특출한 건축가임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상류층을 위한 고급빌라의 등장과 함께 중하류층의 서민들을 위한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다가구주택이라는 명칭으로 건축적 질보다는 단지 삶의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미명 아래 과거 소필지의 주택들이 헐리고 집장사들의 돈벌이에 크게 기여한 다가구주택이 언제부턴가 우후죽순으로 우리 주변을 채우게 되었다. 다가구주택은 이제 우리 주변에 매우 친숙하게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무심코 지나치는 도심 속의 평범한 건물로써 인지되고, 건축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집장사들의 그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물론 그들의 질적인 면에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양적인 면에서는 주택공급률을 증대시키는데 공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몇몇 건축가들의 도시형 다가구주택(주로 근생 + 주거 혹은 순수주거)에 대한 새로운 유형제시 이후 건축가 방철린은 1995년을 기점으로 최근까지 스텝과 하늘마당 시리즈를 통해 자기 나름대로의 건축철학을 가지고 우리 주택 유형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다가구주택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다른 글에서 그의 다가구주택의 주제를 "家小空大"라는 말로 대변한 바 있다. 작지만 넓은 공간을 가진 집이라고 보여지는 그의 작품을 통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두가지 이야기, 즉 공간 이야기와 형태와 물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보고자 한다. 첫번째 이야기 | 공간
건축가 방철린의 다가구 주택 작품들 속에서 보여지는 공간구성의 특징은 가장 전통적인 건축어휘인 마당, 골목길 등을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도시주거에서 부족한 공동체의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의 다가구주택에 대한 공간철학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힘의 원천은 사람과의 만남이며, 이러한 만남은 열악한 도시 콘텍스트를 감안할 때 각 주거로의 진입체계와 입체화된 계단, 선큰공간, 작은마당, 그리고 옥상부의 휴게공간을 통해서 만들어지며, 이러한 요소들은 이웃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의 장치로서 해석되고 있다. 다가구주택은 건축주의 요구조건에 맞는 주택평면을 제외하면 결국 공용부분에 해당하는 복도나 계단, 그리고 발코니 정도의 구성요소만이 건축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된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철린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평면구성은 획일적으로 처리하기보다 각 층의 조건과 특성에 맞게 변화시켜 세대간의 차별성을 부각시킴으로써 공간감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공용부분이 건축가의 창의적인 사고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며, 그가 주장하는 현대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잊고 있었던 공동체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방철린은 다가구주택에서 건축가가 고심해야할 필수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건축적으로 잘 해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1995년의 연남동 Step I을 시작으로 이문동 Step II, 그리고 역삼동 Step III(양추헌)를 통하여 도로 경계로부터 개개의 사적공간에 이르는 과정공간에 해당하는 계단과 복도를 단순한 통로의 의미만이 아닌, 과거 우리 삶의 중요한 장소였던 좁은 골목길의 대체공간(이러한 이유로 "Step"이라는 주제 도출)으로 인식하고, 여러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시선이 오갈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외부로 노출시킴으로써 좁은 의미의 건축적 산책로의 역할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서의 치환,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공간을 주요한 공간(Major Space)이라 칭하고, 스텝시리즈 이후 역삼동 다가구주택이나 하늘마당 I, II를 통해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즉, 외부지향적이었던 이러한 주요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이면서도 풍경의 조작 및 개방감을 확보하기 위한 차단장치나 경계요소로서 헛기둥, 발코니, 벽 등이 나타나게 된다. 가장 최근의 작품인 하늘마당 II에서는 반외부지향적으로 처리된 계단과 복도는 차단장치나 경계요소의 처리가 가장 돋보이는 작품으로, 좁은 땅에서 느낄 수 없는 외부공간의 맛을 더하고 있음은 물론 층별로 다양하게 계획되어 사는 이들에게 공간적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다른 주택들이 전면부를 할애해 주차장을 배치한 반면, 하늘마당 II는 동서측면에 주차장을 배치함으로써 측면으로의 시각적 개방감으로 인하여 공간의 여유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외부로 노출되었던 계단은 반내부화한 것은 P.O.E.(거주 후 평가)에 따른 것으로 보여지며, 그가 말하는 주요공간을 입주자가 선호하는 반외부지향적으로 처리하여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를 갖게하고자 하는 배려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마당은 법적인 제한, 특히 주차장으로 인해 광의의 개념에서의 마당 공간을 구성하기란 어려웠을 것이고, 협의의 개념에서 4가지의 마당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현관으로서의 1층의 작은 마당이며, 두번째는 다가구주택에서 고민거리의 하나인 지하층 거주자나 근린생활시설 이용자를 위한 환경적 처리로서 내부로의 빛의 유입과 함께 통풍,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처리된 지하 마당, 세번째는 작가가 명명한 "하늘마당"으로서, 사는 이들에게 4계절에 따른 자연과의 교감을 줄 수 있는 건물주인 세대를 위한 쌈지마당, 네번째는 휴게공간으로서 파고라(역삼동 주택)나 주인세대를 위해 배려되었지만 마루를 깔아 평상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옥상마당(하늘마당 II)이다. 이와 같은 방철린의 공간만들기 작업은 우리에게 다가구주택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규범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 | 형태와 물성
우리에게 다가구주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공간적으로나 형태적으로나 부정적인 사고로 접근하려는 생각이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다가구주택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이 그저 생활이 넉넉치 못한 서민들의 집이고, 또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건축가의 몫이 아닌 소위 집장사들의 영역으로 여겨져 좋지 못한 인상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단실의 세로로 긴 창, 적벽돌과 흰색 페인트마감, 볼 품 없는 외부계단, 빛의 절대부족, 부실한 시공, 삶의 방식을 외면한 공간구성 등으로 우리 주변의 다가구주택의 모습에서 방철린의 다가구주택에 대한 형태 구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불 수 있다. 그의 다가구주택들은 형태 구성과 화사드에서 중요한 몇가지 공통적인 특징과 함께 도심지의 그것에서 볼 수 없는 몇가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즉, 개별적인 주호를 연결하는 노출계단과 복도, 그리고 노출콘크리트와 외벽 단열재로서 파스텔조의 아이소코트의 이중 화사드처리, 그리고 튀지만 괜찮게 대비되는 색채구성, 그리고 매스의 단순성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다만 그의 작품 중에서 이문동 스텝 II는 이러한 그의 특징을 의심스럽게 하지만, 점, 선, 면이라고 하는 구성의 3가지 기본요소를 화사드에서 적절히 혼합하여 꽉 짜여진 입면구성을 하고 있다. 특히 그의 모든 주택에서 보여지는 노출콘크리트의 사용은, 물론 요즈음 몇 년 전부터 일부 건축가들에 의해 유행처럼 쓰여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의 시공상태가 좋든 나쁘든 건축을 겉치레적이고 가시적이기보다, 보다 순수하고 진실된 가장 강력한 형태의지의 표현 수단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콘크리트바닥에 콩자갈을 깔아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든지, 혹은 복도부분에 타일을 깔아 관리상의 용이함이라든지 다른 다가구주택과 분명히 차별성을 갖는 입구성을 강조하는 잘 디자인된 철재대문으로 인해 비록 세들어 살고 있지만 사는 이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 같은 구석구석에까지 그의 손길이 닿은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콘크리트, 철재, 유리, 그리고 외부 단열재로서 아크릴계 코팅재의 4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노출콘크리트와 늘 함께 따라 다니는 철재의 사용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보여지며, 시공의 용이함을 위해서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발코니나 난간에서 구조재를 장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이러한 그의 물성에 대한 이해를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그러나 시공상태가 비교적 저렴한 시공비로 지어진 다가구주택에 비하면 우수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그의 다가구주택에서 보여지는 매력 중 하나로도 여겨질 지도 모른다. 사실 다른 일반 다가구주택에서 보여지는 재료의 나약함과 시공강태의 불량 등을 고려한다면 이것 역시 좋게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상태가 비교적 뛰어난 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삼동 주택의 1층 진입공간 측면에서 보여지는 4개의 원형기둥을 같은 기간에 설계되었기 때문에 기인한다고 보여지지만, 하늘마당 II의 3층 테라스인 쌈지마당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작가 본인은 조형이나 재료의 쓰임새보다는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공간만들기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하지만, 결국 건물은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에 다분히 형태의 단조로움을 깨기 위한 적절한 장식적인 요소의 사용이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또한 경제적인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그의 건축형태 구성에서 바닥재 외에 부분적으로 목재의 사용이 그의 건축 조형의지를 더욱 분명하게 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형태구성은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면서 외부와의 대화를 유도하는 돌출되거나 보이드하게 처리된 발코니, 그리고 보이드와 솔리드한 면의 대비와 이중적인 화사드, 그리고 밝고 어두움의 대비적인 형태구성과 선적이면서도 대, 중, 소의 면적구성으로 데스틸적이고 꼬르뷔지에적인 표피의 구성으로 보여지며, 이러한 모습은 다가구주택의 질을 한층 더 높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거론된 이야기는 방철린의 다가구주택에서 보여지는 특징 위주의 글로써 전개시켜 보았다. 사실 본 글이 다가구주택에만 한정시켰기 때문에 굵직한 몇가지 이야기를 제외하고 나면 다가구주택에서 그리 많은 이야기를 전개시키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간적으로는 단위세대를 제외하고 나면 공용부분 이외에 별로 화두의 대상이 될 만한 주제가 없으며, 형태적으로는 비교적 절제되고 단순화된 매스를 통해 표현되고 있고, 어떻게 보면 굉장이 보편적인 건축언어로써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답사한 후 새삼 느끼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이 글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사는 이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된 건축가의 치밀한 사고가 엿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건축가 방철린의 건축에 대한 성실함은 앞으로 그의 건축의 행로가 순탄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특히 앞으로 계속적인 다가구주택의 작업을 통하여 이 분야에 있어서 새로운 규범을 우리에게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홍익대 건축과 교수 이영수 / 건축문화 9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