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출판도시는 저마다 독특한 공간을 내세우는 건물들과 건축가의 은근한 자존심이 대립되는 실험 공간이다. 하지만 한쪽에서 이런 번잡함을 떠나 조용히 자리 잡고 속 깊이 세상을 지켜보는 공간도 있으니, 바로 탄탄스토리하우스다. 육중한 덩어리의 조합으로만 보이는 이곳이 속속들이 숨겨진 재미로 가득 들어차 있음을 안 것은 실내에 발을 들여 놓고부터였다. 글 / 최충욱(건축 전문 기고가)
이른 아침 시큰한 공기를 들이키며 파주출판도시에서 집을 찾는다는 것은, 인사동 거리에서 예쁜 마당을 안은 한옥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묘한 즐거움과 답답함을 동반하는 탐험과 같다. 저마다 조금은 비슷한 규모의 땅에 비슷한 노출콘크리트와 날카로운 각으로 공간이 구획된 수많은 출판사들 사이에서, 심학산 끝자락에 세로로 길게 편히 누운 탄탄스토리하우스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네모난 몇 개의 덩어리를 단순하게 쌓아 올린, 뭐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둔탁한 건물인데다, 파주출판단지 주 진입 도로에 좁은 입면부가 창도 없이 무채색의 얼굴을 들이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과 전시를 위한 곳이 무엇을 저리 숨겨 놓고 있는 것일까. 우선 오래된 기름 침목이 널찍하게 깔린 진입로를 따라 안쪽 모퉁이 현관까지, 이 건물의 길이만큼 주 출입구가 길게 이어진다. 건물의 실내 탐험이 건물의 뒤쪽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밝고 가벼운 느낌의 마룻바닥 로비에 들어서면 세 갈래 길을 만나게 된다. 첫 번째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가 준비될 공연장으로 가는 길이고, 두 번째는 로비 왼쪽으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2층 임원실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이곳은 주 사용자인 어린 고객들의 안전과 이동을 직접 지켜보고 싶어 한 건축주의 뜻을 건축가가 명쾌하게 해결한 부분이다. 세 번째로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은 현관 맞은편에 작은 창이 일렬로 뚫려 있는 벤치 부분. 간결하고 절제된 스케일의 이곳은 창을 통해 투과된 빛이 로비의 마룻바닥에 8개의 반사광을 만들면서 이용자가 호기심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음으로 이동하게 될 이 건축물의 메인 계단실 첫 부분을 슬쩍 내밀어 공간이 지속적으로 이어짐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곳은 벤치에 앉아 길고 높게 이어진 계단실을 지켜보며 호흡을 가다듬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 건축가 방철린의 축적된 감성과 사용자의 기대 심리를 노련하게 이끄는 계산이 바로 여기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다.
20여 개의 네모난 창을 통해 다양한 각도로 빛을 쏟아내는 길고 먼 통로를 걸어 본 적이 있는가. 제법 긴 이 복도형 계단실은 탄탄스토리하우스가 중심을 잡고 각종 공간을 연결하는 허리 역할을 한다. 어린이의 스케일에 맞춘 계단의 보폭과 높이, 핸드레일 위치, 어른 세 명이 동시에 통과해도 무리 없을 만큼 넉넉한 폭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틈틈이 멈춰 서서 창에 턱을 괴고 밖을 내다볼 아이들과 전시물을 놓을 수 있도록 충분한 너비를 둔 창틀 등은 이곳이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님을 말해 준다. 특별한 장식도 없는 계단실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고 다이내믹한 이곳을 오르다 보면, 각종 동화를 담은 1백여 점의 일러스트가 걸린 3층 전시실을 만나고, 다시 오른쪽으로 꺾인 계단실을 통과하면 수천 권의 동화책이 마련된 4층 전시실과 북 카페에 도달하게 된다. 이 과정은 어린이들이 어떤 환경이 펼쳐질 줄 모르는 상황에서 갖가지 공간을 헤쳐 만족을 얻고, 또 내부와 외부를 곁눈질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설정이다. 불확실한 공간에 다가설 줄 알고, 관통하는 시선을 통해 경관을 즐기는 경험은 ‘느리고 길게 걷는 발견’이라는 건축가의 생각이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음 탄탄스토리하우스를 만났을 때 보았던 네모난 박스가 중첩되고 비틀어진 모습은, 실내 공간을 충분히 거닐고서야 그 구조의 묘미를 발견하게 된다. 우선 건물 외벽을 감싸고 있는 네 가지 재료는 검정 아연도금강판, 진회색 화강석, 노출 콘크리트, 송판 노출 콘크리트인데, 이는 각각 독립된 공간들이 서로 얽혀 있음을 마감재로 구분하고 상징화한다. 또 이들의 비틀린 결합으로 생기는 틈은 전시 공간이나 계단실에 햇살을 끌어오는 역할을 하고, 작은 테라스 같은 외부 전망 공간으로도 요긴하게 이용된다. 실제로 3, 4층 전시실 서쪽 벽면과 4층 북 카페의 남쪽 벽면은 옥상층까지 뚫려 있어 자연 채광이 가능하고,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전시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또 틀어진 4층 동쪽 테라스 아래 위치한 화장실과, 옥상층 아래 위치한 동쪽 계단실도 우물 모양의 천장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 테라스 바닥과 옥상층 바닥에 실제 우물처럼 솟은 구조물은 자연광을 끌어들임과 동시에 시간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곡선형 실루엣이 실내에 떨어지게 함으로써 경직될 수 있는 박스형 건축물의 실내 채광을 재치 있게 해소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4층 전시실과 북 카페로 통과하고 만나는 옥외 하늘마당은 소규모 이벤트와 작은 전시를 겸할 수 있는 곳. 특히 좌우 유리벽의 역할을 겸하는 접이식 유리문은 매서운 계절에도 이용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가변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이 공간이 투명하게 뚫린 것은 건물이 옆으로 특별히 길기 때문에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이웃 주민의 시선을 고민한 건축가의 배려가 숨어 있다. 비슷한 높이의 인접한 건물 사무실 창이 이쪽을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건물의 구석구석을 돌아오는 동선의 마지막 종점은 바로 옥상층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린 나무 바닥과 어른들이 앉기에 앙증맞은 나무박스. 그리고 한 켠에 마련된 잔디마당. 파주출판단지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오고, 단지를 감싼 심학산이 지척에서 조망 가능한 옥상층이야말로 아이들이 도달하게 될 ‘가슴 트이는’ 공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옥상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재미나다. 하늘마당 벽에 반쯤 휘감겨, 계단 사이의 작은 틈으로 빨랫줄 같은 그림자들을 드리운 모습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탄탄스토리하우스는 1층에서부터 건물의 안쪽 측면을 돌아 옥상층까지 오르도록 만든 구조로 이곳을 이용할 어린이들을 위해 깊이 고심한 결과들이다. 빠르고 즉흥적인 인터넷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건축가가 해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이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천천히, 그리고 길게 걸어가는 것이 더 흥미롭다는 점을, 공간을 통해 이야기하려 한 건축주와 건축가의 속 깊은 배려였을 것이다. 탄탄스토리하우스의 이런 뜻이 퇴색하지 않길, 동토를 빠져나온 새싹의 처음 모습처럼 변하지 않고 어린이들 곁에 남아 있기를 기대해 본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 패러다임을 보다
Q ‘방철린표 건축’이 있다면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떤 아이덴터티로 얘기할 수 있을까? A 건축에 있어서의 무위(無爲)와 허(虛)에 대해 생각한다. 디지털시대에 푹 빠져 하루 종일 컴퓨터와 생활하는 21세기 현대인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는, 인간과 컴퓨터가 아닌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느끼고 살 수 있는 아날로그적 건축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의도적으로 아날로그화 된 건축 속에서 인간은 차가운 이진법의 디지털 세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Q 그러한 작업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공간구성의 표현들이 있는가? A 건축에 필요한 요소로는 공간에 있어서나 형태에 있어서나 공히 위트가 요구된다. 위트가 보이는 건축은 거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늘 즐거움을 준다. 다음으로는 생활의 창조력을 요구하는 건축이다. 쓰임새를 미리 정하고 그 쓰임새에 꼭 맞는 공간을 만들어 아무 불편함 없이 쓰게 하는 공간보다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더 값어치 있는 공간이고 인간의 맛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곧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적 공간이다. Q ‘훌륭한 건축’이란 어떤 건축이라고 생각하는가? A 훌륭한 건축이란 거대하게 위용을 갖추었다거나 외모나 인테리어가 예쁘게 잘 되었다든가 또는 공간의 편리성만을 추구하였다던가 하여 오히려 인간성이 결여된 그런 건축이 아니다. 조금 불편함이 있더라도 인간과 건축의 관계에서 인간적 냄새를 느끼게 하고, 건축을 통하여 인간과 신 또는 인간과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연결해 줄 수 있는 그런 건축이야말로 훌륭한 건축이라고 본다.
Q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지금 막 설계 작업을 하고 있는 것. 지난 작품들에서는 늘 ‘조금만 더 했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을 갖는다. 설계 작업에 임할 때에는 그런 아쉬움이 없도록 완벽을 기하리라는 결심으로 조심스럽게 작업에 임한다.
방철린 프로필 1948년 대전 생으로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공간연구소에서 공간연구소사옥 등의 작업을 통해 김수근으로부터 건축사상을 사사하였다. 정림건축에서 10여 년간 다양한 건축 경력을 쌓고, 인·토건축을 설립했으며 올 초부터 건축그룹 칸으로 상호를 변경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4.3그룹 동인으로 4.3그룹 건축전과 2회에 걸친 작품집출간을 했으며, 한양대학교 건축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대표작으로 대덕과학문화센터, 부산문화방송사옥, 신라대학교, 한동대기숙사, 스텝시리즈, 하늘마당시리즈, 원주제일교회수련원, 북이십일, 교육과학사, 중앙입시교육원 등 다수. 연남동스텝과 하늘마당Ⅱ로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을, 한국건축100년전의 총괄 기획으로 대통령 표창을, 미제루로 한국건축가협회 아천건축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아카시아 우수건축상 금상을, 산빛마당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한건축사협회장상을 받았으며, 2004년에는 연하당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받았다.
최충욱 프로필 1972년 부산 생으로 영남이공대 건축과와 관동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건축인테리어 전문잡지인 <월간 이상건축>, <월간 건축문화>, <월간 PLUS>를 거치면서 건축전문 기자로 활동 했다. 이후 인쇄매체 전문 컨설팅사인 (주)한국데이톤에서 매체 기획을 담당했으며, 이곳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의 매거진 <Mercedes>, 볼보 코리아의 <VOLVO MAGAZINE>, LG카드의 <bonne amie>의 수석 기자로 활동했다. 그 후 2006년까지 PR 및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전문회사인 (주)커뮤니케이션 신화에서 GS건설 자이 브랜드 현장 소식지 <자이 스토리> 제작팀장으로 기획과 취재, 촬영 등을 총 코디네이션 했다. 현재는 (주)아키투어에서 아키투어 프레스팀을 이끌며 전 세계의 도시·건축·인테리어·조경·답사 등의 기록들을 출판물로 기획·제작하고 있다. 이 밖에 <매거진 아키투어> 편집장을 겸하며 네이버 카페 <아키투어>와 네이버 블로그 <공간과 시선>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