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전으로 현대는 지구에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최고의 문명시대를 맞고 있다. 특히 IT산업의 발전의 속도는 밀려드는 폭풍우와 같아 인간은 매일 매일을 꿈같은 일들이 현실화되는 새로운 세계 속에서 산다. 안경모양의 HUD(head up display)만 쓰면 허공에 디스플래이 된 루트를 통하여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거나 여행의 모든 예약을 마칠 수가 있는가 하면 증강현실 속에서 옷도 바꿔 입어보고 가구도 설치해보며 영화제작은 물론 건축물과 도시설계도 가능해졌다.
이진법의 디지털세계 이렇게 아쉬움이 없도록 새로운 세계를 맘껏 누리는 인간에게 문명의 이기는 좋은 일만 남겨주었을까? 이러한 새로운 세계는 분명 인간에게 유해한 부분이 제공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게임이나 인터넷에 열중하다 보면 시간의 인식이나, 옆에 있는 타인을 인식하지 못하고 기계에 정신을 잃게 되고 이런 현상이 심화되어 중독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상의 지속화 속에서 사람의 성격은 점점 바뀌어 독단적이고 급한 성격으로 변하게 되고 타인을 불인정하며 나아가 고독과 허무에 시달리게 되고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어 급기야 살인과 패륜행위를 자행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오랜 시간을 아날로그 세계에서 익숙해 멀쩡하게 있던 사람도 디지털세계로의 생활로 바뀌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디지털의 세계는 이진법으로 이루어져 있고 0과 1을 기본으로 한다. 디지털세계의 이진법은 ‘있다’와 ‘없다’의 세계이다. 디지털의 세계에서는 이런 0과 1의 조합에 힘입어 깨끗한 영상, 깨끗한 음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예전, 스크레치가 기본으로 깔려있던 필름영화나 레코드판의 세계에서는 필요 없는 스크레치나 잡음은 제외하고 필요한 부분만을 선택해서 보고 듣는 지혜가 있었고 이런 것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 스크레치나 잡음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늘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또 그 존재를 인정하여왔다. 그러나 디지털세계에서는 늘 깨끗한 영상이나 음악을 접하다 보니 영상의 스크래치나 잡음은 이제 있어서는 절대 안 되는 부정적 요소로 바뀌었다. 이제는 절대로 공존해서는 안 되는 극단적인 부정적 요소로 바뀌어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서양보다 훨씬 전에 동양에 이진법이 먼저 있었다. 주역의 이진법이 그것이다. 주역의 이진법은 양효와 음효로 이루어지며 이 효가 6개가 모여 만드는 괘의 수가 64개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효의 기능은 양이냐 음이냐의 공존의 세계이고 선택의 세계로 우리가 살아왔던 아날로그세계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의 세계는 이거냐 저거냐의 세계가 아니라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선택의 폭이 한정되어 있어 여기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마음조차도 극단적인 생각으로 바뀌는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이런 생각도 있고 저런 생각도 있는 다양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생각은 옳고 다른 생각은 그른 생각이고 그래서 부정하고 없애버려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세계와 아날로그세계의 서로다른 성격 이렇게 디지털의 세계와 아날로그 세계는 서로 반대 급부적 성격을 가진 개념으로 대비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날로그세계는 전통을 중시하고 숭고함에 매력을 느끼지만 디지털세계는 신선함을 중시하고 시뮬라크르의 가치를 중시한다. 아날로그 세계에서는 통상 느리고 모호함이 존재하지만 디지털세계는 빠르고 명료함만이 인정되는 세계이다. 또한 아날로그 세계은 정신적이고 이지적이며 관조의 세계에 빠지고 사물의 심오함에서 매력을 느끼는 반면 디지털세계는 다분히 물질적이고 감각적이며 직설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한다. 따라서 아날로그세계는 관계성을 중시하고 공동의 세계에서 포용력을 중시하는 반면 디지털 세계는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에 빠지기 일수며 극단적 행동을 무의식중에 일으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세계에 대응되어 사람의 마음을 치유 할 수 있는 건축이 꼭 필요한 이유다.
비워냄의 건축 여기서 잠깐 노자의 허(虛)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노자는 ‘이 세상의 존재물 중에서도 큰 것으로 사람과 땅과 하늘과 도(道)가 있는데 그 중에 도가 제일 위에 있고 그 도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따른다’고 한다. 인위적(人爲的)이지 않은 자연의 상태가 가장 우위에 있다는 이야기다. 노자는 또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존재하지만 비워내고 비워내서(虛) 고요한(靜) 상태가 되는 때 비로소 뿌리(根)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만물은 비워내고 비워냄으로서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고 이때가 가장 무위자연의 상태임을 이야기한다. 사람의 마음이 이러한 상태로 가도록 해야 하고 이런 마음의 상태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면 ‘허(虛)’가 있는 건축 ‘허(虛)’가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건축십서와 팔아디오양식의 서양건축 이태리 비첸차(Vicenza)에 팔라디오(Andrea Palladio1508~1580)가 설계한 빌라 로툰다(Villa Rotonda)를 보면 서양건축의 뿌리를 눈치 챌 수 있다. 실제로 팔라디오는 당시 로마건축에 집중하였고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io)의 건축십서에 매료되었었다.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는 BC 1세기 유럽역사 변화의 주역이었던 로마의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만들어진 책이다. 400여년을 이끌어온 로마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로마제국의 시대가 열리는 대 변환점에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헬레네건축을 기본으로 건축십서를 만들고 이 책을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게 바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건축의 기본원리는 로마제국의 많은 건축물들의 균형 있는 디자인의 기본으로 작용하였다.
이 책이 1415년 발견되고 1480년경 다시 발간되면서 이 책에 영향을 받은 팔라디오는 비첸차에 빌라 로툰다를 비롯한 많은 건축물들을 짓게 된다. 그가 많이 사용하는 건축요소는 로툰다 중심의 단순하고 대칭적인 평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기둥이 받치고 있는 페디먼트의 변화무쌍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조형성이다. 그의 건축수법은 이후 팔라디오양식이란 이름까지 붙여져서 수 백년간 유럽각지에서 재탄생되고 신고전주의의 기본이 되기도 하며 신세계미국과 아시아전역에까지 전파되어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콘크리트구조의 도미노형식에 힘입어 ‘자유스런 평면’을 구가하던 르 코르뷰제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도 배치형식에서는 팔라디오의 빌라 로툰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책에서는 건축과 토목의 대하여 기술적이고 그리고 각론적인 부분은 다루면서 기본원리인 질서(Order), 배열(Arrangement), 균제(Eurythmy), 균형(Symmetry), 장식{Decor(propriety)}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건축이 어떻게 인간을 만나 작동하는가? 건축이 자연과 어떻게 대화를 하는가 하는 것에는 언급이 없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의식한 로마인의 우월성 표현 이외에는.
건축의 허를 찾아온 한국건축 반면 한국건축의 뿌리는 어떠한가? 한국건축은 분명 자연과 대화를 하고 자연의 지형적 생김새와 특징에 동화하며 나아가 자연과 일체화가 되는 건축물과 공간의 배치를 만들어 간다. 그리하여 인간이 공간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과 자연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건축자체에 감동하기보다 건축과 자연의 어우러짐에 감동하며 건축자체의 숭고함보다도 자연 속의 공간의 숭고함에 감명을 받는다. 이것이 곧 한국건축의 뿌리다. 한국건축의 뿌리는 분명 조형적 질서나 균형에서만 건축을 찾으려는 인위적 방법이 아니라 자연 속에 녹아들어가는 무위의 방법으로 건축을 지어왔다고 본다. 즉 건축의 ‘허’를 찾는 것이 명맥을 유지해온 한국의 전통건축이었다고 생각한다. 패쇄적이지 않고 투명하고 막히지 않고 소통하며 급하거나 빠르지 않고 여유롭고 느린, 그리고 희열을 느끼는 그런 건축을 추구하여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현대에 살지만 위에서 이야기 한 한국건축의 뿌리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여왔다. 이제 최근에 본인이 설계하고 지어진 건축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제주스테이 비우다(Jaeju stay Biuda) 제주스테이 비우다는 소수의 인원을 투숙시키고 쉬도록 하기 위한 소규모 머무름 공간이다. 제주스테이 비우다를 설계하면서 우선 건축주와 의견을 맞춘 것은 2000여평의 귤밭인 부지를 원래 지형과 원래의 자연상태를 그대로 살린 상태에서 집을 앉히고 인위적인 조경도 될 수 있으면 최소화 하자는 것이었다.
현황측량을 자세히 하고 이 측량도를 기본으로 현장과 일일이 대조해 가며 집이 앉혀질 곳을 면밀히 조사하고 확인하여 땅의 형상을 바꾸지 않으려 온갖 애를 썼다.
계획을 하면서 디자인의 실마리를 찾던 중 제주도에 흔한 귤 밭과 함께 그 안에 있는 귤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 원래의 귤 창고 모습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의 모습이 나름 오랫동안 제주도에서 명맥을 유지해 왔다는 점으로 볼 때 그 존재가치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또 하나는 제주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돌담의 모습이다. 돌과 바람이 워낙 많은 섬에서 밭고랑 사이의 돌담은 식물들을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그 돌담의 엉성하게 쌓은 모습에서 제주도 사람들의 지혜가 발견된다. 돌담은 용도에 따라 겹담과 홑담을 쌓지만 겹담까지는 필요 없는 밭고랑의 담은 홑담이면서도 제주도의 강한바람을 이겨내게 하려 지혜를 내서 구멍이 숭숭 뚫리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허’라 생각했다. 돌도 적게 들고 공간도 적게 들면서도 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 이 속에 자연과 소통하려는 지혜가 보이는 것이다.
건축의 원형으로도 느낄 수 있는 귤 창고를 얼기설기 제주도의 담처럼 쌓으면 소통의 개념은 물론 무작위적으로 생기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었고 이렇게 생긴 숭숭 뚫린 공간으로 제주도의 바다에서의 기(氣)가 집을 통해 뒤까지 연결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형식적이지도 않으면서 편안한 공간들이 여기저기 생길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하였다.
실제로 숭숭 뚫린 곳에는 여기저기 이곳에 쉬러온 이들이 아무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부정형의 공간이 생겨났다. 조망을 위한 창도 한 방향으로 만 뚫린 게 아니고 방마다 다른 경치를 다르게 생긴 창을 통하여 감상할 수 있다. 모든 객실에 이르는 계단과 각실의 구성요소들은 위치에 따라 다른 공간경험과 다른 느낌으로 느낄 수 있도록 차별화 하였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 감상을 위해 일부욕실과 다락방에는 천창을 뚫어 별과의 대화를 유도하였다.
매송헌(呆松軒) 주택인 매송헌의 위치는 경기도 남양주시로 이 동네는 예전부터 석실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석실 서원이란 이름의 겸재정선의 그림으로도 남아있는 한강변의 경치가 수려한 곳이었다. 많은 집들이 들어서서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좋은 풍수지리를 가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한강의 한가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볼 수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부지의 남쪽과 동쪽으로 들어선 집들과 북측과 서측에 있는 뒷집들의 높은 축대로 부지는 사방이 갇힌 상태로 되어 있었으며 강으로의 전망도 막혀 있었다.
이러한 주변상황을 면밀히 조사해 본 결과 부지는 소용돌이모양의 지붕이 요구됨을 알 수 있었다. 뒷집의 조망도 배려하고 매송헌의 꺼진 대지 의 단점도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 적절 한 구성일 거라고 생각되었다. 경사진 지붕과 함께 그 아래로 따라 내려오는 천장을 가진 공간의 형상이 상상되었다.
실제로 변화있는 천장높이는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지붕이 감아 내려오는 마지막 남쪽부분은 루(樓)형식으로 하고, 집안으로의 진입은 루하진입(樓下進入)형식으로 감아 올라가서 마당과 만나고 이곳에서 거실로 진입하도록 함으로서 내외부공간의 유기적 연결이 자연히 이루어졌다. 가운데 위치한 마당은 집안소통의 중심이 되며 거실과 마당 그리고 루의 창을 열면 연결된 하나의 공간이 되도록 함으로서 비운 마당의 장점이 살아나도록 하였다. 이렇게 구성된 단면 덕으로 맨 윗층의 방에서 한강으로의 전망이 열리게 되었다. 이방의 레벨을 좀 더 올리면 좀 더 좋은 전망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뒷집에 대한 배려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탄탄스토리하우스 파주출판도시내에 있는 탄탄스토리하우스의 부지는 T자형식의 도로와 접해 있으며 파주출판도시의 마스터 플랜상 집의 형상이 뒤쪽의 심학산과 한강의 그린코리더가 연결되도록 하기 위해 길다란 ‘창고’ 형상이 요구되었다.
마스터플랜의 요구대로라면 진입로에서 볼 때 좁고 긴 건축물의 좁은 모퉁이만 보고 진입을 해야 하는 형국이어서 이런 형상적 요구를 소화 하면서도 변화를 추구할 방법을 모색한 끝에 집의 아랫부분과 윗부분의 각도이 변화를 주어 진입하면서 보이는 건축물에서 시각적 변화와 함께 투시도 효과를 갖도록 하였다. 아래부분과 윗부분의 어긋난 부분은 베란다로도 사용가능하고 천창을 설치하여 갤러리 내부의 채광을 도울 수도 있도록 하였다.
건축물로의 진입은 도로에서의 바로 진입을 피하고 긴 진입로를 통하여 부지의 맨 안쪽으로 동선을 유도하고 건축물 안으로 들어서서도 건축물 전체를 감아 돌아 상부로 올라가는 동선 체계를 만들었다. 가급적 진입동선을 길게 하여 여유를 갖고 건축물 내부를 관람하며 다닐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다. 이것이 건축의 허라 생각했다. 또한 1층에서 3,4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은 어린이들을 위하여 완만한 경사를 주면서도 계단공간의 인상적인 오름을 위하여 직선의 공간을 그대로 계단실 공간으로 만들었고 바깥쪽으로 면한 벽체에는 불규칙하게 배치된 다양하고 작은 창을 통해 빛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기저기 만들어진 천창과 4층의 중간부분에 만들어진 종단으로 관통된 마당은 사각적으로 남북간의 소통을 꾀할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하였다.
마음을 비우고 비워내서 순리에 맞도록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집 지금까지 최근에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몇 개를 보면서 ‘건축 –허찾기’란 제목의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직접 생활하고 지내야 하는 건축물들이 어떤 건축물일까? 이런 건축물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욕심이 가득 채워진 인위적인 집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비워내서 순리에 맞도록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집이 바로 허(虛)가 있는 집이고 이런 집이 사람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집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