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스탄불에서는 국제 건축가연맹(UIA)총회가 열리고 한국건축가 협회를 주축으로 하는 대한민국 건축가 멤버들이 이 총회에 참가하였다. 최근 한국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청계천 프로젝트를 이곳 총회가 열리는 이스탄불에서 전시하고 소개를 하기위해 그 동안 건축가협회와 서울시가 준비를 해 왔고 서울특별시장이 이를 직접 발표하기 위해 이스탄불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청계천 프로젝트는 모든 국민과 함께 건축가들이 꿈같이 바라던 바였는데 그 이유는 급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던 군정시대의 유산인 청계천 복개시설과 고가도로가 도시환경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나아가서 도시와 함께하는 자연생태환경의 중요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며,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미개국이 아닌 다음에야 이 같이 도시 가운데를 통과하는 개천을 복개하여 도로로 사용하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복개부분을 모두 철거하여 원상복구를 하기 위하여서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거니와 교통문제를 비롯한 각종 분야에 대해서 수많은 문제가 뒤따를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차에 서울시장의 과감한 용단으로 청계천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나서 여러 계층의 반대의견도 많았지만 건축계에서는 이같이 용단을 내린 서울시장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찌 이를 감당하려 하느냐하는 우려도 잠깐, 프로젝트는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었고 올해 10월 준공을 위해 한참 막바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심의 중앙을 흐르는 개천에 인공적으로 물이 흐르게 하고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여러 종류의 폭포와 분수를 설치하여 그 주변으로 어린이들과 함께 사람들이 모이게 하고, 개천 주변으로 풀과 나무를 심어서 푸르름을 유지하게 하는 등 청계천의 새로운 소식이 늘 서울시 홈페이지며 인터넷뉴스를 장식한다. 그러나 이러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서울시가 이 청계천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자부할 만하겠는가 하는 반문을 갖게 한다. 문제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급하게 진행되는 사업의 공사 진전속도와 함께 이에 반비례적으로 미흡함을 더해가는 역사적, 문화적 코드와 그 완성도이다. 한국전쟁이후 한국의 근대화사업으로 많은 도시스케일의 사업이 수행되어 왔지만 제대로 문화적 코드를 갖춘, 그리고 완성도 높게 이루어 낸 일은 정말 보기 힘든 실정이다. 전쟁 직후에야 경제적으로도 도시적으로도 바닥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없었던 시절이어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그 속도를 타고 성장이라는 것이 동반되고 경제적 상승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겠지만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타성에 젖어 급속도의 진행으로 일을 마무리해 버리려는 습관이 아직도 인정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청계천의 복원문제를 거론할 때 첫째로 중요하게 다루고 생각해야 하는 점이라면 이 개천이 단순히 도심의 한 복판을 흐르는 자연생태계라는 것 외에 600년 역사를 가진 고도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었다는 점과 또 현재도 흐르고 있고 미래에도 흐른다는 점 일 것이다. 이런 청계천의 역사성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 생각의 진지함과 전문가적 수준이 어디까지였냐 하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를 남긴다. 공사 중에 발견된 유적이나 유물 몇 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모습을 복원 하였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결과물을 보면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사고의 세계나 존재적가치 그리고 디자인이론에 대한 고증을 거친 결과물이며 완성도 면에서 성공적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깊이 있게 뜯어보지 않더라도 웬만큼 관심을 가진 건축가라면 금방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점들을 발견할 수 있어 과연 건축가가 디자인하고 개입이 되어있었느냐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 개천을 600년 후에 후손들이 본다고 생각할 때 그 들이 개천에 있는 복원된 문화유산을 보고 600년 전 선조들이 그 전 600년 문화유산을 다시 복원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물려주었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이다. 고증도 디자인 원리도 그 품격도 모두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600년 전 선조들이라고 형편없는 평가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다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현재 새로 만들어지는 청계천 관련 시설들의 가치와 품위수준이다. 무지한 관리들의 무관심 속에 많은 문화유산들이 이미 예전에 훼손되었지만 다행이도 조선시대에 만들어 놓았던 청계천의 수표교는 보존이 되어 이를 보고 우리가 긍지를 느낀다. 그런데 이 시대에 새로 만들어진 청계천의 구성요소들이 600년 후에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이다. 청계천의 남북을 잇는 22개나 되는 많은 교량이며 옹벽이며 난간이며 가로등 같은 스트리트 퍼니춰에 이르기까지-자세히 들여다보라. 그게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것인지 19세기 유럽에 있는 것인지, 지역적 역사적 정체성의 혼돈 속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어 이것을 보고 과연 대한민국 서울의 정체성을 느끼고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그 많은 다리와 구조물에서 진정한 구조미를 느끼고 현대건축미를 느낄 수 있으며, 그리하여 잘 된 현대건축으로서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역사의 한 페이지가 장식될 수 있을까? 자랑은커녕 혹 그 결과물이 유치하여 내어놓기 부끄러운 것은 아닐까?
1917년 일제총독부가 건설한 한강대교 이후로 한강에는 남북을 잇는 교량이 27개가 넘게 건설되었고 서울지류의 다리를 보더라도 수백 개가 넘는데도 누구에게 내어놓고 자랑할 만큼 제대로 디자인 된 다리 하나 갖고 있지 못한 게 서울인데 이제 그 보다 시간이 훨씬 지난 지금 청계천에서는 뭐 좀 나아지는 게 있겠지 했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난 셈이다. 대한민국에는 청계천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실력 있는 건축가들이 이토록 없는 것인지, 아니면 실력 있는 건축가들과 사업팀과는 영영 청계천 프로젝트로 인연을 맺을 수 없었던 것인지. 5.8㎞나 되는 길고 긴 청계천의 시설물들이 들어서는데 어찌하여 근사한 구조물하나 볼 수가 없는 것일까? 과연 누가 이 엄청난 일들을 해 낸 것일까? 정말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은 빗나간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청계천 사업과 무관하지 않으며 위치 또한 고도 서울 내부의 일이니 청계천 주변을 비롯한 재개발 관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강북의 재개발 이유를 서울시 당국에서는 강남의 땅값 상승과 관련하여 남북의 균형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청계천 복원사업도 어찌 보면 그러한 큰 사고의 틀 속에 사업의 당위성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아도 틀리 지 않을 것이다. 청계천 주변의 재개발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재개발의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쉽게 보고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궁’자나 들어가야 비로소 문화유산으로 취급해 온 게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었는데 그렇다면 지금 당장 고궁의 경내에 들어가 보라. 정말로 문화유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고궁 영역 내에서 다른 방해요소가 없게 보존이 잘 되어있는가? 영역 내에 서서 사방을 보면 영역 주변의 고층빌딩이 즐비하여 문화유산 고유의 참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니 그럼, 현대도시가 그렇지, 땅값이 얼만데 높은 집을 짓지 말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가까운 나라 중국을 보더라도 좋은 예는 얼마든지 있다.
중국의 동부는 삭막한 평원 때문에 발달한 중국인들의 원림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중에서도 원림에서 나타나는 그 들의 문화유산 보존정신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우선적 과제로 꼽힌다고 본다.. 만평 안팎의 개인 소유였던 원림은 일단 그 영역 안에 들어가면 그 원림의 담 밖으로는 하늘이외에는 거짓말같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원림 영역 속에서는 원림내부의 구성요소 만으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되어있고 하늘이외에 분위기에 방해가 되는 그 어떤 것도 이 원림영역 밖으로 세워지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 뿐이 아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원림으로 꼽히는 쑤조우(蘇州)의 15,000평 규모의 졸정원(拙政園)를 보면 이 원림이 차경(借景)으로 사용하고 있는 8㎞ 밖의 북사탑(北寺塔)이 혹시나 도시 내의 다른 건축물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될까 우려하여 이 원림과 탑 사이에는 졸정원의 담 높이 보다 높은 것은 어떤 시설물도 신축을 금지 시켜왔다. 행정관서와 학자들이 이 북사탑이 졸정원의 차경인 점을 중시하여 그 중간영역에 시선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설치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를 해 왔던 것이다. 중국건축사를 연구하는 중국의 한 교수는 졸정원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졸정원 담 밖으로 약간 보이는 옆집의 벽체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그 벽체가 하나 보이는 것이 자기네들의 실수라며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창피해 하는 모습을 볼 때 청계천 주변의 재개발을 유도하는 서울시도 우리고궁과 종묘의 영역의 재개발관계자들도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청계천과 주변의 개발 문제를 문화유산의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좀 더 이야기해 본다면, 재개발을 시행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를 추진하는 모든 사람들이 도시를 이루고 있는 요소 하나하나에 대한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그저 한국식 기와를 엊고 목구조 건축형식을 취해야 문화유산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다니는 길과 매일 만나는 건축물 과 구조물 그리고 환경의 요소로 빼놓을 수 없는 나무에 이르기 까지 모두가 유산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는지 보라. 유럽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많은 도시들은 대개 도시구조가 이제 많이 늙어 있다. 이렇게 되면 도시전체가 재개발을 해야 하고 새로운 건축물도 길도 만들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도시재개발을 해야 하는 당위가 생기면 재개발의 계획을 세우 기 앞서 도시개발 관련자들은 기존에 있었던 도시의 모든 구성요소들에 대해서 그 중요성을 들추어내고 하나하나 의미를 파악한다. 그리하여 도시를 이루고 있는 모든 컨텐츠들- 길 그리고 이 길과 연관된 도시의 역사와 기억들을 묵살해 버리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하는 선상에서 계획을 진행한다. 그리하여 개발하기 전에 그 동네가 갖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그 이후에도 느낄 수 있게 되도록 그 현장을 보존하려 노력한다. 또한 그곳을 왕래하던 사람이 개발 후에 그 곳을 찾아가도 여기저기서 보이는 낮 익은 흔적으로 말미암아 낮 설음을 덜 느끼게 되고 추억의 장소를 찾아낼 수도 있게 된다. 다른 블록에서 부터 흘러들어온 길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그대고 이어져 또 다른 블록으로 이어져 나아가고, 옛 부터 있었던 지형지물들이 그 자리에서 말없이 역사를 이야기해주며 문화유산 적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서울의 여기저기서 이루어지고 있는 개발을 들여다보라. 예전에 있던 골목이며 나무며 개천이며 온데간데없어지고 옆 동네에서부터 연결되던 수백 년 이어지던 길도 끊겨 버려 역사의 흔적을 알 수가 없고 역사를 유추해서 알 수 있던 사실들도 모두사라지게 된다. 동네 전체가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 완전히 갈아 없애고 새로운 건물과 환경으로 바뀌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종로에 있었던 많은 역사적 골목길들은 1970-80년대 재개발이란 미명아래 이미 없어진지 오래지만 종로를 따라 흐르던 피맛 길이며 종묘 앞의 예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옥과 귀금속을 팔아오던 옥방 골 내부의 길같이 역사의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골목길들도 이제 모두 없어질 판이다. 이제 서울은 역사와 무관한 도시로 탈바꿈 될 처지에 놓여있다. 청계천 주변 재개발 설계 안들을 들여다보라 어디에서 우리역사도시 서울의 맛을 살리는 내용이 읽혀지는 가 그저 이 안 들에서는 600년 고도를 생각하는 고뇌는 엇볼 수 없이 건축가들의 피상적인 디자인 역량만 화려해 보인다.
청계천 관련한 많은 사업들이 여기저기 벌어지고 있고 또 마무리되고 있지만 이 사업과 관련한 모든 이들은 그나마 서울에 조금 남아있던 역사 유산에 손실을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다시 한 번 심사숙고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새로움을 후손에게 넘겨주는 일보다 역사를 품고 있는 묵은 유산을 후손에게 잘 보존하여 넘겨주는 일이 더 가치 있는 행위이고 문화적 행위가 아닐까? 새로움을 넘겨주고 싶다면 그 새로움이 이 시대의 사고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이 시대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멧세지가 있는 컨텐츠이어야 하지 않을까?
방철린記 (건축가지 200508컬럼게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