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훈: 도시에 들어서는 다가구주택의 문제로 한정시키지 않고 좋은 도시는 대부분 좋은 건축이 채워지므로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의 도시들이 불량 또는 권할만 하지 않은 상태의 자본논리로만 채워지는 집들이 무수합니다. 그래서 방 소장님의 몇 년동안의 비슷한 프로그램들, 다가구주택들의 지니는 건강함 또는 작업의 성취도를 일단 긍정적으로 보고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대화를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맨 처음 주택설계를 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방철린: 주택설계는 건축에 입문하고 3년이 됐을 때 친구의 의뢰로 청주에 지은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이후 주택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고 다루어보고 싶었지만 여건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공간연구소 시절, 공간연구소 사옥을 마치고 주택을 다루는 기회가 생겼었습니다만 도중에 중단 되어버리고 말았고, 정림건축에서는 대형 프로젝트를 13년간 다루다보니 주택같이 작은 프로젝트는 내 차지가 되질 못했어요. 그래서 늘 작은 프로젝트, 특히 주택건축에 대한 욕구같은 것이 마음 구석에 있었는데 인·토건축을 차리고 나서야 기회가 온것이죠. 그런데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늘 조건이 여의치 않아 중단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연남동 스탭이 오랜만에 실현화 된 것입니다. 15년만의 일일 것입니다.
이일훈: 그러면 20년 전에 한 청주주택을 최근에 가 본적이 있습니까? 지금 존재하고 있나요?
방철린 : 친구가 그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오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일훈: 15년 정도 주택 프로젝트를 접하지 않다가 설계를 할 때 제일 먼저 느낀 괴리는 무엇이었습니까? 건축가로서 내용상의 괴리,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방철린: 공간 연구소 시절은 중규모이하의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어서 작은 프로젝트 속에서 공간 나누기라든가 질서, 그리고 공간의 흐름 만들기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대형 프로젝트를 수년간 다루면서 스케일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은 변한 것이 없지만 대부분 공공 건축물의 공간구성 속에서 찾으려던 공간의 의미가 식구들이 사용하는 사사로운 공간으로 옮겨지게 되다보니 좀 더 가족적이어야 된다는 것과 이웃을 느끼게 해야한다는 이중성에 대해 생각해야 함이 조금은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사용인수의 변화요소가 공간감을 조정하는데 약간의 혼란을 야기 시켰으나 곧 안정되었습니다.
이일훈: 지오폰티는 집을 하나의 꿈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건축가들 대부분이 건축가적 명성을 얻는데 많이 기여한 것이 주택작업일 것입니다. 그런데 집이 꿈인 것은 정말 꿈이고 실제로는 자본의 논리가 집을 좌지우지 합니다. 프로그램도 철저히 자본의 종속적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다가구주택입니다. 방 소장님의 프로젝트를 포함시켜도 좋고 안시켜도 좋습니다. 다가구주택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 분명히 그것들을 분석하였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방철린: 방금 말씀하셨다시피 다가구주택의 문제점은 경제원리가 상당히 크게 작용합니다. 다가구주택을 짓는 건축주들이 보통은 중하류급에 속해 있어 일생동안 번 돈으로 집을 짓는 수준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상당히 고귀한 돈이 집을 위해 투자되는 것입니다. 이 돈은 재벌이 자기 집을 호화롭게 짓는데 들어가는 많은 돈보다 물리적으로는 작은 돈이지만 그들에게는 엄청나게 더 큰 돈같이 여겨지리라 봅니다. 그런 걸 건축가가 환경을 위하여 규모를 줄여라 늘여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원리에 맞아야만 집을 지을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지요. 또 한가지 문제점은 그런 분들이 애석하게도 건축에 대해서 이해를 잘 못해서 건축가를 찾지 않고 집장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사 현장사람 또는 자기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업자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결코 성공적이지 못한 집을 짓게 만드는 원인을 스스로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장사는 경제원리에 의해서 우선 이익을 추구하는 건축주의 셈본적 결과에만 초점을 맞출 뿐 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눈에 보이는 장식적인 요소로 사람을 현혹해서 집에 들어가게는 하지만 실제 들어가서 사는 사람의 삶을 정신적으로 윤택하게 해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 뻔한 결과이고, 그래서 다가구 주택의 입주자들이 결코 정신적으로 좋은 생활을 못하는 것이 문제로 대두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문제가 많은 다가구주택에 사는 인구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이일훈: 그러면 환경적인 측면, 자본의 논리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렇다치고 도시 또는 환경에서의 문제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방철린: 일반적으로 다가구주택을 들여다보면 이 곳의 주거환경이 취약함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주택의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도로에서 방 특히 반지하 세대의 경우 채광과 통풍과 프라이버시 문제에 있어서 지극히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본권에 대한 해결을 제시해 주는 것이 우선 건축가가 기본적으로 해야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일훈: 다음으로 한 집에 여러 세대가 살게 되니까 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도시 주거에서는 늘 이 부분이 문제 아닙니까? 처음에 작업을 하신「스텝(STEP)」시리즈는 공동성을 추구한다기보다는 각 유니트들의 독립된 어프로치나 프라이버시에 관심이 몰두해 있다가 하늘마당 시리즈에 와서는 내부로 집약화되는 경향으로 바뀝니다. 그것은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면 실증을 해보니까 좀 문제점이 많아서 그랬습니까?
방철린: 말씀하신 것 같이「스텝(STEP)」시리즈가 공동성을 외면한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스텝Ⅰ」을 설계할 때의 관심은 골목이되 실제 골목역할을 못하는 길, 골목이 있지만 차들로 그 골목을 다 빼앗긴 골목을 집안에 끌어들여 집 안에서 각 세대로 들어가는 사람이 그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골목 속에 생활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폐쇄적이지 않고 공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것이 주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동체적 의식을 강조시키고자 함이지요. 계단을 삐딱하게 놓으면 벽과 계단 사이에 공간이 생기는데 지하에서 위까지 뚫리는 공간이 생기고 그 사이로 사람의 시선이 오가면서 여럿이 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옥탑층에 세탁실을 두어 이웃끼리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프로치도 다양하게 각각으로 하지만 말씀하신 것보다 공동에도 신경을 많이 썼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왜냐하면 방 하나하나가 벌집 같은 분위기의 원룸이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면 남을 인식 못하게 되는 생활이 되어버리니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생활을 위한 의도로 계단과 복도와 세탁실 등 공동시설을 배치 했지요. 그러다보니까 좀 외향적이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너무 길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냐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도로에서부터의 프라이버시를 어느정도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고 외부와의 차단장치나 경계요소 등이 등장하게 된것입니다.
이일훈: 공동부분, 계단이니 복도니 하는 부분이 초기의 작업에서는 상당히 외부 지향적으로 열려있다가 요즘의 작업은 내부지향적으로 보입니다. 열려져 있는 것이 내부에서 주로 여는 방식으로 약간의 변화를 보이는데 그것은 입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
방철린: 집을 짓게 되면 아무래도 집을 짓고 난 후에도 여러차례 그 집을 왔다갔다하면서 입주자들의 행동거지들 보고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이 공간에 대한 실효성을 검증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 중에 그들이 공간적 위계가 프라이버시쪽으로 조금 더 다가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고, 완전히 개방되는 것보다는 약간의 프라이버시를 갖게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일훈: 혹시 입주자들의 정서나 집주인의 정서가 초기의 개방적인 부분을 거부하거나 못마땅하게 느낀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방철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건축주도 입주자들도 전혀 거부반응이 없었습니다. 단지「스텝」을 지어놓고 그것이 완전히 개방된 집이기 때문에 밤에 학생들이 계단 뒤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담배꽁초 청소를 해야 된다는 얘기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폐쇄적이어야 된다는 이유가 타당성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일훈: 입주자들의 사용경험을 분석하고 반영한 셈이군요. 현대건축이 비단 주거용도의 건축물 뿐만 아니라 도시에 들어서는 건축들이 많은 용적과 건축면적의 증가가 도시건축에서 필연적인데 그러다 보니까 자연 또는 건축의 내재적인 공간 활용의 가능성을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는 부분이 하늘과 만나는 옥상부분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관찰이 옥상의 활용도를 높이는 건축의 가능성을 한 스텝 한 스텝 올라가다가 결국 건축가 방철린이 하늘을 만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런데 방 소장님께서 갖고 있는 하늘에 갖는 관심은 어떤 부분이고 또 어떻게 하늘마당에 접근이 됐는지 그 동기라고 할까 아니면 아이디어를 얻게 된 계기는 어떤 것입니까?
방철린: 우리 인간은 삶을 영위하면서 오감을 통해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태어납니다. 그 중에서도 세상을 보고 숨을 쉬는 권리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관련이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다보니까 우리 인간은 이 기본적 권리와 관계가 있는 하늘·태양·신선한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가는 것 같아요. 조명이나 공기정화장치를 통한 현대생활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무위(無爲)의 개념을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계화 즉 인위(人爲)적으로 만들어진 생활환경 속에서 피폐되어가는 인간의 정서, 잊혀져가는 기본권리를 되찾아 주기위해서 인간이 본래부터 갖고 있던 하늘을 되찾아 주자는 개념에서의 출발이라 볼수있지요. 물리적으로 지상은 자동차에게 다 빼앗겨버리고 부지의 3면은 도시건축으로 빽빽히 들어차 있다보니 건축 속에서 자연으로서의 상징인 하늘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건축이 하늘과 접한 최상부라 보여지기 때문이며, 대부분 경제 논리에서도 이 곳은 아직 챙겨지지 않고 있으니 이 곳에 관심을 갖고 건축적으로 성숙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두 번째 생각은 우리 전통건축에 있는 마당의 개념의 도입입니다. 마당은 벽체와 바닥이 있고 하늘로 뚫려져 있는 아주 한정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으로 인간에게 제공되는 것들은 상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정원과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마당의 개념을 현대건축과 접목시키자는 생각입니다. 처음에 건축주의 반대에 부딪칠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하늘마당Ⅰ」이 완성되어 이사를 하고 얼마 안되어 눈이 왔는데 눈이 오는 바로 옆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너무 기분 좋았다는 건축주의 소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일훈: 소위 건축작품하면 대부분 형태를 많이 얘기합니다. 실제로 하늘마당에 쌓인 눈을 보고 집주인이 좋아한다는 얘기는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생활의 실제적인 풍요성을 높이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집주인 뿐만 아니라 입주자들도 그런 삶의 풍요를 누렸으면 하는 것입니다. 다가구가 실제로 사는 사람수로 보면 세를 들어 사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하늘마당도 주인세대만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구경하는 건축가 입장에서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흡연공간이라든가 아이들의 놀이공간, 혹은 이웃과의 대화공간 등 작은 숨구멍같은 공간이 최소한 한층에 하나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방철린: 좋은 지적입니다.「스텝(STEP)」에서는 그 점에 대해 신경을 썼습니다. 모든 세대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하늘을 누리고 지하까지 모두 누리는, 선큰가든부터 지상까지 모두 통하게… 장소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활하려면 어쩔 수 없이 그 곳에 오게 만들어서 오히려 그것을 억지로 누리게 하는 것까지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하늘마당」을 하면서 3층 이상에서는 주인이 살아야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건축주는 다가구주택을 세워 세를 받아 생활비로 쓰는 것은 도움이 되겠지만, 자기 땅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지상으로 올라간다는 생각 때문에 못내 아쉬워 했습니다. 그래서 지상에서나마 그런 장치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3층에 마당을, 그리고 1층에도 작은 마당을 만들어 장독대로 이용할 수도 있도록 하고 건축최상부인 옥탑층은 건축주의 귀속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주인이 개인주택에서 살지 않는 아쉬움을 달래주려고 했습니다. 반면에 다가구주택에 사는 주거인에 대해서는 자연환경을 어떻게 하면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하마당을 만들어서 지하사람들도 마당을 밟고 햇빛도 즐길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는데, 중간층에서는 그런 여유가 나질 않아 좀 아쉽게 남는 부분입 니다. 그래서「하늘마당Ⅱ」에서는 계단 옆에 조그마한 발코니를 만들었는데 그 곳에 재털이가 놓여있는 것을 보니 약간 안심이 됩니다만「하늘마당」을 전체가 누리지 못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일훈: 특히 다가구주택은 입주자들의 패턴이 바뀔 가능성이 굉장히 많습니다. 방 소장님이 작업하신 것을 보면 내부의 가변성, 이 것이 전부 콘크리트벽식 구조로 되어 있어 대응력이 약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방철린: 「스텝(STEP)」을 설계했을 때와의 방의 면적과 하늘마당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스텝(STEP)」인 경우는 원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유니트가 크지 않아서 나누고 장치를 하는 것은 플렉시빌리티와 연관지어서 생각할 때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학생이 들어올 수도 샐러리맨이 들어올 수 있다는 - 누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튜디오로도 쓸 수도 있고 거실과 침실을 나누어서 쓰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플렉시빌리티 있는 평면구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내버려두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하늘마당Ⅰ,Ⅱ」의 경우는 대부분 면적이「스텝」보다는 훨씬 커서 막아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일훈: 조금 더 연구해서 그 면적에서도 좀 더 효율적으로 나누어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 봤으면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는 60년대에서는 주택공급률을 증가시킨 공로가 집장사에게 대단히 있다고 생각하는 건축가입니다. 그리고 공급의 질적인 문제에서는 비판을 받겠지만 양적인 면에서는 공헌한 바가 큽니다. 실제로 서민들이 집을 하나 마련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많은 재화가치가 모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건축가가 작업을 한 결과들이 집장사들에게 많이 보급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급을 시키려면 권할 만한 규범으로 보이는 것이 있어야 되고, 이런 것들이 상당히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방 소장님이 생각하시는 다가구주택의 권할 만한 규범이라면 어떤 것입니까?
방철린: 다가구 주택은 평범한 사람들이 한 집 안에 살도록 지어지는 집이므로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주거환경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돼지가 물에 빠진 날'이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주 평범하고 지리한 삶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촬영의 기교를 전혀 가하지 않고 사실표현만 중심으로 만든 좋은영화라 보여집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보여주면서 평범한 삶 속에서의 디테일을 결코 빠뜨리지 않고 보여주려는 노력도 그러하지만 지루해 보일 스토리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지루함이 없이 전개되어가는 이유가 생활의 우연성과 의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홍상수 감독의 탁월한 기법에 기인한다고 보여집니다. 우리의 다가구 주택건축도 그 영화와 공통점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기교가 넘치고 인위적 냄새로 가득 차 있는 집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왜곡없이 담을 수 있는 집, 그러면서도 생활 속의 근본적 생활조건을 빠뜨리지 않고 담을 수 있는 집, 그런 집이면 다가구주택으로서의 규범 속에 속할 수 있는 집이라 생각합니다. 집마다 대지의 조건이 모두 다르고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그 정신만 같다면 늘 다른 방법으로 규범의 표현이 이루어지겠지요.「하늘마당Ⅰ과 Ⅱ하늘마당 II」가 그렇습니다. 기본개념은 같으나 대지의 조건이 다르므로 생각을 담는 피상적인 공간 구조가 전혀 다릅니다. 권할만한 규범이라면 그것을 이미 지어놓은 평면의 형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일훈: 자연조건이든 인위환경이든 잠재력을 공유하도록 유도해야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방철린: 다가구주택 이용자는 보통 서민들인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 당하는 폐해는 최소한 없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건축가가 그런 부분을 연구하고 구체화해 봄으로써 규범적 요소를 찾아보는 것이 건축가가 감당해야 할 소명이라 보여집니다.
이일훈: 그동안 작업한 것을 보면 재료가 몇가지로 한정되는 듯 합니다. 내부는 평이한 재료로 세련되게 구사하는 것을 제가 익히 확인한 바인데, 외부의 마감재료를 보면 구조재료로 주고 콘크리트를 쓰고 외벽단열 시스템 또는 약간의 철물들이 쓰입니다. 콘크리트를 주로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방철린: 콘크리트를 쓰는 것은 다른 이유보다도 콘크리트가 인간이 만든 인공재료중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컬러라든지 텍스쳐 등이 자연적일 수 있다라는 장점을 갖고 있으면서 또 그 재료가 강력한 구조재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건축의 진실성이라고 할까 기본적으로 거짓없이 건축을 표현하는데 크게 공헌할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서 노출콘크리트가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고 앞으로도 사용하려고 하는데 단지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후조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보니까 온도차가 심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단열재의 사용이기 때문에 하나의 방법으로 외부단열재를 사용하고 그것 자체가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집 만들기가 아닌가하여 그대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저는 사실 조형이나 재료의 쓰임새보다는 집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공간만들기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재료가 거짓없는 재료라면 어떤 재료를 써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고 진실된 표현을 하는데 적합한 재료라면 다른 재료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일훈: 형태에 표현된 디자인의 방법을 보면 재료의 솔직성을 드러내는 것은 사실인 것 같은데 제 생각은 재료가 솔직하게 드러나 보이게 하는 것은 재료의 성질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건축가가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고 그것이 기술성의 진보라든가 하는 부분으로 텍토닉 - 만드는 방법이라든가 또는 테크놀로지의 상향적 의지 - 을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방 소장님의 하늘마당을 보면 재료가 철저히 장식으로 쓰이는 것이 아닌가 약간의 의구심이 듭니다. 일례를 들면 철골이 이유도 없이 들어가 있다든지….
방철린: 재료가 철저히 장식으로 쓰이는 것은 나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설계시부터 구조재로 디자인되어 쓰인 곳이 대부분입니다만「하늘마당Ⅰ」에서 원래 콘크리트로 설계되었던 부분인데 시공의 성공률을 감안하여 철골로 시공된 부분이 있지요. 그래서 그 부분이 장식성으로 쓰여진 것 같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구조재의 장식적인 사용에 대해서는 평소에 늘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부분입니다.
이일훈: 젊은 건축가 김홍일은 하늘과 만나는 옥상을 제 5파사드라고 표현했습니다.
방철린: 저도 공감합니다. 마침 화두로 던지고 있는 것이 하늘이니까 제 5파시드와 하늘을 연결해서 보면 최상층의 장치들이 적극적으로 동원되고 있지 않은 아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 하였지만 최상층부는 건축이 하늘과 만나는 곳으로 사실 상당히 매력이 있는 곳인데 이 곳은 늘 버려지기가 일쑤이고 별로 챙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지의 바닥은 좁고 옆은 벽으로 꼭 막힌 도시공간에서 하늘과 만나는 이 곳은 설계 때마다 늘 버리기 아까운 부분이라 생각하지요. 그래서 천창도 만들고「하늘마당Ⅰ」마루를 깔아「하늘마당ⅡII」밤하늘의 별을 보며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잘 공개 안하는 작품이지만 역삼동의 한 다가구 주택에서는 퍼골라도 만들어보고 합니다만 늘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왕에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집중적으로 연구를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일훈:「하늘마당 II」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공동게시판이라든지 집을 아주 깨끗하게 관리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소한 부분이지만 애초부터 설계의도가 있었다는 점은 정말 유쾌하게 생각했습니다. 집주인 혼자 관리하는 것보다 입주자들 모두가 깨끗하게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이 공동체의식을 드러내는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방 소장님께서 공동체에 대한 어떤 사는 방식에 대해서 건축가로서 제안하고 싶은 방법이 있습니까? 굳이 다가구주택이 아니더라도 입주자들이 공동체로서 사는 방식에 대해 건축가로서의 생각….
이일훈: 기본적으로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도 그렇거니와 말로써 의사전달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동물이라 하더라도 현대사회에서는 이웃과 단절된 생활을 하기 일쑤입니다. 대화를 통해서 비로소 단절된 벽을 허물고 사회적 동물로서의 가치를 발휘한다고 봅니다.「하늘마당이나 Ⅱ하늘마당II」에서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는데, 우선 건축주가 옆집보다 좋은 집을 갖고 있다는 긍지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집을 잘 보전하려는 생각을 갖고 입주자들에게도 제안을 하는 등 노력을 했기 때문에 그런 관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이 있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공동체 환경은 잘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건축가가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요소를 제공해 주는 배려가 필요하겠지요.
이일훈: 저는 그 대목에서 하나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게시판까지 섬세하게 디자인하는 건축가가 형태에 와서 왜 빗물이 튀는 것을 유리로 막고 다른 자동차가 주차하는 것을 체인을 설치하셨는지? 결국은 건축가가 잠재적 버릇인 형태의지가 너무 강한 것이 아닙니까?
방철린: 그것은 형태의지가 아닙니다. 벽체의 빗물턱이 높고 낮고가 형태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지하층으로 빗물이 튀어들어오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반지하 세대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빛과 공기를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관심의 결과 벽체의 빗물턱을 조금이라도 더 낮추자는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일훈: 처음부터 유리로 하지 그러셨어요.
방철린: 다가구 주택에서 유리가 메인터넌스에 별로 좋지 않습니다. 알루미늄을 쓴 것도 녹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메인터넌스도 생각을 해야되고 빛이 많이 들어오게도 해야하고 외부공기도 많이 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의 결과이지요. 지난 여름 유난히도 비가 오랫동안 오는 바람에 입주자의 불편호소에 건축주가 막는 것을 제안했고 그래서 이 곳을 유리로 뒤에 시공한 것입니다. 주차장 체인문제는 시공자에게만 얘기한 것 같습니다.
이일훈 : 모든 것이 다 건축이다라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세상에는 건축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건축가들이 많이 합니다. 방 소장님의 작업은 내적 성취도면에서 충분이 감동적입니다. 집장사들보다도 약 10퍼센트 정도 상향된 공사비로 굉장히 노력했고, 아마 다가구주택의 디자인 비용을 아무리 비싸게 받았다고 해도 적자일 것입니다. 그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다른 프로젝트에 스탭들을 투입시킬 수가 없으니까 그 노력에는 굉장한 찬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건축 자체에 갖는 관심은 굉장히 성취된 반면에 그 집의 앞과 뒤 즉 주변과의 관계성은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변의 맥락이 특별히 반영된 것 같지도 않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려는 흔적도 안 보입니다. 그 부분이 아쉽습니다. 컨텍스트를 무시하겠다든지 하는 생각이 있습니까?
방철린: 강남에 있는 주거지라는 것이 대부분이 그렇지만 그 부분이 막혔느냐 뚫렸느냐는 정도의 개념으로만 파악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컨텍스트로 받아들이기에 주변이 너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주변과 어울리게 할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가질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애석한 부분이지요.
이일훈: 작업량으로 봐서 스탭들이 현장을 매시간 쫓아다닐 수가 없었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현장과의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현장관리에 대해서 갖고 계신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방철린: 다른 것보다도 집 짓는 사람이 결국은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여야 된다고 봅니다. 돈을 벌기보다도 시공자 스스로 시공을 잘 함으로써 좋은 집을 만들겠다는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집을 짓게 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설계자의 관심입니다. 매일 매일 시공상황을 체크하고 시공상태를 확인하며 모든 마감재를 스스로 골라서 전체적으로 통일감 속에 조화로운 마감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신경을 떼지 않는 것 - 이것이 두 번째 조건 아닙니까?
이일훈: 그 동안 대화를 통해서 방 소장님이 줄기차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건강한 건축가의 의식이 매우 유쾌합니다. 그리고 사회의 많은 잠재적 고객에게도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몰두할 다른 화두를 찾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하늘마당의 연속적 발전도 좋고 제 3의 관심사여도 좋고….
방철린: 아까 잠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무위(無爲)에 대한 관심을 금방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현대인의 생활이 너무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인간성의 회복에 대한 생각이 대두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도 인위적환경보다 무위적환경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우리 전통건축은 다분히 무위적 개념으로 지어져왔다고 보거든요. 자연을 보고 집을 안치는 관점에서부터 집안의 모든 공간구조와 디테일이 그렇습니다. 또 한가지는 건축의 최상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아무래도 이 쪽에 관심을 계속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 몇 개의 다가구주택 프로젝트를 하면서 늘 불만족스럽게 끝나버린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깊숙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 부분을 매력으로 포인트로 바꾸어 버릴 수 있는 것이 분명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일훈: 스스로의 작업이 유형화되어서 또는 권할 만한 상태로 받아들여져서 많은 건축가들이 받아들이고 동참하기를 바라시겠죠? 극단적인 예로 집장사들이 건축가 방철린에게 설계는 안 맡기고 지금 지어진 것을 그대로 갖다가 비슷하게 따라해서 좋게 만든다면 건축가로서 어떤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요?
방철린: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저는 굉장히 기쁩니다. 그것이 비단 제 생각을 따라준다는 사실 때문에 기쁘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마음가짐이 인간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바람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오히려 생각을 좀 더 깊게 해서 지금까지 제가 한 작업을 좀 더 발전적으로 이어받아 더 나은 환경을 만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이일훈: IMF 때문에 무진장 힘드실텐데 작은 작업에 젼력하는 것을 볼 때 반갑고, 새해 덕담 한마디 드리면서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무진장 큰 프로젝트에서 이런 개념으로 공동주택들이 속속 디자인됐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인을 방 소장님이 하면 더욱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