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통영에 출장을 다녀왔다. 오묘하게 생긴 땅 통영은 어딜 가나 갑자기 나타나는 바다와 맞닥뜨린다. 육지려니 하고 가보면 바다고 또 바다다. 그 뿐인가 바다 곳곳에 크고 작은 섬이 위치 하고 있어 장소를 불문하고 그림 같은 모습으로 사람의 시선을 빼앗고 마음을 빼앗는 환상의 도시이다. 박경리(소설), 유치환(시), 윤이상(작곡), 유치진(극작가)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어떻게 이곳에서 탄생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내 받아 간 곳은 바다 건너 한산도가 길게 펼쳐 보이는 해변의 크지 않은 산. 송림이 울창한 곳에서 앞을 내다보니 그림 같은 배들이 풍경화를 만든다. 전망의 수려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곳이 이순신 장군이 첫 번째 해전에서 왜군을 물리친 한산도대첩 바로 그 장소다. 의미 큰 역사적 장소에 서 있다는 게 설레고 짜릿하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풍전등화였던 조선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든 나폴레옹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영국의 넬슨, 웰링턴 장군을 영웅 대접하는 영국인들조차 조선의 이순신이 더욱 위대한 영웅이라 보는 시각이 있을 정도다. 요즈음 같이 어지러운 정국이 이대로 가단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조차 싫다는 지금 이순신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인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파도 마저 없이 잔잔한 남해 바다는 평화롭기만 하다.
고기잡이 배의 출항으로 매우 분주한 대명포구, 그리고 19세기후반 신 문화 격변기에 바다 건너 마주한 강화도의 덕진진과 함께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감당했던 덕포진. 숨어있는 역사의 장소 속을 더듬고 다니니 미(美)의 발견 또한 즐겁다. 마침 북쪽으로의 먼 여행을 앞둔 기러기 도래지도 있어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