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척 더웠던 날 종로3가 부근에서 볼일을 끝내고 혼자서 종묘 순라길을 비롯한 돈화문 부근 골목길들을 종로에 이르기까지 돌아 보았다.
젊었을 적 원서동 공간시절 주로 활동무대가 이 지역이었기도 하였거니와 대학교 강의시 학생들과 설계과제로 돈화문과 종묘를 중심으로 하는 이 지역은 삼청동, 서촌지역 등과 함께 재정비를 위한 프로젝을 수행하면서 골목 골목을 많이 다녀보던 지역이라 이후로도 골목길에 다니며 변화상황을 보는게 습관이 되었다. 예전에 비해 국민소득도 많아졌지만 문화수준을 갖춘 역사 도시로서의 현대화의 변천 모습이 궁금해서다.
오랜 세월동안 늘 그래왔듯 현대화에 따른 이 지역 도심의 도시구조 변화와 인문적 변화는 여전히 미미함을 읽을 수 있었다. 돈화문 앞쪽 진입로 양측에 들어선 두 개의 전통양식의 문화시설 외에 동네의 변화는 몇몇 대지를 제외하고는 예전의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제일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돈화문 진입로 양측 건축물의 돈화문과의 부조화이다. 돈화문이 지어졌을 당시였다면 돈화문이 크기로 보나 중요도로 보나 진입로 양쪽의 집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중심성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근대화이후로 진입로 양옆의 건축물들이 들어서면서 돈화문의 존재성은 차츰 감소 상태가 이어졌고 그 상태로 백여년이 흘렀건만 이 부분은 누구도 손을 대지 않고 세월이 흘어왔다.
돈화문이 창덕궁 주출입문으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고 존재성이 좀더 필요하다면 주변 건축물들의 색체나 형태는 돈화문에 시각적 집중력을 높일 수 있도록 조절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돈화문 따로 가로 건축물 따로가 아닌 조화스런 모습이 강조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이는 지구단위계획으로 충분히 조정 가능하리라 본다. 돈화문의 중심성도 높이고 가로 건축물로서의 존재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더불어 이지역의 골목 안팎의 건축물에 있어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적용될 형태나 이에 사용하는 재료와 색체 그리고 지붕의 기와 등에 대해서도 세심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또한 비원과 종묘의 연결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터널의 입구도 이야기를 하고싶다. 돈화문과 창덕궁 종묘 등의 도시 조직과의 공존하는 터널 입구의 세심한 모습이 아쉽다.. 입구의 형태는 물론이고 돌의 쌓기 방법조차 몹시 난해하다.
그 외에도 당연히 시행하고 있겠지만 간판 가로등 사인보드 등 스트리트 퍼니쳐의 다자인이 개성있는 서울만의 디자인 그리고 종로지역 만의 독특한 디자인인지 한번은 짚고 넘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소소해 보이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도시의 격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즈음에 제천이 고향인 고교 동기의 손수 운전과 안내로 일박 이일- 제천과 담양지역을 여행하였다.
단양팔경의 하나라는 옥순봉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비봉산도 오르고, 청풍문화재 단지, 스카이 워크, 단양강 잔도, 도담삼봉, 고수동굴 등을 섭렵하였다.
예전에 등산을 목적으로 금수산, 제비봉 그리고 정방사 등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고, 충주나 조령지역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또는 이 지역을 지나가면서 주마간산 식으로 보곤 했었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시간 내어 속살까지 자세히 보긴 처음이었는데 매력이 넘치는 소중한 자연 유산 들의 진 면모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옥순봉과 옥순봉에 올라서 보는 구담봉의 자태가 일품이었으며 해질녘 .비봉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산들, 특히 소백산과 월악산 그리고 그 주변 산들의 중첩된 능선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루어 매우 감동적이었다.
돌아 오는 길에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제천 의림지를 보고 늦은 오후 안개 로 매력 넘치는 박달재를 넘어 귀경하였는데 친구 덕에 잊을 수 없는 멋진 여행 경험을 추억으로 남기게 되었다.
한편 이렇게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소의 격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문화 컨텐츠가 너무 없어 문화적 삭막함이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부서와 건축부서 그리고 문화계가 활약을 좀 해야 하는데 최근 다녀본 지방관청에 가 보면 아직 문화입히기에 관심이 없는게 안타깝다. 오히려 환경단체에나 끌려다니며 아직 20세기 담도 못 넘고 있다는 인상이다.
백령도 여행 중 11년전 북한에 의해 피격된 천안함의 46용사 위령탑에 참배 하였다. 그런데 7월 21일 46용사중 한명인 정종율 상사(사진 오른쪽상단에서 여섯번째)의 부인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달리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나이어린 외아들이 유자녀로 혼자 남아있는데 장례비용 등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유자녀의 계좌번호를 올린다.(예금주 정주한, 하나은행 873-910274-23107) 많은 분들의 도움을 기대하며...
지난주(20210714~16) 고교 동기들이랑 서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백령도와 대청도에 다녀왔다.
인천에서 제법 빠른 배로도 4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니 짧은 거리는 아니다. 서울에선 거짓과 선동과 바이러스가 뒤범벅이 된 악몽 속에서 산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그 곳은 아직 오염이 안 되어 모든 게 청정지역이다. 게다가 경치까지 좋다. 낙원이란 이런 건가 보다. 왜 이렇게 좋은 곳을 이제사 왔을까.
경기도 양평과 용문 사이에 원덕역이라 하는 전철역이 있다. 이 역에서 나와 동쪽을 보면 추읍산(趨邑山:582.6미터)이라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보인다. 일제강점기엔 주읍산(注邑山)으로 불리다 추읍산(趨邑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는 추읍산(趨揖山)으로 되어있었던 걸 볼 때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현대에 이르면서 이름과 의미가 바뀐 게 아쉬움을 갖게한다. 대동여지도에 쓰인 한자 ‘趨‘는 달아날 추이고, ’揖’은 읍할 읍으로 손과 함께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하는 인사의 예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산의 명칭에 추읍(趨揖)이란 단어가 사용되었을까? 추읍산 북쪽에는 이 지역에서 제일 높은 용문산(龍門山, 1,157미터)이 자리하고 있는데 원덕역 앞에서 보이는 추읍산은 북쪽의 용문산 쪽으로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추읍산의 명칭의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추읍산은 높은 산 용문산의 뒤를 쫓아 엎드려 인사의 예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전 봉건사회의 예의범절이 지명에 도입이 된 것이다. 지금의 한자 이름은 별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이라도 가급 적이면 추읍산(趨揖山)의 한자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 예전 이름의 의미를 되찾았으면 한다. 이런 게 문화 아니겠는가.
예전에 용문산도 백운봉도 그리고 추읍산도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좋아 몇 차례 등산하였지만, 지난 토요일에는 고교동기들과 이곳 추읍산 주변의 물소리길을 트래킹하였다. 이 길은 원덕역에서 출발하여 용문산역까지 7.5km, 추읍산을 감아도는 흑천이라는 내를 따라 난 길이다. 내를 보면서 따라 걷는 이 길의 분위기가 마음의 평안함을 가져다 준다. 냇물은 자갈자갈 소리를 내기도, 명경같이 수목을 반사 시키기도, 물새들의 놀이터 역할로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사람 손이 간 듯 안 간 듯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움에 부담이 없다. 쉬고 걸으며 들리던 물소리가 끝날 때 즈음 용문산 역이 가까이에 나타난다.
추읍산 주변 흑천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양평 물소리길(5코스)은 생태보호환경 이라는 면과 인공적 요소가 최소화 된 무위 환경이라는 면에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