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은 들으면 눈물이 나오고 숨이 멎듯이 좋은 건축도 소름이 끼치고 숨이 멎는 것을 경험한다.
전국어디를 가나 역사의 켜 속에서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만한 건축문화유산이 우리에게는 많이 있다. 특히 감동을 주는 건축물들은 몇 번이고 그 곳을 찾아가게 하며 그 때마다 느끼는 감정 또한 사뭇 다르다.
많은 문화유산순례의 경험 중에서도 나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던 것중에 하나로 이른 아침 안개 속에서 경험해보는 병산서원의 분위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수많은 세월- 인간의 역사를 머금은 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이 강에 발을 담그고 반영을 축 늘어 뜨린채 드리워진 병산, 강 전면으로 드리워진 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이 곳을 지키기라도 하듯 묵묵히 일렬로 늘어 선 나무들, 이 것이 손에 잡힐 듯 서원의 부지가 정면에 안고 있는 풍경이다. 이곳 부지 또한 적당한 경사와 배경으로서의 뒷산을 가지고 있어 이 모두가 한울안의 풍경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인 공간의 잉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이 서원의 주요 구성요소인 만대루와 강당으로서의 입교당 그리고 강학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적당한 간격과 크기와 그 놓인 높이 그리고 건축적요소와 지혜를 갖고 있음으로 해서 절묘한 풍경을 연출해 내고 있다.
병산서원 전면에 놓여있는 만대루에 앉았을 때 기둥사이로 펼쳐 보이는 경치도 그렇거니와 이 서원 중심에 있는 강당(立敎堂)의 중심에 앉아 만대루 쪽을 바라보는 풍경의 켜는 살짝 드리워진 안개와 함께 태고로부터 그렇게 있어 왔었던 것 같은 자연과 건축의 완벽한 일체감과 그 속에 있는 자기를 감지하게 되고 자기도 모를 짜릿한 충격으로 소름이 끼치고 코가 찡긋하며 눈가에 눈물을 감출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내가 이 곳을 가고 싶을땐 늘 밤에 찾는다. 칠흑같은 밤, 잘 닦여지지 않아 불편한 지루한 길이 오히려 다른 세상으로의 안내길 같아 좋고 이 병산서원 가까이서 밤새 친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다가 이른 아침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병산서원을 숨죽이고 찾아 명상에 잠기는 기분은 늘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특별히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른 아침 접해보는 이 병산서원의 경험은 예사와 다른 특별한 충격으로 다가오리라 생각하며 건축에 대한 영감마저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