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은 들으면 눈물이 나오고 숨이 멎듯이 좋은 건축도 소름이 끼치고 숨이 멎는 것을 경험한다.
전국어디를 가나 역사의 켜 속에서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만한 건축문화유산이 우리에게는 많이 있다. 특히 감동을 주는 건축물들은 몇 번이고 그 곳을 찾아가게 하며 그 때마다 느끼는 감정 또한 사뭇 다르다.
많은 문화유산순례의 경험 중에서도 나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던 것중에 하나로 이른 아침 안개 속에서 경험해보는 병산서원의 분위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수많은 세월- 인간의 역사를 머금은 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이 강에 발을 담그고 반영을 축 늘어 뜨린채 드리워진 병산, 강 전면으로 드리워진 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이 곳을 지키기라도 하듯 묵묵히 일렬로 늘어 선 나무들, 이 것이 손에 잡힐 듯 서원의 부지가 정면에 안고 있는 풍경이다. 이곳 부지 또한 적당한 경사와 배경으로서의 뒷산을 가지고 있어 이 모두가 한울안의 풍경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인 공간의 잉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이 서원의 주요 구성요소인 만대루와 강당으로서의 입교당 그리고 강학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적당한 간격과 크기와 그 놓인 높이 그리고 건축적요소와 지혜를 갖고 있음으로 해서 절묘한 풍경을 연출해 내고 있다.
병산서원 전면에 놓여있는 만대루에 앉았을 때 기둥사이로 펼쳐 보이는 경치도 그렇거니와 이 서원 중심에 있는 강당(立敎堂)의 중심에 앉아 만대루 쪽을 바라보는 풍경의 켜는 살짝 드리워진 안개와 함께 태고로부터 그렇게 있어 왔었던 것 같은 자연과 건축의 완벽한 일체감과 그 속에 있는 자기를 감지하게 되고 자기도 모를 짜릿한 충격으로 소름이 끼치고 코가 찡긋하며 눈가에 눈물을 감출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내가 이 곳을 가고 싶을땐 늘 밤에 찾는다. 칠흑같은 밤, 잘 닦여지지 않아 불편한 지루한 길이 오히려 다른 세상으로의 안내길 같아 좋고 이 병산서원 가까이서 밤새 친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다가 이른 아침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병산서원을 숨죽이고 찾아 명상에 잠기는 기분은 늘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특별히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른 아침 접해보는 이 병산서원의 경험은 예사와 다른 특별한 충격으로 다가오리라 생각하며 건축에 대한 영감마저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이 항공기는 안데스 산맥의 준령 상부를 지나고 있습니다. 탑승객 여러분들은 왼쪽 창 밖으로 안데스의 만년설을 보실 수 있습니다.” 태평양에 면한 페루의 해운 도시이며 수도인 리마를 이룩한 지 40분쯤 지나서 기장의 기내방송과 함께 탑승객들의 함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창밖으로 바로 보이는 해발 6천여m의 예리한 안데스 봉우리 설경은 탑승객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하다. 15분쯤 후 항공기는 잉카제국의 고도 쿠즈코(Cusco)에 도착한다. 쿠즈코의 해발고도는 3,300m, 경사가 급한 산맥의 한 가운데이고 보니 이들의 생활권은 일반적으로 해발 2천여m부터 4천여m - 그들은 이런 경사진 산허리를 오르내리며 생활하고 있다. 기압이 낮아 외지인들은 움직이기만 하여도 호흡의 곤란을 느끼지만 이곳 잉카의 후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곳에서 생활에 열중한다.
잉카제국의 거석문화 이곳의 역사는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3~4만년 전 아시아의 몽고계 인종들이 북아메리카를 거쳐 멕시코 지역과 이곳 안데스 지역으로 아주 정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BC9세기경의 차빈(Chavin) 문명을 모체로 여러 종족들이 흥망 성쇄를 거듭하며 독자적 문명을 유지해 나간다. 잉카제국은 1438년 이곳 안데스 지역을 광범위하게 통일한 최후 최대의 국가이다. 이들은 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Pizarro)의 상륙으로 멸망할 때까지 근백년간 표범과 인간의 혼혈신, 그리고 태양신 숭배를 근본으로 삼고 많은 석조도시, 성체들을 이곳 쿠즈코를 중심으로 여러 곳에 산재하여 건설하였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누구든 이들의 석조가공 기술에 놀람을 금치 못한다. 성채나 건축물을 짓기 위해 쌓은 석재는 집 덩이만큼 큰 것들도 있지만 돌과 돌의 틈이 칼조차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석재의 면과 면이 추호의 틈도 없이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 유적의 공통점은 모두 지형을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며 특히 신분에 따른 주거공간의 구분과 용도에 따른 공간의 배분, 그리고 공간의 폐쇄성과 개방성을 적절히 조합하여 배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사가 상당히 급한 산지가 대부분이어서 테라스형의 경작지를 만들어 이곳 주식인 감자며 옥수수를 재배하는 것 또한 이곳 인디오들의 지혜이다.
잉카문명이 이렇게 세계의 유일무이한 특징적 거석문화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을 이들에게 문자와 철이 없었다는 것이며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운송수단으로서의 바퀴와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한문과 이두가 쓰기 불편하여 이미 훈민정음이 만들어져 사용되어 있었으며 유럽에서는 기독교 문화를 중심으로 하고 고딕건축과 르네상스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었던 점을 비추어 볼 때 전혀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지구의 반대쪽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자대신 아주 원시적인 방법인 결구(마디)법으로 의사소통이 되었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운송수단과 철기가 전혀없이 거석을 정밀하게 가공, 운반하고 축조하는 기술은 경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잉카제국들의 정성스런 석조 유물들은 쿠즈코 주변의 많은 유적지에서 발견된다. 성채로서 삭사이와망(Sacsayuaman), 목욕탕과 샘으로 알려진 탐보마차이(Tambomachay)등...
쿠즈코 시내에는 스페인 침략이후 잉카제국의 인디오들이 생활하던 석조건축과 석조신전 위에 유럽의 주거 건축과 기독교 건축을 그대로 건축한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인도오들의 석조건축이 스페인 건축의 축대나 저층부처럼 그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어 스페인 인들의 문화 교체정책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길의 바닥석재와 길 중앙의 수로, 그리고 건물 하부의 석조건축의 흔적은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즈코시의 도시계획이나 건축물에 인디오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나 간파하기에 충분하다.
잉카인디오의 마을 - 오얀타이탐보(Ollantaitambo)
쿠즈코시에서 마추피추(Machu Picchu)로 가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면 잉카족들의 마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피삭(Pisac)마을, 칼카(Cal-ca), 우루밤바(Urubamba).... 오얀타이탐보라는 마을은 쿠즈코시에서 산길로 100여㎞ 떨어진 곳으로 이곳 인디오들의 옛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하는 곳이다. 이 마을은 사다리꼴의 가로를 갖고 있고 현재 7,80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인데 처음에 구성되었던 마을의 형태가 지금까지 변치 않고 남아있어 인디오들의 생활을 잘 읽을 수 있다. 더욱이 이들 인디오들은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초기의 주거지에 그대로 살고 있어서 마을내의 수로, 길담, 그리고 그들의 집들에서부터 그들의 옛 체취를 그대로 느끼게 된다.
이곳 마을의 주거지는 놀랍게도 직선의 도로와 수로 그리고 담을 사용하였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좁은 계곡 사이에 위치하면서도 격자 형으로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점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여 지는 자연발생적인 부정형 마을의 형태와 대조를 이루며 상당한 도시 계획적 측면까지 고려한 인디오들의 준비성을 읽을 수 있다.
마을의 뒤엔 깍아 세운 듯한 산이 있고 산의 중턱엔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진 창고가 준비되어 있다. 이곳엔 찬바람이 분다는 잇점을 이용하여 썩기 쉬운 음식의 재료들이 보관되어 있었던 듯하며, 콩, 츄나(Chuna-얼려 말린 고구마), 양털구두, 담요, 코카잎, 무기, 그리고 의식 때 입는 무지개 및 의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한다. 이들 창고가 갖는 보관의 뜻은 일시적 보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흉작이나 기근 또는 외적의 침입 등의 비상시에 대비한 영구적 보존을 의미한다. 스페인 침략시 상당한 시가전이 있은 후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들은 이 창고의 보관 품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 했다 한다. 스페인의 침략 후 이 창고는 스페인 인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말았으며 그 이후부터 잉카인들의 다시는 재앙이나 기근을 대비하는 보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중도시 마추피추
오얀타이탐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기차역에서 기차는 힘차게 부서지며 흐르는 황토빛물(우루밤바강)을 따라 방금이라도 물속으로 쏟아져 버리듯 철로를 아슬아슬하게 내려간다. 기차가 멈추고 여기서 마추피추에 오르는 소형버스를 타면 이 버스는 힘겨운 소리를 내며 깍아 지른 듯한 절벽 길을 지그재그로 오르고 마침내 공중도시 마추피추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곳 마추피추는 잉카제국 모두가 스페인에 침략 당했지만 끝까지 스페인들에게 발견되지 못하고 수 세기가 지난 1911년에서야 우연히 발견되었을 만큼 잉카 최후의 비밀도시답게 우루밤바강 대협곡의 접근 불가능 위치에 발견되었을 만큼 잉카 최후의 비밀도시답게 우루밤바강 대협곡의 접근 불가능 위치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이곳에 오르고서야 알 수 있다. 이곳은 해발 2,400여m이며, 우루밤바강가 기차역에서 울창한 절벽 원시림을 버스로 올라온 길만도 수직으로 500여m이나 된다. 과연 수 세기동안 이곳이 발견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이곳 마추피추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도시가 아니라 완벽한 도시계획과 과학에 근거하여 건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시전체가 도시 기능의 성격과 지형에 맞게 구획되어 있다. 테라스 형 농경지와 도심이 긴 계단으로 구분하고 도심도 상부와 하부로 나뉘어 신전, 사제 주거지, 왕족과 왕의 주거지, 일꾼들의 주거지, 형무소 등의 계급과 기능에 따른 영역은 중앙의 세계의 광장을 중심으로 분리, 배치하고 상호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죠닝되어 있다. 도시의 제일 높은 곳은 망투가 설치되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다. 분명히 산의 정상부임에 틀림없건만 샘물이 솟아나와 잘 다듬어진 석재 수로를 통하여 도시 내부를 아직도 흐르고 있음을 볼 때 잉카제국이 인디오들의 치밀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마추피추의 모든 시설들이 그렇듯이 주거의 모든 방들은 돌로 만들어졌고 상부는 우리나라의 초가와 비슷한 재료가 사용되어지고 있으며 형태는 경사 급한 이등변 삼각형 형태로 취해졌던 흔적이 뚜렷하다. 당시 왕이 기거한 것으로 알려진 주거는 다른 시설들에 비해 비교적 신전에 가까우면서도 높은 곳에 위치되어 있으며 하인 그룹의 주거시설과 인접하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어 이들의 생활 패턴을 짐작케 한다.
마추피추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도시계획이나 주거의 배치, 방들의 구성, 우리의 것과 비슷한 방 한가운데의 맷돌, 그리고 계단식으로 처리한 경작지 등, 모두 자연발생적 시설이 아니라 지형과 자연환경, 계급의 체계, 외적의 방어목적, 그리고 생활의 정신적 윤택함까지 모두 계획의 중요한 원칙으로 작용되고 계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글 방철린
역사와 건축의 밀접함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마야나 잉카유적지가 있는 중 아메리카문명의 여행이야기는 건축을 사랑하는 이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그 것은 그 곳이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 더욱이 접근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복잡한 루트를 거쳐야 여행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도 그렇거니와 그 문명이 우리에겐 상상하기조차 힘든 생소하고 독특한 문명이라는 점. 그러면서도 그 문명의 주인공인 인디오들의 근거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였다는 점에서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러나 이들 문명이 후에 이어지는 타 민족의 식민지 문명시대를 거쳐 현대 문명과 병치되고 공존하고 있음을 볼 때 단순히 역사의 단면을 잘라 그 시기 문명만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보다 현대작가의 창작 속에서 그 지역의 역사와 현대건축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가를 더듬어 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이번 여행 중 특히 많은 작품을 통하여 접해보고 또 친숙해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a)는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과 함께 멕시코를 대표하는 민족주의적 건축가로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가 심혈을 기울였던 까미노레얄 호텔을 포함한 몇 개 작품을 통해 그의 건축 관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레고레타는 1931년 5월7일 태어났다.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건축을 수학했고 조스 빌라그란(Jose Villagran)을 위해 일했으며 1965년에는 빌라그란의 파트너가 되었다. 32세에 자신의 사무소를 개설하여 지금까지 작품생활을 계속하고 있고 세계 여러 국가로부터 설계경기에 초대되었으며 현재 프리츠커(Pritzker)상 위원회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1966년 지신이 작품생활을 할 스튜디오를 설계한다. 작은 프로젝트이지만 그는 여기에 작가로서의 혼을 불어넣는다. 앞으로 탄생하는 작품들을 암시하듯 그의 건축철학이 담긴 건축어휘와 문법들이 이 작품에서 나타난다. 1968년 멕시코시티의 까미노레알 호텔(Hotel Carmino Real. Mexico City)에서 그는 호텔건축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며 그것이 연유되어 많은 호텔설계를 하게 되었고 또 그 때마다 건축에 대한 정열을 호텔설계에 쏟아 넣는다. 특히 칸쿤(Cancun)과 익스타파(Ixtapa)의 카미노레얄 호텔은 멕시코시티의 그것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호텔 이 외에도 그는 저 소득층을 위한 주거에도 큰 관심을 쏟아 엘 로싸리오(El Rossario)에 저소득층 주거를 ,계획했으며 공장, 연구소 등의 대규모 마스터플랜에서부터 주택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작품을 통하여 자기의 건축 관을 성공적으로 보이고 있다.
레고레타의 작품을 보면 그의 건축이 독특한 멕시코의 냄새를 풍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강렬한 멕시코의 태양 빛이 거칠은 그의 건축 벽면에 반사될 때 그의 독특한 원색적 칼라는 보는 이의 가슴을 움직이게 한다. 벽체와 벽체사이, 벽체와 기둥사이에 만들어지는 다양한 공간의 전개는 신비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의 건축에서는 멕시코의 고전인 마야, 아즈텍, 테오티와칸의 어느 양식도 찾아 볼 수 없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건축의 양식이나 장식 어느 것도 찾기 힘들다. 그의 건축은 물론 멕시코의 전통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웨인오토(Wayne Attoe)는 “레고레타는 늘 그의 작품의 근거인 ‘뿌리’에 대해 이야길 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풍토적 또는 전통적인 구체적 요소를 쉽게 발견할 수 없음을 그는 전통 속에서의 근거로서의 ‘꽃’이 아닌 ‘뿌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웨인오토는 “그는 지역주의자들이 ‘뿌리’가 아닌 ‘꽃’에서 그 생명력을 구하고자 함이 잘못임을 지적한다.”라고 말한다.
‘꽃’은 명백한 실체이고 또 성과물이기 때문에 ‘꽃’에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며 그것이 매력의 포인트는 될 수 있을 지언정 전통의 본질을 해결하지는 못하는 유행병과 같은 구실 이상을 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레고레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레고레타는 ‘꽃’이 아닌 ‘뿌리’에서 선조들의 생활을 배운다고 했다. 그는 늘 구체적인 형태와 주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원칙과 교훈에 관해 전통건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함에 있어 지적(知的)이고 설명적인 어프로치방법보다 영감(inspiration)에 의한 건축디자인 방법을 택한다고 이야기 한다. 많은 건축가들이 그렇게 ale고 있듯이 지적인 어프로치는 건축창작에서 매우 중오한 정서를 파괴하며 창작력을 저지시킨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설명을 필요로 하는 건축의 어프로치의 경우 이론적이어야 하므로 건축의 형(型;shape)을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고레타는 “나의 영감은 멕시코의 전통건축, 매일매일 겪는 건축언어에서 영향을 받는다. 나는 멕시코 전통건축에서 식민지건축이나 토속건축의 피상적인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인의 생활을 배운다.”라고 이야기 한다. 이것이 그가 이야기하는 작품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의 영감은 이렇게 배우고 몸에 젖어든 멕시코인의 생활 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온다. 레고레타의 작품 속에서는 그가 늘 작품 할 때 마다 꿈꾸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신비(mistery), 빛(light), 색(color), 벽(wall), 중정과 뜰(patio & courts), 친근감과 스케일(intimacy & scale), 물(water), 유머어(humor)등.... . 이 모든 것들은 그가 인생을 통하여 보고 배운 멕시코 인의 생활이 담긴 건축적 요소들이다.
칸쿤 까미노레얄호텔(Hotel Carmino Real, Cancun,1975)
야자수 사이사이로 펼쳐지는 카리브 해의 에머럴드 빛 바다, 유연한 해변을 한없이 달리는 백색 모래사장, 그 위에 깨어지는 파도소리....
칸쿤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무더운 유카탄 반도의 정글 속 마야유적에서 벗어난 직후라 더 그랬던가? 아무리 지우고 또 써 봐도 나에게는 칸쿤해변의 가슴 설레는 그때의 정경을 글로 표현할 재간이 없다.
칸쿤 휴양지는 유카탄 반도 동쪽상단에 육지와 간격을 두고 뱀같이 길게 뻗은 역 ㄷ 자형태의 섬-멕시코가 자랑하는 일류 휴양지이다. 이섬에는 80여개의 호텔과 클럽, 쇼핑센터 그리고 많은 레져와 휴양시설이 일렬로 이 섬의 동쪽 카리브해를 향하여 늘어서 있어 끝없는 장관을 이룬다. 카미노레얄 호텔은 이 섬의 동쪽상단,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리에 위치한다. 이부지는 원래 부지의 70%가 물이었다고 한다. 개발단계에서 물이 메꿔졌다는 사실을 안 레고레타는 이를 자연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을 전제로 하는 계획안을 수립한다.
성공적인 배치계획으로 물도 제 위치를 찾아주었음은 물론 수변과 내 외부 공간의 구성과 연결이 질서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이 호텔은 내 외부 공간의 다양성과 신비로움을 고객에게 제공한다. 특히 로비라운지에서부터 객실까지 이어지는 공간의 구성과 흐름은 특별하게 처리되었다. 이 연결 장치는 길이로 따지면 일반호텔에서보다 훨씬 긴 거리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고 지루한 통로(내가 묵은 칸쿤파레스호텔도 그러했다)가 아니라 ‘길’ 또는 ‘산보로’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어 객실을 오가는 이들은 지루함이 느껴지기는커녕 풍경의 변화를 만끽한다. 중정, 레스토랑, 수영장, 수영장바, 연못과 테라스, 열대식물이 가득한 정원 등이 해변의 경치와 함께 복도를 걷는 진행자의 전면과 좌우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다양한 풍경을 제공한다. 이곳을 걷는 이는 자기로 모르는 사이에 힐끗힐끗 좌우 또는 뒤로 돌아보게 되며 마침내는 이 길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마저 느끼게 한다.
멕시코시티 까미노레얄호텔(Hotel Carmino Real, Mexico City, 1968)
칸쿤에서 다시 돌아온 멕시코시티의 일박은 예정대로 카미노레얄호텔에서 묵는다.
이 호텔의 부지는 멕시코시티 차풀테펙(Chapultepec)공원근처 도시블럭의 일부(3면이 도로에 면함)로서 부지 면적은 30,000㎡, 1968년 올림픽 유치를 위하여 계획되었다. 레고레타는 이 호텔이 관광객들의 충분한 휴식처이어야 겠다는 생각과 멕시코 적이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설계를 시작한다. 까미노레얄호텔의 첫 번째 이미지는 아무래도 마젠타(magenta)색의 상징적인 월과 용트림을 하는 연못인 것 같다. 호텔에 가는 과정 중에 이 지역 가이드가 이 두 가지 이미지를 호텔의 이미지라 하며 흥분된 어조로 이 호텔을 설명한다.
이 의아하게 생긴 마젠타색 벽체(wall)와 용트림하는 연못(water)은 레고레타가 이야기하는 신비(mistery)의 요소로 쓰여 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벽체는 시선을 관통시킬 수 있는 틀의 유니트가 사방 연속적 구성수법으로 만들어졌으며 도시와 호텔전정과의 사이에 설치되어 단순한 테리토리(Territory)역할 외에 페쇄적이면서도 도시와 호텔이 상호 관입하는 공간 체계를 형성시킨다. 레고레타는 이 전정 한가운데에 멕시코 정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을 쉽게 도입한다. 그러나 이 물은 조용한 연못이 아니다. 전통적 중정이나 정원에서 발견되는 정적인 요소로서의 물이 아니라 도시 한 가운데의 파도라 부를만한 동적 요소로서의 물이다. 레고레타는 상황의 의외성을 방문객에게 던져 줌으로써 이 호텔의 이미지 메이킹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전정은 자동차 진입을 위한 광장이다. 사람들의 진입은 자동차 광장과 접한 좁고 긴 어프로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걸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 어프로치 과정 중 왼쪽 자동차 광장의 용트림 연못과 통로 바닥에 일렬로 놓인 조명상자에 시선을 빼앗기게 되고 이들의 다양한 구성에 의아심을 가지면서 걷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로비에 다다른다. 칸쿤의 까미노레얄호텔에서도 그랬듯이 로비에서부터 객실까지 그리고 객실에서 다시 외부공간으로 연결되는 모든 과정이 한 개의 드라마를 보는 것같이 구성 되어있다.
레고레타는 30,000㎡의 넓은 부지전체에 몇 개의 크고 작은 중정 중심적 객실배치를 기본으로 하는 배치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런 배치방법은 개개의 객실 앞의 외부공간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을 뿐 아니라 로비에서부터 객실에 이르는 과정을 통로의 개념이 아닌 ‘길’ 또는 ‘갤러리’개념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구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을 걷는 이들은 복도주변의 뜻밖의 상황을 늘 접하면서 걷는다. 중정이 살짝 보여 나가보고 싶은 충동도 느끼게 하고 벽면의 특이한 구성에 매료되기도 하며. 유리로 막힌 휴게실 그 건너 에 중정이 보여 들어가서 쉬고 싶게도 하고, 창밖으로 작은 못의 물과 조명에 시선이 머물게 하기도 하고, 그 물 건너편 라운지에 사람의 어른거림을 보고 호기심을 갖게도 하고.... . 뿐만 아니라 객실의 위치에 따라 고객은 전혀 다른 정원공간의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곳은 넓은 잔디밭이 있고 어떤 곳은 지극히 폐쇄적이기도 하고....
레고레타의 객실 디자인은 레고레타 답다. 객실 문을 열고 물을 켜는 순간 붉은색 침대시트카바와 팬단트조명을 받은 보랏빛 카페트가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바닥까지 드리워진 커텐을 열자 객실 앞 테라스와 열대식물 가득한 정원이 적막 속에 펼쳐진다. 이 정원으로 문을 열고 나가서 느낀 것은 로비에서 이 객실까지의 모든 경치들이 이 정원에서 승화되는 듯한 느낌이다.
레고레타의 스튜디오 (Studio, Mexico City, 1966)
마추피추 여행을 마치고 다시 멕시코시티에 올라와 바라간과 레고레타의 건축을 들러본다. 레고레타의 스튜디오는 조용한 주거지역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스튜디오의 어프로치 역시 이제까지 본 호텔의 그것과 유사한 맥락을 보인다. 이 스튜디오가 앞서 본 두 개의 호텔보다 앞 시대 것이고 보면 공간의 전개나 구성수법이 사실 이때부터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때 이미 이 스튜디오에는 레고레타의 건축언어인 빛, 벽체, 물, 신비 등이 건축에 베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스튜디오의 디자인 철학이 후에 그가 디자인하는 많은 걸작의 모체라 할 만큼 많은 걸 담고 있었다.
솔라나 빌리지센터와 아이비엠 빌딩(Solana Village Center & IBM BLDG. Westlake/Southlake,TEXAS, 1985~1989)
이 시설의 위치는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Fortworth, Texas)북서쪽 외곽지역이다.
1985영 이 지역에 IBM을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랜이 수립되었다. 로말드 지오골라(Romaldo Giurgola)와 피터워커(Peter Walker)주도한 이 마스터플랜 발전단계에서 레고레타는 멕시코의 많은 건축어휘와 색체를 동원시켜 재료, 색체, 치수계획, 조경 그리고 그래픽디자인에 이르기 까지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후 레고레타는 쇼핑센터, IBM사무소, 메리어트호텔(Merriot Hotel), 보이스카윳본부, 스포츠클럽 등의 많은 시설물들을 차례로 설계하였다. 이곳을 찾았을 때 마스터플랜상 크게 눈에 띄는 것은 광대한 부지의 중앙을 고속도로가 자르고 지나가고 고속도로 밑 교각사이로 부자기 겨우 연결되어 있어 같은 시설임을 인지시키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으리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고속도로 하부 연결도로를 영역사이의 대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하여 2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진 한 개의 단일 시설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지역의 또 하나 특징은 텍사스의 넓디넓은 준평원으로, 수직요소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곳이다. 이 점을 이용하여 각 시설물 위치마다 놓은 원색 탑을 세워 각 시설물의 인지도를 높이는 한편 영역간의 동질성을 확보하였다. 모든 시설물들은 동질성 속에서 각자 나름대로의 특징적 공간구성을 갖고 있다. 물, 벽체, 중정 등의 요소들이 때로는 친근감을 때로는 신비감을 줄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쓰여졌다. 메리어트호텔은 멕시코에서 본 두 개의 호텔과 비교하여 볼 때, 레고레타 고유의 방법-기능들의 배치와 연결방법, 내외부 공간의 전개방법이나 전이 방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새로운 공간형성의 수법도 동원되고 있어 또 다른 레고레타의 변모를 볼 수 있었다. 다만 재료의 사용이 멕시코의 것보다는 훨씬 고급이고 단정하여 깔끔한 맛은 더하지만 레고레타 고유의 터프한 텍스츄어의 맛은 덜한 것 같다. 객실 내부의 마감 역시 멕시코시티의 레고레타 맛은 나지 않는다. 이러한 건축적 결과들은 어떤 연유애서 나온 결과일까 생각해 본다. 텍사스 솔라나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위한 레고레타의 배려의 결과인가 아니면 레고레타가 떨어져 있어 외면해 버린 결과인가.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조명기구들이 하나 둘 서서히 켜지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솔라나 전체가 조명에 의해 환상적인 도시로 바뀌어 버린다. 여기저기서 레고레타적 원색칼라들이 빛을 발한다. 텍사스(Texas)평원에 밤이 깔리고 적막이 감돈다. 방철린 記 이상건축9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