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한강철교가 세워진 이후 1917년 한강의 인도교로는 최초로 놓여진 한강대교(당시명칭 : 한강인도교)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한강철교를 짓고 남은 자재를 가지고 지은 것이어서 폭도 좁고(차도 4미터+양쪽으로 인도1미터씩)구조 형식도 그 당시 한강철교와 같은 프랫 트러스(pratt truss) 형식으로 추정된다.
이후 1925년 대 홍수로 용산 쪽 거더(girder)교 다리가 붕괴 위험에 처하자 폭을 넓혀 다시 짓게 되었고, 교량 건설 이후 노량진 쪽 발전으로 교통량 증가로 인한 수용부족이 계기가 되어 1937년 지금과 같은 리벳팅 타이드 아치(riveting tied arch) 구조인 왕복 4차선의 다리로 탄생 된 것이다.
6.25사변이 터져 북한군의 침략이 시작되자 북한군 의 전진을 저지 시키고자 국군에 의해 폭파 되고 폭파 된 다리에서 떨어진 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게 되어 임의 폭파했던 군 당사자가 사형을 당하는 등의 끔찍한 수모를 겪었지만 이후 1958년 재건 되어 본 모습을 되찾았다.
한강인도교로 불리던 이 다리는 1965년 제2한강교( 현 양화대교),1969년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가 연이어 생기면서 제1한강교로 불리었고 교통량 폭주로 1981년 이 다리의 바로 옆으로 똑같은 형태의 다리(리벳팅 타이형식이 아닌 용접연결구조)를 만들어 쌍둥이 형태를 취하면서 8차선으로 늘어나고 이름도 한강대교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한강대교는 이제 우리의 문화유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수모와 아픔의 역사와 함께 했던 만큼 이 다리는 다른 다리와는 달리 우리와 같은 맥박이 뛰고 있는 것 같은 친근감이 있다. 한강의 다리 중에서 가장 앞선 시대의 다리이지만 후대에 지어진 다른 한강의 다리와 비교해 볼 때 경간거리 등 규모 면에서는 작아도 구조 미 적인 면으로는 우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를 걸어서 건너면서 신과 구 두 개의 아치를 비교해 보는 것은 또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