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12월20일) 친구 둘과 운길산을 올랐다가 수종사(水鐘寺)를 찾았다. 운길산은 해발 610미터로 주변의 예봉산 그리고 한강 남쪽의 검단산과 함께 두물머리부근 한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산으로 명성이 높다. 운길산 속에 있는 수종사 역시 경치가 빼어난 것으로 이름났다. 조선시대 동국통감을 지은 석학 서거정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했으며, 가까이 있는 조안리에서 살았던 정약용(丁若鏞)은 유수종사기(遊水鐘寺記)에서 세 가지의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다성(茶聖) 초의선사(艸衣禪師)는 수종사에 정약용을 찾아와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차를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 덕에 몇 년 전에 수종사엔 경치를 구경하며 조용히 차를 마실 수 있는 삼정헌(三鼎軒)이란 다실이 생겼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은 한양의 명승지를 그림으로 남긴 화첩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독백탄(獨栢灘)이란 산수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림에서 독백탄은 그림의 아래쪽 남자주(지금의 족자섬)의 주변을 이른단다. 탄은 좁은 물길을 의미하는 것이니 족자섬 주변이 그러했나보다. 그림에서 보면 멀리 왼편에 있는 산이 예봉산, 오른편의 높은 산이 운길산 봉우리라는 걸 정확한 표현 덕에 알아볼 수 있다. 운길산 봉우리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오른편으로 내려오면서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가 절상봉, 그리고 그 바로 아래쪽으로 내려와 집 모습으로 표현된 곳이 수종사이다. 운길산 봉우리에서 우리는 그길을 따라 내려왔다. 여기에 내친 김에 다산 정약용의 유수종사기를 올린다. 어렸을 적 노닐던 곳에 어른이 되어 찾아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되겠고, 궁했을 때 지나온 곳을 출세하여 찾아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되겠고, 나 홀로 외롭게 찾던 곳을 맘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온다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겠다. 내가 옛날 어린 아이 적에 처음으로 수종사에 놀러간 적이 있었고, 그 후에 다시 찾은 것은 독서를 하기 위함이었다. 독서할 때는 늘 몇 사람과 짝이 되어 쓸쓸하고 적막하게 지내다가 돌아왔다. 건륭8년(정조대왕8년) 계묘년(1783년) 봄에 내가 경학(經學)으로 진사가 되어 소내 (苕川,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으로 돌아 가려할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번 길에는 초라해서는 안된다. 두루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가거라”라고 하셨다. 그래서 좌랑 목만중, 승지 오대익, 장령 윤필병, 교리 이정운 등이 모두 와서 함께 어울려 배를 타고 갔고 광주부사가 세악과 풍악패를 보내어 흥취를 도왔다. 소내로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나 수종사에 놀러 가려고 하는데. 젊은이 10여 명도 따라 나섰다. 나이든 사람은 소나 노새를 탔으며 젊은 사람들은 모두 걸어갔다. 절에 도착하니 오후 서너시각이 되었다. 동남쪽의 여러 봉우리들이 때마침 석양빛에 빨갛게 물들었고, 강위에서 햇빛이 반짝여 창문으로 비쳐 들어왔다. 여러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즐겼다. 밤이 되어 달이 대낮처럼 밝아오자 서로 이리저리 거닐며 달 주변을 바라보면서 술을 가져오게 하고 시를 읊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나는 이 세 가지 즐거움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 여러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다.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옛 절이다. 절에는 샘이 있어 바위 틈으로 흘러나와 땅에 떨어질 때 종소리를 내므로 수종사(水鐘寺)라 한다고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