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虛)의 건축>
이필훈: 방철린 소장의 건축 작업은 공간건축을 거쳐 정림건축에서 10여 년 간 다양한 경력을 쌓은 시기, 이후 독립하여 4.3그룹 동인으로서 활동한 시기, 현재 50대 이후의 세 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본인의 건축적 사고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혹은 어떠한 항성이 있는가?
방철린: 공간건축의 고(故) 김수근 선생 밑에서 일하면서 건축의 본질적 문제를 고민했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건축 수업을 받기 힘들었던 시절, 건축은 단순히 기능을 풀고 형태 디자인 작업에 그치는 것뿐이 아니라 공간의 체계라든가 질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건축은 어떻게 풀어 나아가야 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였다. 당시 청년기에 감수성이 강한 시절에 받아들였던 건축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초가 되어 지금도 그 영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정림건축에서 활동할 때도 이러한 고민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 때에는 건축에 대한 깊은 탐구보다는, 주로 다양한 프로젝트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의 응용을 추구하고 폭을 넓히는 시기였다. 십여 년 동안 엄청난 양의 다양한 일을 하였다. 4.3그룹 활동은 젊었을 때부터 고민해왔던 생각들이 소신 있게 정리되기 시작하는 전환점으로, 대형사무소에서 찾기 힘든 ‘나의 것’을 정립할 기회였다. 상당히 많은 양의 일들을 해오면서 갖게 된 건축에 대한 많은 사고들을 선별하고 정리하여 자기화 하는 시기였다. 또한 시대에 대한 감각이 성립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당시 동인 멤버들도 모두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4.3그룹 활동이 시작 되었던 1990년도의 3, 4년 이후에 지어진 작품들과 그 이전의 것들은 동인 모두에게서 그 차이가 나타난다. 이때부터 인토건축으로 독립하면서 자기 찾기에 나섰다고 보면 될 것이다. 대형사무소 때보다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타성에 젖지 않고 정리를 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가며 심혈을 기울여 작업할 수 있었다.
이필훈: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건축한다’라고 건축관을 천명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방철린 소장도 그러한 건축관을 천명해온 연배에 속한다. 그런데 오늘날 건축계 리더들의 건축관이 비슷한 색채로 물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4.3그룹 활동을 건축가의 자아성찰의 확립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한편으로는 당시 동인활동을 주도하는 동료 사이의 사고가 비슷해지거나 작품이 비슷해지는 경우도 있지 않았는가?
방철린: 의도하진 않았으나 개인적으로 놀랐던 일이 있다. 예전에 특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대학 교수가 내 강의 내용이 같은 4.3그룹 동인인 S씨의 논의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시간이지나고 S씨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과연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내 경우 서양의 건축을 신전-팔라조-사보아주택의 계보를 통해 살펴보면서 한국건축과의 차이를 비교했었다. <충효당>을 예를 들어, 신전의 평면과 입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서양건축과는 달리, 환경과의 밀착관계를 유지하고 공간을 주로 다루며 다양한 경관과 접함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건축의 장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는데, 4.3그룹 활동 당시 같이 여행을 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하긴 같은 직장에서 있을 때부터 비슷한 문제점들을 고민했었기 때문에 느끼고 추구하는 것이 유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건축가로서 먼저고 나중이고 간에 당연히 남과 똑같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실 독자적인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 거꾸로 비슷한 사고의 건축가에 대한 글을 가급적 접하지 않고자 해왔다.
이필훈: 파주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작은 집들이지만 열린 소통의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이 보인다. 집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방철린: 건축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무위(無爲)’이다. 환경에 걸 맞는 장소를 선택하고 집을 배치하는 데 제멋대로 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이것이 아주 새로운 생각은 아니다. 조상들의 정신에 배인 얼이며, 그런 생각이 좋은 도시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 생각한다. 루이스 칸도 같은 이야기를 언급하였는데 충분히 공감한다. 또한 건축에서 ‘허(虛)’란 무엇인가를 늘 생각한다.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 디지털 시대로 치닫고 있는 요즘 느끼는 문제는 ‘인간상실’이다. 디지털세계에서는 라이프니츠가 만든 2진법을 사용하지만, 동양에서 더 먼저 아날로그적 2진법을 썼다. 바로 ‘양음(陽陰)’이다. 서양과 동양의 이진법 개념은 얼핏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동양의 이진법의 양음은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서양의 디지털 이진법은 있고 없음, 죽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동양의 이진법이 공존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서양의 디지털 이진법은 ‘제거가 아니면 선정’의 개념이다. 사소한 허물도 인정되지 않는 현대 서구식 이분법적 사고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아날로그적 요소가 건축에 있어서 ‘허’의 요소가 아닐까 한다. 기능성, 필요성을 떠나 있음 자체로써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갖게 하는 공간을 추구하고 건축에 제공해 줌으로써 현대의 각박한 심성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필훈: 말씀하신 ‘허’는 한자 그대로 비어있음이라기 보단, ‘비기능적인’, ‘의미 없는’, ‘여유로운’ 등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방철린: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는 상태에서 그것들을 완전히 비워내고(虛) 조용하게(靜) 만든 상태를 노자는 ‘허’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곧 근본(根)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이 곧 도(道)라고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에는 모든 것에 ‘허’가 있으니 자연에도, 도시에도, 건축에도 ‘허’가 있다. 건축의 ‘허’는 기능적으로는 꼭 필요한 공간이 아닌, 그러나 인간의 근본을 찾아주고 인간본연의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어찌 보면 이필훈 소장이 이야기하는 ‘의미 없는’ 공간으로 느낄 수도 있고 공간의 ‘여유’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간을 추구하고 만들어내야 진정 인간이 주인이 되는 좋은 건축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필훈: 설계할 때 주제 외에 많은 소재들이 존재하게 되는데 어떤 것들이 있나?
방철린: 허, 무위의 논의도 중요하지만, 일단 집은 재미있어야 한다. 건축의 깊은 논의거리는 될 수 없을지언정,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필요하다. 아무리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올바른 마음을 가진 남녀가 만나서 부부가 되더라도, 그것만으로 부부생활이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농담도 하고 깜짝쇼도 해야 생활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건축도 그런 유머러스한 부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필훈: 집이 재미있고 풍부해야 한다는 말씀은 의미가 있다. 같은 설계자 입장에서 보면 건축가가 어떠한 거대 담론, 새로운 건축관이나 사상을 굳이 만들려 하는 것, 시대를 정리하여 사상을 만들어내고 건축으로 그것을 표현하겠다는 행위가 치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설계를 하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내가 세워놓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들의 발생이 집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건축가들이 그 간극을 인정하는 게 어떨까. 건축관이 매우 뚜렷하여 그 개념으로만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 외에도 건축 기술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많은 장점들이 있는데 인문학적인, 형이상학적인 논의에만 그쳐 그 집이 갑자기 재미없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방철린: 말은 쉽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생활의 활력소로서의 유머는 늘 필요한 것이고 이것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하듯이, 건축에서도 마찬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과학사> 중앙 정면은 단단해 보이는 담과 문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대문은 사실 양쪽에서 튀어나온 벽체 캔틸레버가 서로 맞보고 있는 모습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중정 한가운데에 있는 물, 그리고 이곳에서 2층으로 오르는 캔틸레버 계단 등은 예상을 깨기에 충분한 요소이다. 또 3층 난간 바깥으로 나온 캔틸레버도 아래에서 볼 때 궁금증을 유발한다. <북이십일> 출입구 상부의 캔틸레버 구조나 벽으로 막힌 4층의 발코니, 3, 4층 외부로 튀어나온 계단 등 역시 보고 그냥 넘기기에는 평범한 형상은 아니다.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지만 한국가드너사의 <탄탄스토리하우스>에서도 이런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더 많은 유머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필훈: 몇 년 전에 외국의 건축가 포럼에서 제임스 스털링의 스투트가르트 미술관 설계에 대한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마치 창호가 돌을 빼내어 만든 것 같은 디테일로 되어 있고 그 밑에 빼낸 돌이 쌓여져 있는 것처럼 되어 있었다. 학생들의 질문에 쌓아놓은 돌만 진짜고 나머지 벽에 붙인 돌은 건식으로 붙였기에 다 가짜라고, 그래서 그걸 풍자하고 싶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축가 선배님들이 꾸준히 전통건축의 한국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무거웠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전통건축에 대한 이해도 절제와 풍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전통건축을 갈 때 굴뚝과 담, 계단을 많이 보는데, 선비가 어떻게 지으라고 말하지 않는 부분에서 건축쟁이 맘대로 한 부분이 자연스럽고 재미있다. 심각한 유교적, 불교적 이론에 의한 집의 전체 구조와 자유로운 정신으로 만든 디테일이 모여 대비적인 풍부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해외에서 돌아와 우리나라 전통건축을 둘러본 어느 건축가가 돌계단에 새겨진 원숭이의 미소를 보며, 누가 따로 지시하지 않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그와 같은 해학에 흥미를 느낀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전통건축에는 이처럼 절제된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 아래 굉장히 풍부한 자연스러움, 농담, 재미가 있다. 그러한 이중적인 코드를 집에 만들고 싶다는 방철린 소장의 생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필훈: 아시아 건축들을 들여다보면 한국 유명 건축가들의 집은 아시아의 다른 건축가들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원류는 유럽이나 일본의 유명건축가로 읽혀진다. 작가적 특성과 토속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작품들은 오히려 디자인이 안 된 것 같으면서도 갖춰야 할 바를 제대로 갖춘 집들이거나 재료의 사용에 있어서 뛰어난 집 그리고 주변의 지역적 상황과 잘 어울리는 집들이다. 파주의 프로젝트를 답사하면서 방철린 소장의 집이 편해졌다는 느낌을 가졌다. 무위의 표현 방식이 될 수 있겠지만, 집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강박관념이 느껴지지 않았다. 원칙에 충실한 집들이다.
방철린: 감사한 말씀이다. 청년기 시절 공간건축에서 오피스 디자인을 위해 책 한권 될 만큼 많은 입면도를 그려 김수근 씨에게 보여주고 그 중 한 개를 선택 받은 적이 있다. 정림건축에서도 13년 동안 굉장한 스피드로 올라운드 플레이 작업을 해나가며 많은 종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였고 그러면서 디자인에 쏟아 부은 정성도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충효당이나 양진당 같은 한국건축에는 독자적인 입면이 없다는 것이었다. 입면에 대한 집착보다는 그 집이 가지고 있는 정신이 더 중요하고 자연과의 관계 사람을 위한 공간 만들기가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미제루>를 디자인 할 때도 집 몇채 되지 않는 전원 속에 있어야 하는 이 집은 가급적이면 나를 없애고 그 동네에서 편한 집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상이라 생각했다. 처음 거실을 배치시켰던 부분에 창을 없애고 이 장소를 루(樓)로 만들어 자연의 냄새나 벌레소리와 직접 관계를 맺도록 했다. 진정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만 만들어 주자는 생각에서였다. 이러한 공간 구조는 동네사람들과의 연결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어떤 건축가들로부터 집이 후줄근해 보인다는 소리도 들었던 이런 건축이 아카시아(ARCASIA) 건축상 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아카시아 측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 나 자신도 적잖이 놀랐었다.
이필훈: 아시아의 많은 건축가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하우징을 위해 참여하고 있다. 평당 공사비가 낮기 때문에 좋은 집을 못 짓는다는 한국 건축가들의 생각은 말이 안 된다. 공사비에 맞는 좋은 집을 지어주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다. 이런 것에 상관없이 건축가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프로토타입만 계속 그려내어 건축주에게 무조건 받아들이라 하는 것이 문제이다. 잡지에 내기 위해 짓는 집, 잡지 건축의 문제이기도 하다. 설계하는 집을 통해 건축가의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그 집을 소유하는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방철린: ‘사’자가 들어간 다른 전문가 집단과 함께 심도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한때 저소득층이 사는 다가구주택에 관심을 쏟은 적이 있지만, 변호사건 의사건 저소득층을 위한 일에 뛰어드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듯이 건축 또한 마찬가지이다. 건축가의 자질에 관한 문제라고 보는데, 건축가의 욕망이라는 게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인가, 건축가가 진정한 건축의 본질을 찾고 있는 것인가를 실험할 기회가 된다고 본다. 할 수만 있다면 이쪽의 관심은 좋은 건축가를 그리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코스라 생각하고 또 이를 위해 실천적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프로젝트>
이필훈: 현장에 자주 가는 편인가?
방철린: 일주일에 한번 정도 현장엘 꼭 간다. <북이십일>과 <교육과학사> 공사 중에도 가급적 최선의 결과물을 도출해 내기 위해 파주에 자주 갔다. 건축물이 일단 지어지면 더 이상의 수정 보완이 사실상 쉽지 않기 때문에 미리 미리 준비를 해주기도 하고 결과물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필훈: 파주 북시티는 설계지침이 미리 제시되어 있는 곳이다. <북이십일>, <교육과학사> 등 파주 프로젝트를 지을 때, 옆의 집들에 대한 컨텍스트는 어떤 방식으로 신경 썼는가?
방철린: 기본적으로 도시계획당시에 정해진 룰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내가 프로젝트가 시작할 때만 해도 주변에 다른 건물들이 어떻게 들어설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교육과학사>의 경우 옆에 K씨가 설계한 <국민서관>이 있었고 뒤편에 <보진재>가 준공된 상태였다. 파주 지침의 제약으로 인해 <국민서관> 사이에 간격을 둘 수 없었기 때문에 <국민서관>과의 이격거리가 가까운 측의 매스는 2층으로, 반대편 <청년사> 주차장과 함께 주차장으로 되어 있어 넓은 북쪽은 4층 매스로 하고, 이 두 동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부분은 투명하게 하여 도시계획에서 요구하는 투명성을 확보하였다. 이미 완성되었던 환경조건을 존중하여 이를 반영하는 방법에 따라 짓도록 계획한 것이다. <북이십일>의 경우는 설계 당시에는 뒤에 건축물이 없었고 남쪽으로는 같은 K씨가 설계한 건축물이 상당한 간격을 두고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건축주의 증축 가능성을 고려해 달라는 요구에 따라 대지 북측으로 건축물을 배치하였는데 뒤의 건축물이 남쪽으로 전진 배치되어 두 건축물간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러나 개천 건너의 큰 길에서 보면 <북이십일>의 남쪽 주차장 부분을 관통한 시선이 심학산에 까지 이르도록 되어 도시계획이 원하였던 시선의 관통 문제는 해결이 잘 된 셈이다.
이필훈: 미송널 거푸집으로 마감한 노출콘크리트와 일반 노출콘크리트가 주요 재료로 쓰였다. 재료 선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방철린: 재료는 솔직한 표현이 가능한 재료가 좋다고 본다. 구조적으로 꼭 필요한 재료가 건축에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 그 건축물의 속성을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다고 본다.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매력은 이러한 솔직성과 반영구적인 내구성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사계절이 있고 온도의 차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단열의 문제를 빼 놓고 외장이나 건축 재료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본다. 한쪽이 노출콘크리트이면 한쪽은 반드시 단열을 해야 하므로 반대편은 다른 재료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또한 이런 점이 마감재료 선정의 변화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노출콘크리트의 표면처리 방법은 거푸집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집의 성격과 함께 생각을 해야 하는 문제라 본다.
이필훈: 노출콘크리트의 유독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방철린: 노출콘크리트의 유독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는 있는데, 어디에서도 유독성의 유무에 대한 학술적 자료를 발견 못하였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어떤 대학 교수가 콘크리트가 무공해임을 증명하는 글을 실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것의 진실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는 없다. 그저 건축계에서 이야기 되는 것은 콘크리트가 초기에 유해물질이 나오더라도 공사기간이 끝날 즈음에는 양생이 되어 공해물질이 나오지 않는다는 정도이다. 콘크리트가 정말로 공해가 없는 자재인지는 과학적 검증이 꼭 필요하다. 건축자재가 가져야 할 첫째 조건이라 하면 당연히 유독성의 유무이다. 한국의 경우 이 부분에 상당히 소극적이어서 아무런 제재 없이 발암물질이나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건축자재를 사용하고 있다. 파주출판도시에도 그런 건축물이 있는데, 집을 싸게 지었다고 자랑하는 건축주들의 건축물에 들어가 보면 이런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재료가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어 안타깝다. 건축주는 물론 그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그 내용을 전혀 모르니 더욱더 답답한 일이다. 싼 비지를 먹겠는가?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겠는가?
이필훈: 건물 외부의 미송널 거푸집의 무늬가 모두 세로로 되어 있다. 디테일도 일일이 신경을 쓰는가? 가령 설계를 할 때 남들은 중요하게 안 봐도 자신에겐 중요한 디테일 문제들이 있다.
방철린: 디테일에 대해 신경 쓴다. 건물의 덩치를 보면서 그것과 어울릴 것을 감각적으로 파악한다. <북이십일>은 저층부가 유리이고 상층부가 콘크리트 덩어리이다. 위쪽 매스가 육중해 보이기를 원했기 때문에 세로줄을 넣어서 양감을 더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한번 세로줄을 쓰니 직원들이 도면 작업을 하면서 가른 곳에도 그대로 세로줄을 계속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런 관성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이필훈: 작은 집들이지만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써는 매우 대담한 구조적 시도들이 보인다. 노만 포스터, 리처드 로저스 같은 건축가들이 한국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철린 소장 연배의 선배 건축가들의 경우 한국성, 공간에 대한 건축적 논의의 집중도에 비해 건축의 기술적인 해결에 대한 고민은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는가? 방철린 소장은 정림건축과 같은 대형 사무소에서 오래 근무한 만큼 건축의 기술적인 이해도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성 등에 대한 고민에 비해 기술적 해결에 대한 제안, 새로운 시도가 부족하다고 여기지는 않는지.
방철린: 구조적인 가능성을 구체화하고 싶은 욕구는 강렬하다. 건축의 속성이 미학은 물론이고 역사, 환경, 도시, 사회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만 과학과 기술 분야를 빼어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건축가들에게는 필요한 것은 구조의 깊숙한 계산법보다 감각으로 느끼는 구조라 본다. 그 구조에 대한 감각적 감수성으로 상상하는 부분을 구체화하는 데 구조기술사의 도움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건축가 입장에서 보면 구조기술사도 ‘구조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건축가와 대화를 할 때 좋은 구조 좋은 건축이 탄생하지 않겠는가? <북이십일>에서 건축물 정면에 캔틸레버 매스를 제시했을 때 구조기술자들은 부정적 시각으로 보았다. 이들이 거꾸로 구조적 가능성을 먼저 제안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연남동 <스텝> 설계 당시에도 나의 계획안에선 지하로 내려가는 외부 계단을 길이를 줄이기 위하여 층고를 낮게 책정해 놓았는데, 실시설계 시 일반적 구조로 설계를 하여 층고가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선큰가든이 좁아지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원룸의 경우 칸막이 벽 자체를 한 층 높이의 보로 보면 그 아래층과 위층 보는 없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고 이 개념을 살리기 위해서 구조계산부터 설계를 다시 하였다.
이필훈: 구조는 건축에서 유효한 시스템이다. 우리 건축가들은 정작 이러한 구조와 같이 건축에 내제된 중요한 코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분야를 기웃거리며 사변과 담론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경향이 있다. 신진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것들을 흡수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힘을 기대한다면, 방철린 소장과 같은 기성 선배 건축가들의 힘은 집이 가져야 하는 원칙, 건강함을 보여주는 데 있는 것 같다. 어느 젊은 건축가가 설계한 주택을 보러 갔는데, 거실에 홑으로 된 가로창을 설치하여 창을 열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창틀을 없앰으로써 입면의 멋을 추구한 장치이다. 가끔 오는 건물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주택 같이 늘 살아야 하는 건축물에서 건축가의 작품 욕이 도를 지나쳐 생긴 경우로 보인다. 반면 방철린 소장의 프로젝트에선 잘 되었다 못 되었다 이전에, 창이 있어야 할 데 있고, 열리고, 빛이 들어가야 할 부분에 선큰을 만드는, 집이 갖춰야 할 조건들이 구석구석 마련되어 있다. 입면을 위해 희생된 내부 공간들이 없다.
방철린: 건축가들의 기본자세인데 잊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 기본을 일일이 챙기면 멋진 건축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문제이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실험적인 건축물들이 필요하기도 하다. 건축상 심사를 위해 다른 심사위원들과 한 젊은 건축가의 주택을 답사한 적이 있다. 겨울이었는데 건축물의 사방이 모두 유리로 되어 단열이 거의 되지 않았고, 내부가 어디에 어떻게 앉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을씨년스러운 공간이었다. 어떤 심사위원은 그 주택을 죄악이라고까지 평가하기도 했으나, 나는 그 주택을 추천하여 상을 받도록 하였다. 건물이 잘 되고 아니고를 떠나, 새로운 생각이 실험작으로서 하나의 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성 건축가에게 충격과 재고의 기회를 준다면 하나의 건축적 샘플이 될 수 있다. 답사 온 이에게나 설계한 건축가 자신에게나 자신의 작업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필훈: 그렇다. 살기 위한 집을 짓는 건축가가 반드시 필요하듯, 건축가를 위한 작품, 건축 어휘를 넓혀주는 실험 작들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후자를 프로토타입, 표준화 하려는 젊은 건축가들이 있다는 게 문제이다. 외국도시를 가보면 독특한 건축물들이 있는데, 그것은 배경(background)이 건강하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의 집들이 배경이 되고, 거기에 독특한 집이 형상(figure)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모두 형상(figure)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축가들의 강박관념으로 인해 배경(background)은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자기 생각을 지우고 주변 상황에 어울리게 작업하는 건축가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건강한 그라운드를 만들려는 사고, ‘공공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필훈: 현재 지어지고 있는 건물 중 방철린 소장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성격의 프로젝트가 있는 것으로 들었다.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의 성격과 지금 지어지고 있는 집에서의 제안은 무엇인가?
방철린: 같은 파주출판도시 내에 있는 건축물로 어린이책자를 출판하는 한국가드너사의 사옥이다. 현재 설계는 끝난 상태이고 공사 중에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출판물을 다루는 회사니 만큼 사무실 용도보다 구현동화를 읽어주는 공연장과 동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그림을 전시하는 전시장이 건축물의 주된 프로그램이다. 이 건축물을 설계하면서도 점점 더 깊숙한 디지털세상에서 살게 될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날로그적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였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과 실천> 이필훈: 현재 방철린 소장은 한국건축가협회의 부회장 활동을 하고 있다. 건축가로서 작품 활동 이외의 사회적인 활동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명해 달라.
방철린: 내가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실천을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건축가가 활동하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단체의 힘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감리 문제, 건축가의 지위 향상 등 시급한 문제들이 있지만 해결이 쉬운 일은 아니다. 2005년 건축문화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어 다행이지만, 급선무는 건축가의 지위 향상이다. 근본적으로 한국의 건축가가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건축제를 통해 지위 향상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특히 매스컴을 이용한 홍보 가능성을 새로이 깨달았다. 홍보대행사를 통해 신문사 기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설명회를 가졌는데 일반 언론들도 건축계 소식을 갈구하고 있음을, 오히려 건축계에서 담을 쌓고 자신들끼리만 소통하고 대외홍보에는 게을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필훈: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은 건축이 가장 핫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주는 곳이 없어 취재를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예술계가에 비해 언론 일반과 소통의 구조가 적극적이지 않다.
방철린: 한 일년 전 쯤에 한나라당에서 예총 등의 예술 관련인사들과 국회의사당에서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자격으로 여기에 참석하여 건축의 발전을 위하여 저해되는 요소들을 이야기하였다. 설계와 감리가 분리되어 있는 모순점, 기술자들을 관리하는 법인 건설기술법이 문화측면이 강해야 하는 건축법보다 상위법에 있으면서 건축가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점, 건설교통부에서는 토목위주, 기술위주 그리고 안전위주로 시스템이 되어 있고, 근무인원들도 문화 측면에는 거의 전혀 신경을 쓴지 않고 있어 건축 부를 독립적으로 두어야 한다는 점 등 세 가지를 이야기하였다. 제발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형식적인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필훈: 사실 설계감리를 분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건축사이다. 자기상황논리이다. 다세대주택의 건축주들이 주로 시공자들이기 때문에 일부 건축사들은 이들의 불법행위를 제어할 수가 없다. 결국 그 제어 권한을 따로 분리해 대행을 요청하는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것이 전체 건축사들의 집단민원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척박한 건축계 상황의 한 단면이다.
방철린: 건설교통부에서 감리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대한건축사협회에 요청했었다. 한국건축가협회와 대한건축학회 그리고 대한건축사협회 3단체의 단체 부회장이 이 연구를 해야 한다고 하여 논의를 하고 세미나도 하면서 의견을 모았는데 모두 감리 분리 반대에 찬성했다. 모든 감리는 설계자가 해야 하며 설계 감리를 분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최종 보고서는 다른 사람이 하면서 또 다시 왜곡 되어지고 말았다. ‘지금 만들어놓은 감리회사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상황은 다시 환원되고 말았다. 그 국가의 수준을 갈음할 문화의 중요성보다 집단 이기주의가 이기는 안타까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동안은 이런 문제를 대한 건축사협회에서 다루어주고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늘 나쁜 방향으로만 흘러가기 때문에 올해부터 한국건축가협회가 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자 계획을 갖고 있다. 건축가의 지위문제와 건축 창작활동을 하는데 저해요소라 생각하는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자 기구표부터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필훈: 방철린 소장이 정림건축 실장으로 근무할 때 정림건축에서 설계 담당자의 디자인 크레딧이 인정되어 소개가 되기 시작했다. 다른 대형 사무실 실장들은 프로젝트 매니저가 디자인 미팅에 직접 와 설명하는 시스템을 부러워했다. 정림건축에 재직 중이었던 방철린 소장의 프로젝트도 그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철린: 그것이 내가 수행한 프로젝트에서 처음 이루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회사의 대표자가 소개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젊었던 시절 나는 상당히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근무자들에게 하루의 대부분을 사무실서 보내야 하는 설계실은 근무자들을 위하여 최상의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작업을 위한 모든 도구들도 좋아지도록 노력하였다. 메마른 설계실의 환경을 위하여 우리 부서만이라도 내 돈으로 설계실 책장 위에 화분으로 장식을 하기도 하고, 직원들을 위한 오디오 설치, 고적답사반 설립 등 열심히 일 하면서도 즐겁게 살고자 모든 부분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이필훈: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들을 위해 이러한 작은 싸움을 통하여 설계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한 것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는 일종의 방철린 소장의 일관된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설계도 마찬가지다. 거창하게는 사회 개혁이겠지만, 작게는 자신이 속한 소집단에서부터 변화를 꿈꾸는 노력은 집을 통해 주변을 바꾸고자 하는 정신과 일맥상통하다. 집을 이상하게 만들어 사회를 바꾸기보다, 자신의 주변을 조금씩 개선하며 사회를 바꾸는 것. 젊은 시절에는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할 때에는 사무실의 인테리어 환경 꾸미기부터, 그리고 50세가 넘어서는 한 집단의 사회적 위치에서 또 보다 나은 사회로 바꾸려 애쓰는 일련의 활동들이 모두 건축가 방철린의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방철린: 좋은 평에 감사한다. 건축가는 무엇보다도 작품으로 말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좋은 건축가라면 건강한 건축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하고 나아가 좋은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모든 일에도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계의 좋은 풍토를 위해서라면 개선해야 할 일도 많지만 하지 않아야 될 일도 많다고 본다. 또 한 두 사람의 힘으로는 힘들지 모르지만 서로 동참한다면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맑은 건축계의 풍토에서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대담후기> 건축가 방철린과 함께 돌아본 집들은 파주출판단지에 있었다. 파주출판단지를 다녀온 사람들은 일반인이든 건축과 관련된 사람들이든 꼭 소감을 물어보는 한편 자신의 비평적 시각을 이야기한다. 일반인들은 대개 모델하우스 집합장소 같다는 평이고 대부분의 건축 관련인들은 심한 혹평 일색이다. 마을이든 도시든 임의적으로 만든 장소가 제 모습을 갖추려면 그곳에 사람들이 살아야하고 사람들의 험한 삶의 모습도 여기 저기 터져 노출되어 있어야 하며 자연의 풍경들이 그것을 감춰주는 복합적 구조가 마련 될 때 그리고 그 위에 역사와 신화의 그늘이 드리워질 때 그 내밀한 깊이가 깊어지고 그래서 장소의 매력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파주출판단지는 이제 그 기초를 마련한 셈이고 이런 의미에서 평가는 한참 뒤로 미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가끔 그곳에 들리면 건축가들의 자기 드러내기가 안쓰러워 보인다.
지구단위계획이란 법이 생기기 이전에 이를 앞서 행한 곳이 출판단지이다. 그런데 형태와 재료까지를 다 정해서 단지에 통일된 건축 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단지계획의 정신을 이해하려 노력한 건축가들을 찾기 어렵다. 물론 정해진 규칙의 간극을 찾아 새로운 창조적 제안을 하는 것이 좋은 건축가의 자세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파주출판단지의 규칙은 일반 건축법과 달리 동료 건축가들이 만든 것이고 거기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그들이 선정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르게 보이기 위해 기를 쓰는 건축가들의 몸짓은 본능적인 것인지 아니면 거시적 관점에서 지역과 건축을 이해하는 능력이 거세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방철린이 설계한 집들은 적어도 파주출판단지를 만들고자 했던 건축가들의 시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규칙의 옳고 그름을 논의하기 이전에 단지를 계획할 때 세우고자 했던 건축적 정신이고 흐름이라면 개별 건물은 그 규칙을 이해하고 따라야 단지의 성격이 만들어질 것이다. 방철린이 설계한 집들은 그 원칙 안에서 변주를 한다. 단지 내의 다른 집들에 비해 평범해 보이는 것, 내부 공간의 쓰임새와 건물 형태가 잘 맞는 것, 외벽 재료가 매우 단순한 것 - 원칙에 충실한 집이 좋아 보이는 것이 건축가들이 만든 단지에서의 아이러니이다. 최근 건축계를 보면 건축이 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건축의 발전을 위해서 가능한 모든 시도를 해보는 것은 바람직하며 그 실험적 시도들에 의해 건축은 분명 새로운 차원으로의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시도들이 과해질수록 ‘사람’이 소외되는 현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건축계에서 일고 있는 아우성들이 결국 모여 지향하게 되는 목표는 사람을 존중하는 환경이어야 한다.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식견을 갖추는 것과 집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에게 좋은 건축 환경을 제시하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다. 건축을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지 않는 건축가가 소중한 것은 이런 이유이며 건축가 방철린이 설계한 건물들에서 원칙이 지켜진 것을 평가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글/ 이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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