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늦은가을이었습니다. 송광사나 선암사를 찾은 건 여러차례이지만 늘 차량으로 이동을 하여 방문하였으나 조계산을 등산으로 넘으며 양쪽사찰을 보느 것 또한 뜻 있는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사찰의 뒤에 숨겨진 산세를 느껴볼 수 있는 기회이니까요. 송광사에서 하룻밤 템플스테이를 끝내고 아침일찍 출발하여 조계산을 넘어 선암사에 도착한 것은 정오 경이었습니다. 산 뒤에서 내려와 산사를 구경하는 맛은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합니다.
선암사는 백제성왕529년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중창하였으며, 고려전기에 의천 대각국사가 다시 중창하고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는 호남의 중심사찰이었으나 지금은 태고종 총림으로 종합수도도량이기도 합니다.
조계산 배경으로 동쪽에 위치한 이 절은 산의 반대편에 있는 조계종 총본산인 송광사와 더불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쌍벽을 이루고 있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송광사의 뒷산은 남성적인 웅장함을 보이고 있는 반면 선암사의 뒷산은 조용하고 여성적인 온화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절의 모습 또한 뒷산을 닮은 모습입니다. 송광사는 늘 새로운 절집을 지으며 변화화고 있어 활기차고 진취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반면 선암사는 새로 절집을 짓기보다 있는 절집들을 잘 보호하고 간수하며 보존에 중점을 두고 있어 오랜 사찰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면서 아늑하고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영역간의 경계로서의 돌담들은 정감이 있어 오래된 수목과 함께 이 곳에서 며칠을 묵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정다운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