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수: 전통적인 생각에 따르면 집을 짓는 일은 집터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생각을 따른다면, 집터를 고른 건축주의 생각이 설계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집터를 대하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생각이 달라 설계가 힘들어지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하나의 집이 완성된 이 시점에서 집터에 대한 생각들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축주들이 그 땅에서 어떻게 살고자 했었고, 그런 요구조건들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듣고 싶습니다.
방철린: 글쎄요, 땅에 대한 이야기는 대단히 중요하죠. 집을 짓건 길을 내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행위를 하건, 땅을 떠나서는 그러한 것들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특히 땅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나 지형적 특성 그리고 땅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땅의 역사 등을 파악하는 작업은 집을 지을 때 매우 중요하게 고려해야하는 것들입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지리(풍수항적인 지리), 생리(기름짐), 인심 등을 강조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좋다고 하는 땅들 대부분이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변덕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로 잘 유지되어 왔던 것은 건강한 땅의 선택이 집을 짓는 일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시골에 서울사람들이 거주하기 위한 집을 지을 경우에 기존 동네주민들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상당한 고려사항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서울 사람이 시골에 가서 산다고 할 때 밀폐되는 위치냐 아니면 동화될 수 있는 위치냐에 따라 동네사람들과의 관계설정이 달라지기 때문에 집터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보면 미제루가 지어진 그 땅은 지형적인 조건도 좋았지만, 적당히 숨겨져 있어서 새로 만들어지는 집이 기존 동네의 풍경을 급작스럽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주변의 다른 집들과 잘 융화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깊숙이 숨어서 안 보이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가려지고 적당히 열려있는 있는 집터이었습니다. 건축주는 여기저기 집터를 보고 다닌 끝에 그 집터를 골랐다고 말했고 나도 그 집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거기다가 집을 지으면 좋은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건축주가 집터를 안내하면서 많은 생각을 풀어놓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주로 전원생활에 대한 흥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만 그렇다하더라도 그 땅을 보면서 건축주가 그렸던 그림은 설계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학 교수인 건축주는 집에 대해 자신이 직접 계획한 플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땅을 보는 수준 높은 안목에 비해 그 플랜은 그리 훌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건축주가 돈이 많지가 않아서 최소의 경비로 땅을 사고 그냥 시골집 하나 마련해서 살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그 동안 자신이 보아왔던 일상적인 집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일반적인 주택 즉 가운데 거실이 있고 주변에 방들이 있는 그런 그림을 가지고 집을 짓겠다고 했었던 것이죠. 그러나 건축주나 그 집 안주인과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분들이 전원생활의 낭만이나 환상보다는 시골에서의 삶 그 자체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집을 지음으로써 땅에 동화되는 것을 통해 주변의 경관이나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시골생활을 하기에 적합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땅도 좋은 데다가 건축주가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집이 생길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생각을 한 거죠. 땅은 좋지만 건축주가 OO식의 집을 짓겠다고 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죠. 나하고 작업이 안됐을 수도 있구요. 이분들에게 시골생활에 적합한 집을 지어 주면 그런 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판단과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제가 그러한 삶에 어울리는 집을 제공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설계를 시작한 것입니다.
대지를 처음 접했을 때 떠올렸던 생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건축가들은 보통 대지를 처음 보았을 때 가졌던
미지들을 집이 완공될 때까지 끌고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나는 땅을 한번 보고 바로 어떤 이미지들을 떠올려 스케치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기보다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지를 자주 방문하고 관찰하여 그것으로부터 설계를 시작하는 편입니다. 건축주와 대지에 가본 이후에도 혼자서 여러번 대지를 찾아가서 기존에 있는 나무를 확인하거나 주변상황이나 집들과의 관계도 살펴보고 경사도를 확인하기도 했었습니다. 살릴 나무나 없애도 될 나무를 구분하여 표시도 하고 그 나무들 사이로 주변의 경관과 땅의 사용계획도 생각했었습니다. 배치계획 스케치를 하면서 거실 그리고 안방 자리를 중심으로 실들을 배치시켜 보고 그 다음에 루를 생각해 보았고, 단면스케치를 하면서 루를 살리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스케치를 하다가 또 다시 가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런 식으로 스케치 하다가 가보기를 몇 번 하면서 안을 굳혀 가고 방향을 잡기 시작했죠. 한국의 전통건축으로부터 배워야할 것이 분명히 있으며 선조들이 생각한 건축설계 방법론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통건축에서 얻어지고 배워지는 것들, 공간을 엮는 방식, 공간적 요소들간의 관계 형성, 그런 것들이 쓰여지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하며 설계에 임했습니다.
마당 특히 전통주택에서의 마당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집에서는 집의 물리적인 문맥과 관련되어 마당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집에서의 마당은 주변 자연과의 경계를 형성하는 건물들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공적인 성격을 갖는 2차적인 자연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마당이 가지고 있는 2차적인 성격의 자연과 주변(1차적 자연)을 연결하는 문제가 설계에서 중요한 문제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땅에 대해서는 어떤 인공적인 손질도 가하지 않은채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예를 들면 필로티 등을 이용해서) 주택을 땅위에다 그냥 얹어 놓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자연의 질서와 건물이라는 인공의 질서가 병렬되어 있는 관계 같은 것이지요. 공사중에 일어날 수 있는 자연의 훼손은 조경이 아니라 땅의 모습을 복원해 놓는 방법을 통해 이러한 관계도 성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집의 마당은 인공적인 성격이 많은 것 처럼 보이고 그러다 보니 이 집 전체를 지배하는 자연이라는 풍경과 이 마당이 어떻게 관계되어 있는 지가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해본다면, 이 집에서는 마당과 그 위에 뚫려 있는 하늘(즉 2차적인 자연과 1차적인 자연)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이 집에서의 마당은 외부의 자연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마당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view를 통해서 외부의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장치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지요. 하늘마당에서도 이런 방식이 아니었습니까?
마당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먼저 언급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중심에 관련된 것인데, 세계 여러 나라의 주거 건축물들을 살펴보면 중심적 구성이라고 설명될 수 있는 건축물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럽의 중정식 주택들이 그러하고 멕시코에 있는 테오티화캉 역시도 궁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중정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지요. 팔라디오가 설계한 빌라 로툰다는 주택의 내부에 중심을 두고 주변에 실내공간들을 배치한 형식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중심을 형성하는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것과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서구에서 보여지는 중정이나 내부 공간의 중심은 형식적으로는 우리 전통건축의 마당하고 비슷하게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다른 점은 우리 전통건축에서는 그것이 주택 내부의 다른 공간들과의 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양의 중심공간은 바깥으로 힘이 발산되지 않고 구심적으로만 작용하는 반면에 우리 전통건축에서의 중심공간은 구심성을 가지는 동시에 외부의 좋은 자연을 향해 확장될 수 있는 원심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전통주택에서의 중심공간은 시각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라 행위나 행동, 또는 생활이라는 것과 관련하여 외각부와도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랑채와 사랑마당의 관계는 그 사이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사랑채에서 외각부를 조망할 수 있는 방식이 그러하며, 안채의 경우도 안마당과 뒷쪽의 텃밭이 연결되는 방식이 그러하지요. 이처럼 우리의 마당은 공간적인 중심이면서 동시에 외부와의 연결관계도 치밀하게 고려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건축은 마당이라는 공간적인 중심만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라 외각부와의 공간적 연결에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것이 한국전통 건축이 서양건축과 다른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빌라로툰다가 주변에 대하여 친화적이지 않고 자기과시적이며, 사보아주택 같이 외각부에 대해 다소 대화적인 입장을 취하고는 있으나 외부와의 관계가 시각적이고 형식적에만 그치고있는 것들입니다. 반면 한국 전통건축의 경우는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이 실제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주택에서는 시각적인 연결 관계를 넘어서 생활, 행위들이 서로 연관을 갖고 발생될 수 있도록 자연과 접한 건축의 형식이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당이 마당 자체로서 의미 뿐만이 아니고 건축물의 외각부에 있는 자연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형식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죠. 여기의 마당은 화초 같은 것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밖에 있는 자연이 있는 그대로 좋기 때문에 그것을 더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서 마당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 집의 마당에 꽃나무와 화초를 심었다고 상상해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습니까? 마당이 정원이라는 것과는 달리 외부의 자연을 더 살릴 수 있는 환기의 요소로서 작용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이 마당과 이 마당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동시에 볼 수 있을 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에 있는 요소(자연)와 마당을 같이 볼 수 있고, 누를 통해서 밖에 있는 경치가 마당하고 같이 볼 때, 누가 없을 때는 문이 열려서 문 밖의 경치가 마당하고 같이 볼 수 있을 때, 그것이 같이 있음으로서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까 거울 말씀하셨는데 좋은 예라 생각합니다. 거울에 무엇이 잔뜩 그려져 있다면 거울을 통해서 물체를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자연 하나만 보면 자연 그 자체이고, 마당만 있으면 마당 그 자체이지만, 그 두 가지가 같이 놓여져 있기 때문에 두 개의 가치가 더 상승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땅(집)에 사는 사람이 진정한 방식으로 자연을 체험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따뜻하고 춥고 비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식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드리자면 우선, 가운데 공간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의미론적으로 볼 때 거기서부터 가족과의 관계라든가 생활이 시작되어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 두 번째는 건축주가 그곳에서 생활하기에 알맞은 심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마당이라든가 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마당과 누를 연결고리로 해서 사람과 자연을 일체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방안에서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그 분들이 원하는 자연속에서의 생활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중심과 자연이라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들이 설계에서 중요한 주제였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사회가 중심과 자연이라는 개념들을 그리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주의나 다양성이라는 말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어찌보면 중심이라는 개념은 그 가치가 부정되거나 혹은 그 가치가 격하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건축을 통해 중심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중심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어떤 의지를 동반하는 발언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주택에서 중심을 얘기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주택이라는 것이 가족이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모여사는 조그만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택에서는 가족들간의 유대관계도 확실히 해야하고 서로가 서로를 느끼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 필요하며, 건축이 그런 공간을 제공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심에 마당을 도입한 것은 전통주택에서 배우는 바와 같이 마당이 그러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능적 이유보다는 그 공간을 통해 다른 공간들이 개념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공간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어있는 마당을 통해 각각의 방들이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제루의 서재에서 창을 통해 마당 건너편의 거실을 보고 다시 거실 바깥의 자연까지도 볼 수 있도록 하거나, 안방에서 마당을 통해서 누를 보고 다시 누를 통해 바깥 경치를 볼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였습니다.
주변의 경관이 좋으니까 자연이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장님의 경우에는 주택을 설계하는 경우 항상 자연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자연이라는 개념 역시도 어찌보면 앞에서 언급되었던 중심이라는 개념과 함께 현대사회에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개념중의 하나가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자꾸 자연을 직면하게 하려는 어떤 의도라도 있으십니까?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있기보다는 한국의 전통건축을 보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전통건축의 공간만들기와 연관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전통건축이 자연을 그대로 두게 하는 것이며, 더불어 그 자연 전체가 다 나의 세계일 수도 있고 또 내가 그 안에 빠져들어갈 수 있다는 것, 다시말하면 자연과 내가 다른 주체가 아니고 하나일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건축에서 사랑채와 사랑마당 그리고 그 밖에 있는 담이 이루는 관계를 예를 들어봅시다. 사랑채에 앉아서 가까이 있는 담 안의 마당 분위기에서 갖게되는 감정은 자기 내면의 세계로의 침잠입니다. 담너머의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은 또다른 의미를 갖게 합니다. 내부에 주목하게 될 때와 달리 외부에 주목할 때는 자기를 자연속에 던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지요, 이것이 한국건축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에서 특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자연의 좋은 조건들을 그대로 환경으로 만들자는 정신을 닮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위이지요. 자연 즉 원래있는 그대로의 세계처럼 사람을 강하게 움직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이라는 개념이 건축을 하는데 있어서 앞으로도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간의 작업을 보면, 자연이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시니까 도시 안에서도 자연을 끌어들이려고 하시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담아내는 독자적인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우리의 전통건축을 말씀하시면서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그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옛날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옛날 이야기가 지금에도 유효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생각은 중심을 말할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심이라던가 자연이라는 개념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회상황속에서 지금은 쇄락했을 수도 있는 그런 단어들이 가진 의미를 중요한 주제로 계속해서 붙들고 계시면서 실천하는 데에는 어떤 의지가 그 안에 개입되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주제들을 강조하는 것은 어찌보면 건축가로서의 활동에는 많은 제약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보통신매체나 교통수단의 발달 등을 통해 세계가 하나의 블록으로 변해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미래가 그러한 시대로 치닫을수록 지역성이라든가 정체성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문화라는 면에 있어서 더욱더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하면 경제나 정치인 경우에는 어떤 것이든 좋은 것을 택하여 사회에 반영시켜도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문화인 경우에는 그 지역의 특성이나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중심이 되는 생각들이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문화의 독자성이 더욱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옛날부터 있어왔던 중심성에 대한 것인데 주택인 경우에 특히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가족의 개념이 없어진다거나 개개인이 흩어져 사는 사회가 가능하지 않다면, 가족의 개념을 늘 유지시킬 수 있는 마지막 무엇이 하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가족이라는 공동체적의식을 꼭 잡고 있어야 할 핵이라든지 중심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가족이라는 것은 깨지고 말것이라는, 낡아 보이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있죠.
루 밑으로 진입은 어떻게 해서 정해진 것입니까. 전통의 직설적인 차용이 아닙니까?
루 밑으로의 진입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좋은 것이기 때문에 인용한 것입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갖다 쓰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루 밑으로 진입하는 것이 전통주택에는 없잖아요? 사찰이나 향교에는 있지만, 그러한 진입방식을 도입한 것은 그것이 이 주택에 꼭 맞는 진입방법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의 시작은 안방 배치의 변화로부터입니다. 안방과 마당 그리고 누가 이루는 배치는 안방이 주택의 깊숙한 곳에 숨어있었던 전통적인 주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남녀가 유별해서 각각의 공간을 요구했던 전통사회와는 달리 남녀의 함께 이루어지는 지금의 사회구조에서는 안방이 전통적 방법같이 사랑채와 구별되어 숨어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에 마당과 연결시켜 놓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집의 경우에는 특히 앞에 누가 있기 때문에 마당 안쪽에 방을 놓아서 안방에 있으면서도 밖의 경치를 감상도 할 수 있고 집의 중앙에 놓아 집안의 중심축이 되도록 한 것이죠. 그리고 이런 생각이 지금의 사회구조와도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라면 굳이 현관으로의 어프로치를 바깥쪽에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경사지이다보니 자연히 누가 상부로 들리게 되고 그 밑의 공간을 진입에 사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배치를 만들게 된것이죠. 아무 생각 없이 옛날의 것을 따다 갖다놓은 것이 아니고, 현대 건축을 만듦에 있어서 무엇이 옛날의 생각과 달라진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고 이렇게 만든 것 입니다.
담장은 나중에 하실 겁니까? 없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담은 집주인이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가까이는 안하고 바깥쪽으로 하는데 그것을 solid한 것이 아니고 탱자나무 같이 시각적으로는 보이되 바로 들어 올 수 없도록 만들자고 했지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 집은 돈이 없던게 다행이예요. 돈이 많으면 담도 하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하다 보면 소위 좀 농촌에 있는 전원주거로서의 분수에서 벗어날 수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전원주거답게 약간의 모자람을 갖게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재료 선택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재료에는 그렇게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재료라는 것이 그냥 집을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지 그것을 통해 뭔가를 표현해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재정적인 문제도 한 개의 구실로 등장했지요. 재료에 대한 생각은 배제하고 작업을 했습니다. 형태 만들기나 부분적인 디자인에 몰두하기보다는 개념이 살아있는 집만들기에 생각을 집중하고 작업을 했습니다.
형태 만들기를 생각하지 않거나, 건물이 어떻게 보일까 보다는 건물을 통해서 자연과 관계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재료를 통해서 뭔가를 표현하려는 생각을 배제하려고 했다는 말씀을 듣다보면 이 집을 지으면서 행한 소장님의 작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건축가의 작업과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가로서 그러한 작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떻게 보면 새롭게 정의해 봐야 될 부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집은 장소가 워낙 좋았고 거기서 보이는 경치도 좋았고 땅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워낙 크게 있었기 때문에 거기다 뭔가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들이 건축의 본질적인 문제를 떠나서 사람의 욕심 쪽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땅에 필요한 집은, 결국 이 집이 담는 것은 생활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풍요로움을 느끼고 가족이라는 형태를 유지시켜 가면서 마을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 해나가느냐 하는 것이 집이 가져야 될 큰 역할이고 목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작업을 했고 그러다 보니 공간적인 것, 그리고 그 땅 그 마을과의 관계맺기에 관심을 쏟았고, 그 집이 형태적으로 어떠해야 할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형태적인 것을 배제하다보니 재료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좋은 재료를 쓴다거나 미적 감각을 살려 배치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에 대한 시도를 한다면 그것이 자칫 마을 사람들의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을 했죠. 농촌 한 가운데 있는 주택이 주위에 있는 집들과 과연 공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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