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tecture in the City, Language in the Architecture
건축물을 계획할 때 나는 대개 두 가지 큰 관심거리로부터 사고를 시작한다. 하나는 도시 속에서의 건축의 역할에 관한 사항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 자체에 관한 사항이다.
건축이 설 도시에 대한 관심
도시 속의 건축은 도시 문화와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이 존재하게 되면 그 건축과 관련한 이웃이 생기고, 따라서 그 건축이 도시의 일부로 읽혀지게 되며 자의든 타의든 그 앉음새나 모양새의 영향이 도시에 전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물을 계획하기 전에 건축이 생기게 될 도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도시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까 고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도시의 역사와 도시의 구성 요소들을 비교 관찰하면 그 도시가 형성되어온 역사적 비밀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흔적 속에서 도시를 만들어온 국가적인 배경과 그 시민들이 어떻게 도시를 지켜왔는가 하는 정신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정치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영향은 물론이고, 그 도시가 총체적으로 갖고 있는 경제적 여건과 국가나 도시를 정책적으로 이끌어가는 정치가나 행정가들로부터 시민 개개에 이르기까지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 정도 그리고 가치 창출에 대한 정책적 배려 등 그 도시가 걸어 온 길이 파악되는 것이다. 이렇게 쉽게 우리 눈에 비쳐지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도시의 경관도 철저히 역사의 산 증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천해온 많은 도시들도 숱한 세계 열강들의 침략과 그들의 문화 말살정책 그리고 근대화와 재개발이란 미명 아래 입은 훼손과 상흔을 포함하여 많은 역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아무리 작아보이는 건축도 그들이 모여 도시의 경관을 이루게 되는 것인즉, 그 하나 하나에 이러한 도시의 역사와의 연관성이 입력되지 않는다면 그 도시는 점점 그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 자명한 일이라 생각한다.
사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변천을 거듭해온 한국의 도시들은 그 크기가 비대해지면서 도시에 대한 관심의 비중 또한 달라지게 되었고, 역사 속을 걸어온 도시는 경제 발전에 발 맞추어 새로운 도시 건설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만들어져 오면서 도시는 마취제를 맞은 듯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감각을 잃고 재개발의 메스에 의해 무절제하게 파괴되었다. 재개발의 수술에서 제외된 곳은 역사적 흔적이 다소 남아 있긴 하나 낡아만 가고 있는 도시는 아무 대책 없이 그대로 방치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역사란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이라고 한 루이 알튀세르(L. Althusser)의 말처럼 역사 속의 도시, 현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도시 역시 항구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산업 구조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관계에 따라 만들어지고 바뀌어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건축을 통하여 이렇게 점점 끊어져가고 있는 도시의 마지막 역사적 숨결을 이어가도록 노력하는 일 그리고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잠재력을 살릴 수 있는 건축가의 역할이 무엇인가 관심을 갖고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이 도시에, 그리고 도시의 역사에 공헌하는 일이라고 이해한다. 역사 속의 도시의 맥을 살려 미래의 가치 있는 도시 만들기에 전력을 해야 하는 의무는 건축가의 몫인 셈이다.
건축에 대한 관심사- 도시 속에서의 건축의 태도
다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도시 속에서의 건축의 역할이다. 도시 속에서의 건축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우선 생각해본다면 당연히 건축의 도시에 대한 태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건축물이 세워질 도시에 대해서 건축이 어떤 태도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곳의 사용자들 그리고 그 건축의 주변인들의 도시에 대한 생각도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건축이 도시인에 대해서 계몽적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도시 속에서의 건축의 태도란, 도시에 생명력이 있고 건축물에도 생명력이 불어넣어져 도시와 건축이 살아 있는 생명체라 볼 때, 이 건축이 도시나 사람을 대하는 입장이나 나름대로 갖고 있는 도시나 인간에 대한 관점이 어떠한 것인가라는 것이다. 건축물이 앉혀질 도시 속에 건축물이 도시를 어떻게 의식하고 앉아 있느냐 하는 자세와 그 건축물이 갖추고 있는 내.외부공간이 도시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도시와 건축과의 관계를 생명체간의 관계로 설정하고 이를 들여다보는 것은 뜻 있는 일이라 믿는다.
이때 건축가의 입장이라면 도시의 문제와 건축 자체의 문제를 별도로 생각할 수가 없으리라 본다. 가급적이면 도시의 문제와 건축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도시를 존중하는 태도를 하는 건축, 존재하는 목표가 뚜렷한 건축을 완성하고 만들어내기 위해서 건축가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건축과 도시가 원하는 것을 면밀히 파악하고 이들이 원하는 대로 관계를 맺어주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믿는다. 도시와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건축, 도시의 일부분으로 읽힐 수 있는 건축, 그러면서도 자기의 목소리를 조용히 내는 그래서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건축을 향하여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건축에 대한 다음 관심사-건축속의 언어
다음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건축 속의 언어-즉, 건축 속의 공간 관련용어에 관한 이야기이다. 건축물의 공간을 구성할 때 보통은 미리 프로그래밍된 공간과 다이어그램화 되어 있는 기능들로 건축물을 구축해나간다. 그러나 이렇게 건축가가 알고 정해놓은 용어로 되어 있는 실명과 건축의 기능, 완전할 것이라고 믿는 교과서적 공간 언어들이 어쩌면 건축을 만들어가는 건축가들에게 큰 함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임마누엘 칸트(I. Kant)가 이야기하는 (선험적 주체)는 사유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사유는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라고 언어의 영향력을 주장한 훔볼트(K. W. von Humboldt)는 '언어는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갖는 민족정신의 외적인 표현'이라 하고 '언어(모국어)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 구조를 제약하며, 그래서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내장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건축가가 별다른 사고의 깊이 없이 건축 속에서 언어를 사용한다면 이렇게 사용된 언어에 의해서 만들어진 건축 속에 사는 사람들은 그 행동이나 사유의 범위가 엄청난 제한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산업 구조의 변천이나 시대의 변천에 의해 서서히 자주적으로 바뀌어온 언어를 건축가들이 사용하여 올 수 있었다면 '민족정신의 외적인 표현' 같이 건축가들의 사고가 그 사용 언어에 그리고 건축에 녹아 들어가 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해지겠지만, 타의에 의해 급격히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또 바뀌어가는 외래 문화, 현대 문화 속을 살고 있는 한국의 경우는 다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역사를 두고 익숙하게 만들어져 내려온 나름대로의 생활 패턴과 갑작스럽게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고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생긴 서구식 생활 패턴, 그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해가고 있는 현대 산업의 양상에 의해 바뀌어가는 생활 구조-이런 현대의 속도감 있는 변화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진실로 필요한 공간과 이에 상응하는 건축 언어에 민감하게 작용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 보기 때문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한국인의 잠재 의식 속에서 한국인이 원하고 있는 공간 구조, 그리고 급변하는 현대 산업 구조 속을 사는 인간의 심성과 생활 패턴, 감성적 요소에 걸맞는 공간 구조를 찾고 언어화하며 이를 건축공간으로 구체화하는 일-이것이 한국 건축가가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몫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