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에서 본 인수봉과 백운대 그리고 만경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mycaan.com/blog/thumbnail/1/1083561551.w700-h466.jpg) 영봉에서 본 삼각산의 최고봉들-맨앞의 인수봉(仁壽峰804m)과 그 뒤로 겹쳐보이는 백운대(白雲臺836m), 그리고 그 왼편으로 만경대(萬景臺800m) (이렇게 세개의 봉우리가 삼각산이다.)가 위용을 자랑한다. ![거대한 인수봉-이를 정복하려는 자들이 개미같이 붙어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mycaan.com/blog/thumbnail/1/1073416387.w700-h466.jpg) 거대한 인수봉(仁壽峰)의 기암절벽-이를 정복하려는 자들이 개미같이 붙어있다 ![위문에서 성벽을 따라 백운대로 오르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mycaan.com/blog/thumbnail/1/1002327872.w700-h466.jpg) 위문에서 성벽을 따라 백운대(白雲臺836m)로 오르는 길 ![백운대로 오르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mycaan.com/blog/thumbnail/1/1311836175.w700-h466.jpg) 철로 만든 손잡이에 의존해야만 오를 수 있는 백운대의 위용. ![백운대의 거대한 암벽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mycaan.com/blog/thumbnail/1/1291167425.w700-h466.jpg) 백운대의 거대한 암벽 ![백운대오르는 길에서 보이는 인수봉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mycaan.com/blog/thumbnail/1/1096621301.w700-h466.jpg) 백운대오르는 길에 얼굴을 내민 인수봉(仁壽峰) ![만경대(萬景臺)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mycaan.com/blog/thumbnail/1/1276516832.w700-h466.jpg) 만경대(萬景臺) ![백운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인수봉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mycaan.com/blog/thumbnail/1/1300668438.w700-h466.jpg) 백운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인수봉(仁壽峰)의 기암 ![백운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만경대(萬景臺)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mycaan.com/blog/thumbnail/1/1103052575.w700-h466.jpg) 백운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만경대(萬景臺800m) ![용암문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mycaan.com/blog/thumbnail/1/1265450400.w700-h466.jpg) 만경대 능선상에 있는 용암문(龍岩門)
삼각산은 서울부근에서 가장 높고 가장 산세가 수려 하여 서울의 주산으로 유명합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옛날 신라 때 중 도선(道詵)의 유기(留記)에
"왕씨를 이어 임금이 될 사람은 이씨이고 한양에 도읍한다."라 하였다.
그 기록 때문에 고려중엽에 윤관을 시켜 백악산 남쪽에 터를 잡아 오얏(李)을 심어 놓고
무성하게 자라면 문득 잘라서 왕성한 기운을 눌렀다.
우리나라(이씨조선)에서 왕위를 물려 받은 뒤,
중 무학(無學)을 시켜 도읍터를 정하도록 하였다.
무학이 백운대에서 맥을 따라 만경대(萬景臺)에 이르고,
다시 서남쪽으로 비봉(碑峯)에 갔다가 한 개의 비석을 보니
‘무학오심도차(無學誤尋到此)’라는 여섯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무학이 맥을 잘못 찾아서 여기에 온다’는 뜻이며 곧 도선이 세운 것이다.
무학은 서둘러 길을 바꿔 만경대에서 정남 쪽 맥을 따라 바로 백악산 밑에 도착하였다.
세곳 맥이 합쳐져서 한 들로 된 것을 보고 마침내 궁성 터를 정하였는데,
바로 이곳이 고려때 오얏을 심던 곳이다.」(이익성역)글.사진 방철린 090823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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